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표절 의혹에 휩싸인 새누리당 문대성(부산 사하갑)은 지난 18일 “박근혜 대표가 그렇게 (국민대 결정을 보고 결정한다고) 얘기했는데, 제가 새누리당과 박 대표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 되겠느냐”고 말하며 탈당을 번복했다.

문 당선인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이유로 들며 탈당 의사를 접자 새누리당은 발끈했다. 조선일보는 19일자 4면 기사 <박근혜 들먹이자…與 “문대성, 윤리위 회부”>에서 “당 고위관계자는 ‘문 당선자가 박 위원장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 박 위원장 본인도 불쾌해한 것으로 안다’며 ‘당에선 가능한 한 당선자의 입장을 존중해 주려 했으나 더 이상 봐줄 수 없는 상황이 돼, 공개적으로 사실상 탈당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상일 선대위 대변인도 18일 밤“문대성 당선인은 자신의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팔지 말고 스스로 책임있는 행동을 하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 조선일보 19일자 4면 기사

하지만 문 당선인이 탈당을 번복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박 위원장이 그런 빌미를 준 것이며 이런 박 위원장을 견제할 별다른 세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명진 전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은 19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오늘>에 출연해 “김형태 당선자도 탈당하면서 '박근혜 위원장의 뜻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 이런 얘기를 했고, 또 문대성 당선자도 '박근혜 위원장의 뜻에 반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두 사람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건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조금 책임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인 전 위원장은 “‘확실하게 사실을 조사를 해서 그 후에 당에서 결정하겠다’고 박 위원장이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며 “사실 박 위원장이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이거는 우리 당의 윤리위원회라는 기구가 있으니까 거기에서 잘 당헌당규대로 처리를 할 것으로 본다'고 이런 정도만 얘기했어도 참 좋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대성 당선인의 공천이 친박계 인사들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졌다. 친박계 핵심인사인 서병수 의원과 함께 현기환 의원이 부산 공천을 주도했고 조동진 비대위 인재영입위원장도 문 당선인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태 당선인의 공천을 주도하고 출당을 막은 이도 친박계 대구·경북 실세로 전해지고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친박계 인사들이 주물렀다고 하는 이번 공천은 박 위원장의 재가 혹은 암묵적인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또한 박위원장 중심으로 짜여 진 비상대책위원회 안에서 박 위원장의 뜻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인사가 전무한 상황이다. 비교적 직언하는 그룹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말이 박 위원장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의문이다. 이상돈 위원과 이준석 위원이 연일 두 당선인을 출당해야 한다고 했지만 박 위원장은 “대학에 맡기고 법적인 공방으로 가서 결론이 날 것이고, 또 그에 따라 당규에 따라서 조치하면 되는 것이다”고 못 박았다.

즉, 지금의 새누리당은 친이계가 당을 주도하던 옛 한나라당과도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MB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이계 일색이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도 대선주자인 박 위원장이라는 강력한 제어장치는 있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CBS노컷뉴스

반면 새누리당 안에서 박 위원장을 비판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그의 수족들은 공천 과정에서 거의 탈락됐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깜이엄마 왈, 아 뭐라카노 보기 싫은 사람 쫓아낼 때는 속전속결 사생결단하더니 자기 사람 잘못은 눈감고 하늘만 보니 그래 갖고 국민들에게 표 얻겠나”며 박 위원장을 은유적으로 비판했지만 이번 목소리가 현재 당 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

정몽준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잠룡들이 있지만 그들이 가진 당내 세력이나 지지율은 박 위원장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청와대 역시 박 위원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원 20대 여성 살인 사건으로 물러난 조현오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김기용 경찰청 차장을 임명한 것도 박 위원장의 눈치를 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원래 경북 영일 출신인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이 유력하게 검토됐지만 새누리당이 여러 경로를 통해 “총선에서 이기자마자 곧바로 ‘영포라인’ 인사를 하는 건 오만으로 비친다”는 메시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독주 체제’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차기 당대표나 원내대표는 수도권 지역의 40~50대가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박 위원장의 대선 가도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인물들로 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대체적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16일자 5면 기사 <황우여·남경필…새누리 수도권 대표론 급부상>에서 “당내에선 5선 고지에 오른 황우여 원내대표가 차기 당 대표감으로 자주 거론된다”며 “서울 종로에서 낙선했지만 박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홍사덕 의원 등도 수도권 대표 후보로 거론된다”고 전했다.

홍사덕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 실세이며 현재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박 위원장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황우여 원내대표도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황 원내대표는 “이번 당 대표는 조용하고 대선주자와 보조를 맞추고 대선까지 잘 관리할 사람으로 ‘기획상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을 견제할 세력이 없는 ‘박근혜당’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김형태 당선인과 문대성 당선인 문제를 처리하는 모습에서도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의 입만 쳐다보는 상태였다. 다음은 인 전 위원장이 한 말이다.

“새누리당이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고 하면, 모든 책임을 박근혜 위원장이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하면 당의 모든 기구에 자율성을 줘야 되고 국회의원들도 자기들이 스스로 정치적이 소신 있는 발언도 하고 행동도 할 수 있어야지 박근혜 위원장만 쳐다보고 거기에 매여 있으면 이것은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물론 좋지 않고 새누리당에게도 좋지 않은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