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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MB5년]<31>박근혜, 한나라당 주인 되다_ 朴의 한마디 “왜 어려울 때만 당을 맡아달라고 그러세요”

 

[비밀해제 MB5년]<31>박근혜, 한나라당 주인 되다_ 朴의 한마디 “왜 어려울 때만 당을 맡아달라고 그러세요”

2011년 12월 14일 국회 의원회관 103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권영진 의원이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 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쇄신파 의원들은 재창당을 요구했고 박근혜도 “뼛속까지 바 꾸자”고 답했다. 이미 일주일 전인 7일 박근혜는 권영진과의 회동에서 당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내 비친 상태였다. 동아일보DB
“저와 권 의원님의 뜻이 다르지 않아요.”

2011년 12월 7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박근혜 전 대표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박근혜가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의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내비치는 순간이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현상’의 위력을 절감한 뒤 한나라당 내에서는 홍준표 대표 퇴진론과 박근혜 조기 등판론이 비등해지고 있었다. 권영진은 1시간 동안 끈질기게 박근혜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권영진=“이제 국민과 당원들이 대표께서 전면에 나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면서 정치를 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박근혜=“….”

권영진=“저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은 패키지라고 봅니다. 총선에서 지면 대선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다수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조기 등장에)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표께서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권영진은 개혁 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을 이끌던 쇄신파 리더. 이날 회동은 사실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그 직전, 권영진의 출판기념회가 잡혀 있었는데 박근혜가 양해 전화를 걸어왔다.

박근혜=“내가 꼭 가야 하는데 사정이 생겨서 못 갑니다. 미안합니다.”

권영진=“대표님 안 오셔도 됩니다. 바쁜데 다른 일 보셔야죠. 근데 요즘 상황이 긴박하니 한번 만나셔야죠?”

박근혜=“(흔쾌하게) 제가 연락할게요!”

박근혜는 약속을 지켰다. 권영진과 만나기로 한 날, 박근혜는 오전에 유승민 최고위원의 전화를 받았다. 2005년 박근혜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유승민은 당시만 해도 ‘원조 핵심 친박’으로 통했다.

유승민=“오늘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도 바로 사퇴할 것 같습니다.”

박근혜=“(담담한 어조로) 알겠습니다.”

사실 그날 사퇴 결정은 유승민의 단독 결정이었다. 박근혜에 대한 ‘압박’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유승민의 사퇴를 놓고 친박 진영 일각에선 “성급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박근혜가 당의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독단적 판단으로 최고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비판이었다.

유승민의 설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 때문에 현 지도부로는 총선이 굉장히 힘들다고 봤다. 그래서 사퇴 전날 혼자서 결심을 했다. 다만 내 나름대로 예측은 했다. 나와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이 사퇴하면 결국 홍준표 대표 체제는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당은 박근혜 전 대표의 책임 아래 총선을 치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실제 한나라당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에 당 소속 최구식 의원 비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이란 대형 돌발변수가 등장했다. 특검에서 최구식은 최종적으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홍준표 체제로는 도저히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어쨌건, 그날 오전 원희룡 남경필도 동반사퇴를 결행했다.

그러나 홍준표는 생각이 달랐다. 박근혜와 권영진이 회동하고 있던 그 시간, 의원총회에서 홍준표는 또다시 버티기를 시도했다. “지도부 퇴진 문제는 몇 사람의 목소리에 의존하지 말고 169명 의원 전원이 의견을 표명해 결정해야 한다.”

승부수는 통했다. 친박 의원들은 “지도부 교체,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시기와 내용에서 적절치 않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대표 바꾸고 당명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며 홍준표 체제를 지지했다. 쇄신파와 친이(친이명박)계는 홍준표 체제 개편을 주장하고, 친박은 반대하는 좀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물론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의 의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권영진의 기억. “친박 의원들조차 당시 박 전 대표의 뜻을 제대로 못 읽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의원총회에서 홍준표를 대표로 유임시키고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반대한 것이죠.”

