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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격 사퇴…안철수는 왜 울었을까?

[취재파일] 전격 사퇴…안철수는 왜 울었을까?

 
안철수는 울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출마선언을 할 때도 너무 긴장해 울 것 만 같더니, 후보 사퇴 선언을 할 때는 눈물이 눈가를 적시고 말았다.

나는 원래 잘 울어서 그런가-아침에 기자라는 직업상 조간신문을 들춰보다가도 흔한 미담 기사를 보면 울고 만다- 다른 사람이 우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다. 나는 누구를 상대로 울부짖는 것은 싫어하지만, 한 인간이 홀로 우는 것은 그 장소가 어디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안철수가 운 것에 대해, 누군가를 향해 울었다는 해석과 혼자 울었다는 해석이 갈리고 있다. 누군가는 안철수의 회견에 문재인에 대한 원망이 묻어 났다고 말하고 있고, 누군가는 안철수가 자기를 못 이겨 눈물까지 보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이 야권 단일화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것이지만 그동안 누가 양보를 할 것인가는 논의가 엇갈려 왔다. 참, 양보라는 단어는 최근 단일화 룰 협상이 시작되면서 쏙 들어갔었지만 오히려 안철수가 처음 출마선언을 한 두달 전쯤만해도 여론조사가 아닌 후보간 담판을 통해 누가 양보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정치권의 사람들이 많았다.

안철수 후보가 양보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사람들의 논리를 종합하면 이렇다. 안철수를 노련한 정치꾼으로 보는 사람들의 논리는, '안철수는 이번 대선이 목표가 아니라 차기 대선이 목표다. 본인도 정당도 없고 정치경험도 없다는 것을 잘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극적으로 양보하고 문재인 손을 들어줄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반면 안철수를 정치판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의 논리는 '안철수는 정치권에 들어오면 견디지를 못할 것이다. 검증 당하고 지지율 출렁이고 하면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둘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후보가 양보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사람들도 꽤 많았다. 문재인이 맘이 여리다고 보는 사람들은 '문재인은 원래 권력 의지가 약하다. 정권교체라는 친노 세력에 떠밀려 나온 것이다. 그러니 안철수를 앞세우고 자신은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고, 문재인에게 소명의식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문재인에게는 정권교체라는 사명이 안철수보다 더 강하다. 단일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면, 문재인이 스스로 양보를 해서라도 단일화를 하려 할 것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단일화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양보 전망은 쏙 들어갔다. 두 후보가 모두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을 재차 삼차 밝히면서 슬슬 3파전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까지 오늘(23일)은 나오던 참이었다. 단일화 방식 협상을 희화화해 문재인 후보가 '프라이드 치킨' 하니 안철수는 '양념치킨' 하고, 문재인이 '그럼 프라이드 반, 양념치킨 반' 하니, 안철수가 '양념 반 간장 반'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또 한 50대 남성이 단일화 TV 토론을 시청한 뒤에 단일화를 이뤄달라며 자살을 했다는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러던 오늘 하루, 그렇게 야권 단일화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던 오늘, 안철수는 그 하루를 보내고 후보 사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울었다.

안 후보의 눈물에 대한 평가는 여야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아마추어' 안철수의 한계를 보여줬다면서 특히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프로' 박근혜를 부각시키면서 이제 시야에 들어온 단 한 명의 상대,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기 위한 논평이다. 안 후보의 눈물은 그의 나약함과 문 후보로 부터 당한 고통을 보여준 셈이 된 거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반면, 그토록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실망'이라며 은근한 비판을 해왔던 민주당에서는 안 후보가 어려운 결단을 내려 주었다, 진심이 느껴졌다며 감동하고 있다. 처음 안철수 후보가 '사퇴'선언을 했을 때는 이러다 문 후보만 '욕심쟁이'되는 것 아닌가 해서 당황했던 민주당 진영은 '정신 차리고 곡식을 거두자'는 쪽으로 정리를 한 것 같다. 민주당에게 안 후보의 눈물은 그의 진정성의 상징이다.

눈물이라는 것은 미소보다는 솔직해서 무언가를 위해 이용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치인이 된 안철수의 눈물은 또 이렇게 대통령 선거라는 큰 싸움에서 이리 저리 '활용'되고 있다.

새누리당을 취재하면서 박근혜 후보는 왜 눈물을 보여주지 않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박 후보는 지난번 딸이 성폭행을 당해 복수에 나서는 엄마를 소재로 한 영화를 관람한 뒤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펑펑울어 눈이 부은 채 영화관을 나온 조윤선 대변인과 대비되어 기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선대위 관계자들도 박 후보가 울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한다. 박 후보의 한 측근은, 어느날 박 후보에게 왜 눈물을 흘리지 않으시냐 물었더니 '눈물이 (저는) 말랐나봐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정치인의 눈물'은 늘 이렇게 이용당하기 때문에 울기 싫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감정이 북받쳐 울 수도 있는데, 대선은 왜 이렇게 추운 겨울에 하는지…우리 정치는 아직 너무 차갑다.

한승희 기자 ruby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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