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관료들이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이 탄로나 조사를 받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대가성이 없는 돈”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몇 푼의 세뱃돈을 주거나, 부모가 자식들에게 몇 천원·몇 만원의 용돈을 주는 것에 대하여 ‘대가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나, 정치인이 장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수 억·수 천만원을 받고,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지나친 표현을 하는 것일까.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건넨 돈이 소액인 경우 대가성이 없는 격려적·우정적인 것일 수 있다. 돌이켜보건대 나도 40년간 정치인에게 소액을 건넨 것이 약 20회 된다. 그것은 주로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중·고시절에 동고동락했던 친구나 선배가 정치를 하고 있거나, 잘 알고 있는 동향인이 정치를 하고 있거나, 고향과 관계없이 그의 정치활동이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억·수 천을 받고 ‘대가성이 없는 돈’이라고 하면, 우리 국가·사회 현실은 보다 ‘민주정의’·‘분배정의’가 지배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가성과 관계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부유층이 진정으로 정치활동에 보태어 쓰라고 거액을 증여하는 경우다. 이 경우 증여세는 별론으로 하고, ‘우정적 금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어렵게 번 돈을 대학의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정치인과 부유층간에 오고 간 금전이 이런 경우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둘째, 장사하는 사람들이 거액의 돈을 주면서 ‘당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여 달라는 경우다. 이것이 ‘민원성’이건 ‘부정’이건, ‘대가성’이 있고 수뢰죄·정치자금법위반죄 등 범법행위에 속한다. 검찰에 불려온 인사들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돈의 수수와 동시에 ‘범법적행위’를 부탁한 사실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사후에 은근살짝 자기들의 ‘당면문제’해결, 또는 모종의 ‘압력’·‘주선’을 부탁하는 것이 보통이다. 셋째, 정치인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하는 시점 또는 근접한 시점에 ‘어떤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탁하기 위하여 또는 자기들의 기업경영에 우호적이고, 그러한 정책수행·입법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경우이다. 항간에서 말하는 ‘보험금’으로 지급해 두는 경우다. 둘째의 경우도 사회악이지만 셋째의 경우는 단편적·국소적 해악이 아니라 국가전체의 정책에 영향을 주고, 적폐가 누적되어 있는 법률들을 개정 못하게 하는 거시적·미래적 압력수단으로 작용하므로 오늘날과 같이 정당·정치인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는 흔히 말하는 ‘정경유착’으로 이를 ‘제도적’으로 막고, 엄벌하지 않고는 정치선진화는 요원하고, ‘정당’은 점점 국민의 신뢰로부터 멀어져 갈 것이다.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기타 정치인은 개인적·미시적 견해에 사로잡혀 있다. 예를 들면, 대중목욕탕에 들어간 어린이가 ‘이 많은 물’에 내가 살짝 오줌을 좀 싸기로서니 무슨 영향이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거대한 기업·부자들로부터 개인적으로 얼마를 받아쓰는 것이 무슨 큰 문제이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치인의 이런 사고와 행태는 은연 중 ‘정의로운 입법’의 방해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부제도’가 ‘뇌물제도’로 변질되는 것도 막아야 하겠지만, ‘정치자금’에 대하여 국가가 공적으로 부담액을 증가시키는 것을 연구하여야 하고, 지구당관리·선거에서 돈 안드는 방안을 획기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수 십년간 답습해 온 관행을 버리지 않으면 ‘라이브홀쯔’(G.Leibholz)가 말한 ‘정당국가’는 민주주의 메카니즘이 아니라 ‘정당폐거리국가’로 변질될 것이다. 정당이 ‘정도’에서 벗어나 있고 ‘국가·사회의 당면문제’를 개혁할 의지를 갖지 못하고, 또 ‘수직적운영’양상을 계속 보임에도 당이 아니면 안된다는 ‘정당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무시한 채 표를 얻기 위한 발언으로만 보인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악습에 물들어 있는 구 정치인들을 배제되고, 진정한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정치인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게 되기 바란다. 다시 말하거니와 고급공무원의 비리, 정치인의 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면 정부관료와 정당정치인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 단계를 넘어서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송희성/전 수원대 행정대학학장, 공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