박근혜를 만나 ‘의중’을 확인하고 국회에 돌아온 권영진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10시 곧바로 ‘민본21’ 소속 의원들을 비상 소집했다. 비상토론은 오전 3시까지 이어졌다. 김성식 정태근 의원은 박근혜를 등판시켜 봐야 선거 승리가 어렵다며 ‘당 해산 후 재창당’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친박계인 김선동 현기환 의원은 박근혜가 전면에 나설 생각도 없는데 왜 홍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하느냐며 반대했다. 반면 권영진 김세연 주광덕 황영철 의원은 당 해체 후 신당으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실질적 개혁을 위한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주장했다.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민본21’은 다음 날인 12월 8일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 △신당 수준의 재창당 등이 담긴 성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홍준표는 그날 곧바로 ‘2012년 2월 재창당’을 골자로 하는 쇄신안을 내놓고 버텼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그러곤 이틀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9일 사퇴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홍준표 체제는 이처럼 붕괴됐지만, 한나라당은 후속조치인 재창당 문제를 놓고 급격하게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그해 12월 13일 의원총회에서 재창당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주류를 이루자 재창당을 주장해온 정태근 김성식 의원은 탈당을 선언해 버렸다.

내부적으로 집단탈당까지 논의한 쇄신파는 마지막으로 박근혜를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박근혜의 당 혁신 의지를 확인하고 재창당 논란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생각이었다. 박근혜도 피하지 않았다. 의원총회 다음 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 103호에서 전격적으로 ‘7인의 박근혜 집단면접’이 이뤄졌다.

참석자는 남경필 임해규 권영진 김세연 주광덕 황영철 구상찬 의원 등 7명으로 한정했다. 너무 많이 모이면 박근혜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적당한 수로 맞춘 것이다. 재창당에 대한 쇄신파와 박근혜의 생각은 좀 달랐다.

박근혜=“무늬만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정책과 사람을 바꾸는 것이 쇄신 아닙니까. 당명만 바꾸면 국민이 보기에는 국민을 속이는 것밖에 더 됩니까!”

권영진=“‘한나라당’이라는 이름에 대한 국민의 거부 정서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재창당으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당으로 가려면 재창당으로 가야 합니다.”

박근혜=“꼭 구태여 그 용어(재창당)를 써야 합니까? 그것은 신당인데….”

권영진=“재창당 방식으로는 신한국당 모델도 있습니다. 개혁을 한 뒤 마지막에 이름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회동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쇄신파는 1시간 반 동안 박근혜와 설전 아닌 설전을 벌여야 했다. 박근혜가 회동 말미에 이렇게 정리를 했다. “그러면 뼛속까지 바꾸자!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을 이뤄내겠다. 비대위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면 당명을 바꾸는 것을 논의하겠다.”

쇄신파도 받아들였다. “박 전 대표와 우리의 의견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언론 브리핑은 이렇게 나왔다. 김성식 정태근의 탈당으로 분출된 ‘재창당 논란’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순간이었다.

권영진의 증언. “박 전 대표가 처음에 재창당을 반대한 건 우리가 한나라당 해체까지 주장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한국당 모델을 얘기하며 당명을 바꿔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런 논의 끝에 결국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뜻은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만약 우리가 뜻이 다르다고 선언했다면 추가 탈당이 이어지는 등 한나라당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졌을 겁니다.”

박근혜는 그날 비공개 회동에서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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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보고 어려울 때만 당을 맡아 달라고 그러세요. 저 아직 비대위원장을 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여러분과 뜻이 다르거나 여러분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저 안 할지도 몰라요.” 웃으면서 한 말이지만, 뼈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쇄신파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박근혜가 내심 비대위원장 수락을 결심한 것을…. 그러곤 쇄신파도 함께 웃었다. 박근혜는 대선을 꼭 1년 앞둔 그해 12월 19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5년 6개월 만에 명실상부한 ‘주인’으로 당의 전면에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