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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한 알바 여대생 “치욕당한 몸 소독”

성폭행 당한 알바 여대생 “치욕당한 몸 소독”

 
[동아일보]

‘…TV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제로 나한테 일어나고 있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고 모욕스럽다. 그가 나에게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나를 죽일까봐 너무나 공포스럽다. 그래서 대신 내가 죽는다. 죽어서 진실을 알리겠다. 내가 당한 일을 인터넷에 띄워 알려 달라. 친구들아 도와줘. 경찰 아저씨 이 사건을 파헤쳐서 그 사람을 사형시켜 주세요….’

10일 오후 5시 10분경 충남 서산시 수석동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모 씨(23·여)의 휴대전화 메모에 적힌 유서 일부다. 이 씨는 아버지 명의의 승용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평범한 가정에서 대학에 다니며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꽃다운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협박해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는 이 씨가 아르바이트했던 피자가게 사장이었다.

○ 성폭행에 이은 집요한 협박

이 씨의 휴대전화 수신 문자함에는 그녀의 나체 상반신 사진이 있었다. 가슴을 자신의 팔로 ‘X’자로 가리고 얼굴은 수치스러운 듯 옆으로 돌린 채였다. 경찰은 억지로 찍은 사진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곧바로 사진의 발신자 추적에 나섰다. 그녀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근무했던 서산시내 피자가게의 주인 안모 씨(37)가 발신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12일 그를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치욕스러운 몸 소독하고 싶다” ▼

휴학 뒤 등록금 벌려 알바 악마의 덫에 걸려 끝내… “죽어서 진실 알리겠다” 유서

안 씨는 8일 밤 서산시 수석동의 한 모텔로 이 씨를 불러내 성폭행한 뒤 강제로 나체 사진을 찍어 알리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9일 오전 집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을 받은 이 씨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며 아버지 승용차를 끌고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은어머니(49)가 준 5년 된 중고 아반떼 승용차는 그녀가 수치심과 모멸감에 떨며 생을 마감하는 공간이 됐다. ‘나는

살기 위해 그를 만나러 나갔다. 치욕을 당한 몸을 모두 소독하고 싶다’는 유서 내용은 그녀의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이 씨는 유서를 쓰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협박을 받았다. 유서에 ‘이 더러운 놈 봐라. 이 순간에도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더러운 카톡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토할 것 같다’고 썼다.

○ 어린이를 가르치고 싶었던 여대생

이 씨는 두 살 터울인 오빠가 7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부모와 일곱 살 된 늦둥이 남동생과 함께 조부모 집에서 살았다. 중장비 기사인 아버지(52)가 등록금은 내줬지만 용돈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이 씨는 2008년 충남의 H대 아동미술학과에 입학한 뒤 곧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학년 때는 피아노 학원을 하는

고모(47) 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해 용돈을 벌었다. 여상 시절 관악부 활동으로 피아노와 플루트를 다룰 수 있었던 덕분이다.

지난해 6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세상 경험도 하고 싶다”며 휴학한 뒤에도 아르바이트는 계속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장애인

시설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올해는 피자가게에서 하루 9시간씩 일해 한 달에 60만∼70만 원을 받았다. 이달 13∼15일에는

친구들과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피자가게 주인 안모 씨(37)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안 씨는 “사귀고 싶다.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고 이 씨를 집요하게 협박했다.



○ 자살 전 친구와 휴가 계획도 세워


유족이 12일 장례식을 치르고 귀가하자 집에는 홈쇼핑에 주문했던 이 씨 옷이 배달돼 있었다. 다음 날로 예정된 친구들과의 여행을

위해 이 씨가 주문해 놓은 검은색 반팔 티셔츠였다. 이 씨의 부모는 옷을 끌어안고 다시 한 번 오열했다.

안 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 사실을 시인했지만 8일이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안 씨가 이전에도 그런 사실이 있거나 다른

여종업원에게도 성적으로 접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 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복원하고 있다. 서산YMCA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행 사건이 더이상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서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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