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 경기도 도지사로 끝난다고 봐야지. 기세가 꺾이면... 3선 도지사인들 되겠나.’
‘TK(대구·경북)도 김문수가 고향인데 일방적으로 깨지지는 않을 것! 2007년 경선 때 이명박 캠프는 TK지역에서 박근혜를 한마디로 보내더만...“시집도 안 가본 여자가 뭘 안다고”... 이 말이 먹히더라고.’
‘김문수 지사가 세종시 이전 반대해서 충청도 표는 죽어도 못 가져올 텐데...대신에 다른 지방 전체를 상대로 해서 자치와 분권을 주겠다고 하고 단체장, 지방의원 같은 지방자치 세력과 연대하는 방안 모색해야.”
중부일보가 단독 입수한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현재 경기도청에 근무중인 공무원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된 문건에는 이처럼 김 지사가 대선에 출마해야할 이유와 선거 전략 등이 총망라됐다.
▶누가, 언제, 왜 작성했나=문건 작성자는 자신의 이름과 작성 시점, 경위에 대해서는 검은색 펜으로 덧칠했지만 프린팅된 활자를 은폐하지는 못했다. 작성자는 현재 경기도청에 근무하고 있는 계약직 공무원 A씨로 확인됐다. 경기도 관계자는 29일 “A씨는 사무관(5급)에 해당하는 계약직 가급으로 근무중”이라고 말했다. A4용지 4쪽 분량의 문건 작성 시점은 4·11총선 직후, 김 지사의 대선 출마 직전인 것으로 보인다. A씨는 ‘4·11총선 전후에 외부에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지만, 4·11총선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 담겨있고 지사직 사퇴가 언급돼 있어서다.
A씨는 문건 3쪽에 ‘4·11총선에서 박근혜가 거둔 승리를 폄하, 과소평가해서 안된다. 박근혜 지지에 거품이 있다던지, 시간이 지나면 대세론이 사라질 것이라는 등 막연한 생각, 안되게 돼 있다는 미신적 예측에 근거해서는 곤란. 총선 내용을 뜯어보면 박근혜의 퍼펙트한 승리가 분명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수도권과 20~40세대에서 졌다고 비판하지만 수도권 전체에서 16만표 밖에 안진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또 문건 4쪽에 ‘결국 수도권에서 이겨야 되는데 경기도지사직 갖고 배수진을 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도권 표 모아서 이겨야지. 경기도지사직 사퇴가 수도권 표 결집이라는 시너지 효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플랜을 잘 짜야’라고 적었다. 김 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 이튿날 지사직 사퇴 의사를 번복한 점에 비춰볼때 문건 작성시점은 총선 직후, 김지사의 대선출마 선언 직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건의 작성 시점으로 볼때 A씨는 ‘박근혜 원맨쇼’로 막을 내린 4·11총선 결과 때문에 김 지사가 대선 출마를 망설이자 김 지사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 앞뒷면에는 A씨가 만난 것으로 추청되는 복수의 실명 등이 자필로 기록돼 있다.
▶어떤 내용 담겼나=김 지사의 대선 출마 당위성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비교, 박 위원장과의 차별성, 경선 전략 등이 순차적으로 나열돼 있다.
문건 1~2쪽은 주로 김 지사의 대선 출마 당위성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박근혜는 쇼윈도에 전시된 마네킹 같은 사람이다. 우리 국민이, 무엇보다 김문수 스스로 박근혜를 알 만큼 아는 것 아닌가? 박근혜의 비전과 리더십으로는 안된다.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내가 박근혜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도전해야 한다,’, ‘북한이 3대 세습하고 미사일 쏴대고 중국에서 탈북자들 굴비 엮듯이 끌고 가도 정치권, 어느 정당도 말 한마디 속 시원하게 제대로 안한다. 김 지사가 이런 문제에 대해 분명히 자기입장을 밝히고 국가의 큰 비전과 소신을 대선이라는 큰 무대를 통해 국민에게 비전을 알리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큰 정치인의 길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반대 데모하고 대학교 때 유신반대 데모, 노동운동에 투신할 때 박정희 독재의 장벽이 지금 박근혜의 장벽보다 낮았다고 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그때는 단순히 ‘젊은 稚氣’로 불가능에 도전했던 것인가? 김연아가 맨땅에 박치기해서 세계를 제패했다고 자랑하시더만... NHK에서 빅 히트 친 대하드라마 <칭기즈칸>의 결론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는 자야 말로 진정한 용자, 그래서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문건은 박 위원장과 김 지사를 비교로 이어졌다.
