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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유일의 다문화도서관, 이주민의 사랑방이 되어 드립니다"

"수원 유일의 다문화도서관, 이주민의 사랑방이 되어 드립니다"
[인터뷰] 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 리온소연 대표
송병형 기자

"베트남출신 엄마 한 분이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저희가 하는) 음식부스에 무척 오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한국음식 만드는 데는 가도 되지만, 너희나라 음식하는데는 가면 안된다'고 막은 거에요."
 
▲  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 리온소연 대표  © 수원시민신문
수원 유일의 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화서성당 맞은편)을 2년째 운영하고 있는 리온소연(여, 28) 대표는 우울한 기억 한 토막을 이렇게 소개했다.
 
며느리가 결혼이민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시어머니가 행사 참여를 막았다는 이야기였다. 리온 대표는 비슷한 이유로 다문화센터의 출입을 반대하는 다문화가정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본명이 '이소연'인 리온 대표는 이처럼 아직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우리사회가 밝아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리온소연'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가 사용하는 이름에는 '이(리) 온(온) 세상이 밝고(소) 고운(연)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한다.
 
22일 오후 수원시민신문은 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에서 리온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한신대 재학시절부터 이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해 오고 있는 리온 대표는 지원이 없어 힘들다고 하면서도 '재밌어서' 활동을 그만둘 수 없단다.
 
리온 대표는 다른나라 땅에 와서 사느라 마음 줄 데가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도서관이 아지트가 되고 사랑방이 되고 있다며 뿌듯해 했다.
 
다음은 리온 대표와의 인터뷰를 간추린 것이다.
 
▲  수원다문화도서관에는  중국책이 1천200권, 일본책이 170권, 그밖에 러시아, 베트남, 태국,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책들이 구비돼 있다. © 수원시민신문

- 수원에서 유일한 다문화도서관이라고 들었습니다. 도서관은 언제 어떤 취지로 시작하셨나요?
 
지난 2009년에 엄마가 만드는 다문화영상동화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결혼이민자인 엄마가 아이한테 자기나라의 동화책을 읽어주는 프로젝트입니다. 저랑 여대생, 그리고 중국인 청년 한 명, 이렇게 셋이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 25살이었어요.
 
당시는 다문화센터가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인데 거기서 하는 동화라는 것이 한국동화 위주였어요. 몇년 사이에 인식이 바뀌어서 현재는 그렇지가 않지만, 당시엔 사회분위기가 결혼이민자는 자기나라 말을 쓰면 안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한국어교육이나 한국에 적응는데 도움을 주는 교육은 필요하지만 결혼이민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동화(同化)주의'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건데요. 시작은 했지만 그 나라들의 동화책을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다문화도서관은 서울 이문동과 안산, 두 군데만 있었어요. 책을 빌리기 위해 차를 한 대 대절해서 결혼이민자인 엄마들과 함께 안산까지 책을 빌리러 다녔습니다.
 
사실 안산의 도서관도 당시 생긴 지 얼마 안된 때라서 책장에 책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생각하던 분위기의 도서관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엄마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에요. 자기나라의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어서요.
 
엄마들이 책을 반납을 하려고 해도 지리도 모르고 해서 저희들이 책을 걷어다 반납까지 했습니다. 그일이 너무 힘든 거에요. 그래서 수원에도 다문화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2010년 7월 드디어 화서동에 10평짜리 작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30평인데 2011년 5월에 이사왔어요.
 
- 다문화도서관이 화서동에 자리잡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수원 화서동에는 관련기관들이 모여 있어요. 맞은편 화서성당 안에 수원시에서 만든 수원다문화가족센터가 있고, 근처에 여성가족부에서 만든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가 있습니다. 경기대 교수 분이 하는 다문화교육상담센터도 있어요. 그리고 저희 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까지 모두 4곳이 몰려 있습니다.  
 
- 순수하게 개인들이 봉사차원에서 운영하고 계신 건데요. 책이나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계신가요?
 
서울은 모 회사에서, 안산은 모 은행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데 저희는 순수하게 활동가들과 결혼이민자분들의 힘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처음 10평으로 시작할 때에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기증받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몇 개월만에 2천 권의 책을 기증받아 그걸로 수원시 도서관사업소에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작은 도서관 등록은 기부하시는 분들에게 영수증을 발급해 드리기 위해서 꼭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책이 쌓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람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됐어요. 그래서 좀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한 겁니다.
 
운영비는 작년말까지 제가 투잡을 했어요. 학원강사를 해서 번 돈을 모두 운영비로 썼습니다. 문제는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거에요. 제가 아파서 일을 쉬기라도 하면 당장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작년부터 후원회원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저희 활동가들이 젊다보니 인맥이 한계가 있어서 쉽지가 않습니다. 겨우 후원금으로 월세만 해결하고 있어요.
 
