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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오원춘 살인 사건이 발생한 수원시 지동의 한 부동산에 상가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조재현기자 |
수원시 CCTV 확대·112 신고센터 인력 보강 '새단장'
1회성 예방교육 개선… 개별적인 진단치료 병행 절실
'외국인 기피 거주지 슬럼화' 국민의식 개선 서둘러야오원춘 사건 1년. 유례없는 흉악범인 오원춘이 남긴 것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이었다.
때문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상처받은
가족을 사회가 감싸안고 달래야 한다. 또 이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범죄예방
시스템을 추슬러 국민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 오원춘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 급격히 퍼진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현상)도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의 선결과제가 돼버렸다.
■ "1년이 간들, 10년이 간들 잊혀지겠습니까" = 오원춘 사건으로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27일 어렵사리 고인의 부모와 전화 연결이 닿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1년 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듯 슬픔이 묻어났다. 취재진의 신분을 밝히자 고인의 어머니는 수화기를 그대로 자신의 남편에게 건넸다.
조심스레 유족들의 근황에 대해 묻자 고인의
아버지 A씨(61)는 "똑같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나 지금이나 똑같다. 1년이 지난들 10년, 100년이 지난들 그 기억이 지워지겠는가. 달라지는 건 없다"고 울먹였다. 사건 이후 고인의 부모는 오원춘 이야기가 나올까, 인터넷은 물론 TV도 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는 사건 이후 생업도 포기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근황을 묻자 "건축 관련 일을 했지만, 그날 이후론 일을 모두 접고 집에만 앉아있다"며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피해 여성의 유족 4명은 지난해 8월 국가를 상대로 3억6천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하지만 부모는 이같은 일과도 사실상 담벼락을 쌓았다. A씨는 "억울한 마음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자세한 건 모른다. 배상받으면 뭐하겠는가…"라며 깊은 한숨만을 내쉬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오원춘 사건은 우리 사회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며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치료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 치안개선 계기, 국민불안까지 씻어야= 오원춘 사건이 국민에게 공분을 산 이유는
경찰의 미흡한 대책에도 있다. 경찰은 신고 접수 13시간여만인 다음날 오전 11시50분께 오원춘의 집에서 심하게 훼손된 피해 여성의 시신을 발견, 초동대처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샀다.
우발적 범행이라던 오원춘의 주장은 CCTV
촬영 화면으로 계획범행임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방범용 CCTV는 이후 경기도 전역에 확대·설치됐다. 범행이 일어난 수원시의 경우 1년새 CCTV를 100여대 이상 늘리기도 했다. 시내 이곳저곳을 24시간 감시하는 첨단 'U-City
통합센터'도 지난해 수원에서 문을 열었다.
경찰의 112신고처리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신고센터 운용 인력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위치
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112 신고자가 급박한 위험 등에 처해 있을 경우 위치정보조회시스템(LBS)을 활용, 신고자의 동의없이 휴대전화 위치 파악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기지국과 GPS·와이파이 등 3가지
방식을 통해 112 신고자의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 위치 추적 적용기준이 신고자의 긴급상황 여부로 제한돼, 출동업무에 혼선이 생겼다는 지적도 있다. '긴급'을 판단할 세부적 기준이 없다는
현장의 하소연 때문이다.
성범죄자에 대한
관리 강화도 국민이 요구하는 목소리중 하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부는 단순히 교도소에서 성범죄 예방교육을 일회성으로 실시하는데 그치지 말고, 성범죄자들의 개별적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 이를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 외국인, 모두가 오원춘은 아니다= 오원춘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는 외국인을 범죄 가해의 중심으로 보며, 이들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현상이 확산됐다. 실제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수원 지동의 경우 지난해 조선족 등 외국인이 1천600여명 이상 거주했지만, 현재는 이들을 바라보는 어긋난 시선때문에 절반 이상의 외국인들이 이곳을 빠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외국인 밀집
지역은 내국인들의 거주 기피지역으로 꼽히며, 자연스레 슬럼화를 겪는 현상마저 겪고 있다. 이들의 결속을 다지는
커뮤니티마저, 오해의 눈길로 와해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단어부터가 잘못 만들어졌다며 국민들의 의식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양한순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원춘 사건은 끔찍한 살인, 즉 강력사건의 범주로 봐야 한다"며 "이 사건을 치안 부재, 저소득층의 사회문제 등으로
해석해야지, 외국인 범죄의 측면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기회를 찾아 한국땅을 밟은 사람들로, 이들이 홀대와 차별을 받거나 목적 달성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크나큰 상실감이 발생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외국인 범죄 발생의 핵심 원인이며, 범죄로 내모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성·박종대·황성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