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서울본부장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숙명적인 배경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영향이다. 어느 자식이 부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자 영혼이다. 부모의 유전자로 구성된 육체와 부모의 양육으로 조련된 인격을 바탕으로 세상에 도전하고 응전하며 그늘을 키워가는 나무와 같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은 동서고금 통용되는 경험칙이다. 박 대통령은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천부적 정치인이다. 짐작건대 그녀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정치본색인 그녀의 유전자 형질상 다른 일을 하기보다는 평생 칩거를 택했을 것임을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은 박정희와 육영수의 모습을 동시에 목격했다. 박정희가 누군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안팎의 정적들과의 대립을 불사하고 철혈의 리더십으로 시대와 맞섰던 인물이다. 산업화의 업적이 창대해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원칙을 강조하고 약속을 앞세우며 원칙없는 타협을 배격할 때마다 대중은 박정희의 유전자를 확인했다. 반면 육영수는 박정희의 독재를 무마할 정도로 온화한 미소의 주인공이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낮은 곳으로 내려가 따뜻한 미소만으로 온기를 불어넣을 줄 알았던 퍼스트레이디였다. 박 대통령이 수많은 선거 현장에서 환한 미소를 지을 때면 유권자들은 그 미소에서 육영수를 떠올렸다.
물론 박 대통령은 오랜 정치 경험으로 자신만의 리더십을 키워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전혀 다른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오늘의 대통령이다. 국정 현안이 그 시대와 다르고 국력과 국격이 그 시절과는 천양지차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동시대인 박근혜의 리더십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박정희와 육영수를 대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부모없는 자식이 없다. 대통령 박근혜의 정치적 자산이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했을 때부터 축적된 것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쉽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에서 유독 아버지 박정희의 모습이 뚜렷한 점 말이다. 정치 입문 시절부터 아버지의 후광이 짙었던 탓일까. 박 대통령은 스스로 정한 원칙에 엄격했다. 남성들의 이전투구판에서 여성성에 안주할 수 없었던 한국형 정치 현실도 그녀에게 부친의 카리스마를 강요했을지 모른다. 모든 남성이 어려워하는 박 대통령의 엄격한 이미지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권위에 짓눌려 직언이 불가하다는 측근들의 하소연에는 자포자기의 심경이 묻어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카리스마에 쩔쩔매는 측근보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는 대장부다운 측근의 부재를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박 대통령이 어머니의 미소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육영수의 미소에 내포된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을 회복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걸출한 지도자의 권위만으로 운영할 수 없는 나라이다. 전 계층이 산업화 혹은 민주화에 매진했던 시절을 극복한 나라이다. 정치적 향도들의 시대는 저물었다. 계층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욕구가 엇갈리는 다양성이 이 시대의 특징이고 이에 부응하는 정치적 덕목은 포용과 화합과 조정이다. 대통령의 권위만으로는 사회 통합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미소가 융합의 촉매가 될 때 화학적 통합이 가능하다. '정적(政敵)들과의 오찬'에서 파안대소하는 오바마는 미국 정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눈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의 포용이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북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서늘한 눈매로 맞서라. 그들은 오금이 저릴 것이다. 그리고 고단한 오늘을 사는 국민들과는 어머니의 선한 미소로 만나라. 국민들은 위안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서늘한 눈매와 어머니의 선한 미소 사이에 박 대통령만의 리더십이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

/윤인수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