‘김문수의 최대 정치자산은 삶의 궤적이다. 이건 김문수가 박근혜 보다 절대 유리한 점이다.박정희의 긍정적 유산과 부정적 유산을 동시에 계승한 박근혜와 70, 80년대를 가장 치열하게 산 김문수의 대결 자체가 ‘빅쇼’이고, 매치가 성사되는 순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5:5 내지, 박빙의 게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40, 50대 연령층 대부분 대학을 나왔고, 대학생 때 데모 안한 사람 누가 있나? 80년대 학번은 거의 대부분이 운동권 써클 출신이다. 이제 평범한 회사원, 가장으로 사는 이 사람들 거의가 김문수 편이지 박근혜 편 들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을 박근혜가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지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도 전두환 사위, 군 출신 이런 사람들 빼면 대부분 386, 486 운동권 물 먹은 사람들 아닌가?’라고 적혀있다.
문건 3~4쪽은 박 위원장과의 차별화, 경선 전략 등이 나열돼 있다.
‘(총선에서 승리한)박근혜의 업적을 김 지사가 액면 그대로 평가해주라. 그래야 김 지사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박 대표의 힘을 김 지사의 힘으로 빌려 온다고 할까. 역이용 해야지. 총선결과로 나타난 박 대표의 저력, 역량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박근혜 대표가 있기에 우리 새누리당의 대선 전망은 밝다. 그런데 후보는 내가 되고자 한다.”, “하늘에 계시는 박정희 대통령도 이 일은 박근혜가 아닌 나한테 맡기고 싶어 할 것이다. 박정희를 더 빛나게 하려면 박근혜가 아닌 내가 대통령 되는 것이 맞다.” 이런 식으로...’ 라는 내용이 들어었다.
문건은 판세와 수도권 표를 결집시켜야 한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끝을 맺었다.
‘이번 선거에서 보면 지방, 특히 시골에서는 박근혜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김문수가 나가서 일대일 승부를 하면 호남이나 부산 같은 데서는 박빙의 승부라고 봐야. TK도 김문수가 고향인데 일방적으로 깨지지는 않을 것!’, ‘충청도, 강원도에서는 게임이 안된다고 봐야 함. 김문수 지사가 세종시 이전 반대해서 충청도 표는 죽어도 못 가져올 텐데... 대신에 다른 지방 전체를 상대로 해서 자치와 분권을 주겠다고 하고 단체장, 지방의원 같은 지방자치 세력과 연대하는 방안 모색해야. 그런 점에서 김두관이 나오면 김 지사한테도 여러모로 좋을 텐데...’ 라고 적혀있다.
▶김지사에게 전달됐나=A씨는 문건에 ‘짓사님이 이번 대선에 도전하셔야 한다는 의견만 모아서 보내드립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이 내용만 놓고 보면 김 지사에게 전달됐을 가능이 매우 높다. 하지만 A씨는 김 지사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A씨는 “문건을 작성한 사실은 있지만 내용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 같아서 (김 지사에게) 보내지 않았다”면서 “메일 발송 여부를 확인해보면 알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
▶관권선거 논란 거세질듯=김 지사와 박 위원장을 비교한 문건이 경기도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이면지에서 발견된 데 이어 현직 공무원이 작성한 문건까지 나옴에 따라 관권선거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이 김 지사에게 전달됐다면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고, A씨의 주장대로 문건을 김 지사에게 전달하지 않았더라도 현직 공무원이 선거와 관련된 여론을 수렴했고,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한 것 자체만으로도 관권선거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여서다.
당장 다음달 1일 개회하는 경기도의회 제267회 임시회에서 이 문제와 함께 지사직 사퇴 문제가 쟁점화될 전망이다. 도의회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다음달 2, 3일 열리는 도정질의를 통해 총공세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민주당 김종석(부천6·건설교통위)의원은 이날 “김문수 도지사의 대선 출마로 경기도 운영에 무리가 오고 있다”면서 “도지사직을 사퇴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만구기자/prime@joongboo.com
이복진기자/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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