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가 단단히 틀어졌다. 받은 패(牌)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장관 자리를 두 개나 받고서도 이런다. 전북 고창 출신과 전남 완도 출신이 무늬만 호남이란다. 지면으로 전해 오는 호남 여론이 장난 아니다. 행정가인 강운태 광주시장까지 나섰다. 간부 회의 석상에서 대놓고 ‘호남 홀대’를 얘기했다. ‘차관 인사 때 두고 보겠다’는 으름장까지 깔았다. 민주당도 두둔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이 실종됐다’며 성명서로 불을 지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전라도에게 장관 자리 서너 개는 당연히 받아야 할 할당 같은 거였다. 정권의 탄생지가 어디든 호남에겐 TO가 있었다. 호남 맹주를 꺾고 정권을 잡은 김영삼 정부도 첫 내각에서 6명의 호남 장관을 임명했다. 호남 정권 김대중 정부가 5명, 부산 정권 노무현 정부가 4명이었다. 정권이 호남이면 집권여당 몫으로, 정권이 영남이면 지역 배려로 챙겼다. 장관 자리 두 개를 두고 ‘달랑 두 개’라고 투덜댈 만 하다.
같은 날 인사에서 경기도 출신 장관은 몇 명이나 될까. 장관이 17명이다. 서울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다. 두 번째가 경기도였으면 좋겠는데. 영남이 4명으로 두 번째다. 세 번째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2명씩 배출한 호남, 충청, 인천이 공동 세 번째다. 그리고 끝이다. 혹시나 해서 총리 후보의 고향을 뒤적거려 봤지만 영남이다. ‘무늬만 경기도’라도 없을까 따져봤지만 이마저도 없다. 경기도 출신 장관 ‘0명’. 이런데도 경기도는 조용하다.
인수위ㆍ장관 도 출신 ‘0명’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이상한 침묵을 이상하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긴 불과 한 달여 전에도 그랬다. 권력 구성의 요람이라는 인수위원회가 발표됐다. 서울 9명, 영남 6명, 호남 4명, 충청 4명, 기타 1명이었다. 경기도는 0명이었다. 며칠 뒤 인수위 파견 공무원들이 발표됐다. 정부 부처와 차기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할 핵심 공직자 53명이었다. 거기에도 경기도 출신은 3명뿐이었다.
다른 지역은 그때도 술렁댔다. ‘박근혜 인수위, 충청 현안 뒷전’(충청 투데이ㆍ1월9일자) ‘인수위 전문위원 道 출신 없다’(강원도민일보ㆍ1월 12일)…. 지역 여론을 옮겨 쓴 언론 제목이 그랬다. 하지만 경기도는 그때도 조용했다. 장관 후보 ‘0명’에도 조용하고, 인수위원 ‘0명’에도 조용한 곳, 이게 인구 1천200만을 자랑하는 웅도(雄道) 경기도다. 권력의 고기맛? 그런 건 애초부터 몰랐던 듯하다. 정치적 입맛은 차라리 초식동물로 변해버린 듯하다.
대한민국 예산은 장관이 지출한다. 대한민국 개발도 장관이 결정한다. 대한민국 수사도 장관이 결재한다. 내 생활, 내 재산, 내 권리를 쥐고 흔드는 생활 속 권력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십수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수원시가 신동과 화성 태안을 연결하는 도로 계획을 세웠다. 삼성 주변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로였다. 하필 그 계획선 복판에 생산녹지가 있었다. 농림부의 전용 허가가 떨어져야 하는 땅이다. 협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농림부 6급’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원시 간부들이 온갖 노력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공사기간 5년 중 2년을 이렇게 ‘농림부 6급’이 틀어쥐고 있었다. 지금은 ‘박지성로’로 불리는 그곳에 얽힌 뒷얘기다.
당시 담당자 ‘최’가 했던 이 말이 생생하다. “서울 가면 우린 바보야. 장관을 아나 국장을 아나 과장을 아나”.
의원ㆍ도지사ㆍ시장 ‘침묵’
경기도민의 삶을 책임지는 경기 공무원들은 잘 안다. 장관 없는 경기도에서 공무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중앙부처에 출장 다녀오라면 걱정부터 덜컥 나고, 동문회 명단 꺼내놓고 인연 찾아 허둥댄다. 이런 게 다 장관 없고 끗발 없는 경기도에서 공무원 해먹는 죄다. 강운태 시장이 그날 이런 말을 했다던데. “(호남)지역의 현안이 많은데 호남 장관 두 명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라는 말이냐”.
이제 누군가 나서서 따지고 캐물어야 한다. 1천200만 경기도에는 ‘장관 깜’이 없다는 얘기인지 따져야 하고, 936만 유권자의 도움이 2014년에는 필요 없다는 것인지 캐물어야 한다. 전라도에서 장관 달라는 건 권리고 경기도에서 장관 달라는 건 탐욕이냐고 따져야 한다. 충청도에 장관 주면 지역 배려고 경기도에 장관 주면 지역독점이냐고 캐물어야 한다. 장관 2명인 호남이 홀대면 장관 0명인 경기도는 천대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ㆍ군수, 이럴 때 떠들라고 뽑아준 거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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