법인을 만드는 게 좋기는 한데요. 작년말에 경기도청 다문화가족과에 서류를 갖추어 신청을 했는데 후원회원들의 주민등록번호나 통장내역을 제출하라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회원분들의 개인정보를 누출할 수는 없었거든요.
 
나중에 다른 분들에게 들었는데 그런 개인정보는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서류가 아니라는 거에요.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굳이 왜 그것까지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다문화도서관은 어떤 분들이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있나요?
 
우선은 저희가 다문화센터들과 연계되어 있어서 이야기를 듣고 책을 빌리러 오십니다. 처음 시작할 때도 주로 중국출신분들이 많았고, 지금도 중국출신분들이 많습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인데 하루에 10명에서 25명정도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책은 1천200권, 일본책이 170권, 그밖에 러시아, 베트남, 태국,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책들이 있어요.
 
화요일과 목요일에 저희가 이곳 한켠의 부엌에서 진행하는 요리교실이 있어서 조금 많이 오는 편입니다.
 
▲  도서관 한켠의 부엌에서는 매주 요리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수원시민신문

- 도서관에서 다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계신가보군요?
 
일주일에 두 번 지구별 요리교실을 합니다. 보통 센터 등에서는 요리한다고 하면 한국요리를 가르치는데 저희는 자신들의 나라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가면 김치나 김밥, 떡볶이가 먹고 싶잖아요. 마찬가지에요. 엄마들이 모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에서 오신 분들은 요리 자체가 집에서 해먹기가 어려운데다 베트남식당도 많지가 않아서 더욱 그래요.
 
요리교실에는 지역청년들도 와서 같이 음식을 만드는데, 그걸 너무 재밌어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서 좋아들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갖자는 차원에서 주말에는 광교산 아래 텃밭에 가기도 합니다.
 
또 일주일에 한 번은 3살부터 7살까지 아이들이 와서 하는 놀이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꼬마학교라는 토요프로그램이에요. 여기까지가 결혼이민자분들과 하는 프로그램이구요. 중도입국청소년들과 하는 프로그램이 또 있습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이란 말은 얼마전에 생긴 말인데요. 요즘에는 한국인 아빠도 외국인 엄마도 재혼으로 결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인 엄마가 모국서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는데 그 아이들을 중도입국청소년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24살 청년까지가 많습니다.
 
이 아이들은 청소년 시기에 한국어 교육도 안된 상태에서 한국으로 오다보니 적응하는게 무척 어렵습니다. 진학도 문제고, 진학하더라도 자기 학년이 아닌 다른 학년에 다녀야하구요.
 
저희 도서관에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도 하고 놀러도 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지구별 음악교실'이라고 타악기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있고,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장소에 데려 갑니다.
 
한국어가 되는 아이들에게는, 1년간 자원봉사를 하는 9명의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있어서 1대1 학습멘토링도 해주고 있습니다.
 
- 성과가 좀 있나요?
 
연변에서 온 17살짜리 조선족 아이인데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 탓에 게임만 하고 친구도 없었어요. 말도 안했어요.
 
이 아이에게 1대1 학습멘토링을 해 주고 토요프로그램도 참여시켰더니 한달만에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3달이 지나고는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일 정도가 됐습니다.
 
아이들은 친구가 없는 걸 가장 힘들어 합니다. 저희 도서관에 오면 기댈 수 있는 형들도 있고 , 상담을 해주거나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어서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중도입국청소년이 수원에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여기에 25명의 아이들이 오는데 정확한 통계도 정부도 없는 걸로 압니다. 결혼이민자는 입국과정에서 통계가 잡히지만, 중도입국청소년의 경우에는 관광비자로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정확하게 집계가 안된다고 합니다. 추산하기로는 전국에 3천명정도가 된다고 하네요.
 
- 여건이 힘든데도 이렇게 도서관을 운영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저는 한신대 재학시절부터 이주민을 위한 활동을 할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때부터 7년간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지금 하는 다문화도서관이 저는 너무 재밌어요.
 
결혼이민자분들과 청소년들은 다른 나라 땅에 와서 사는 겁니다. 마음을 줄 데도 없는 이들에게 이곳은 아지트공간, 사랑방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편하게 와서 수다를 떨고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또 여러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에너지들과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보고 느끼는게 기쁩니다.
 
- 즐거웠던 기억이나 힘들었던 기억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들을 소개해 주세요.
 
예전 10평에서 30평으로 이사할 때 회원분들이 도와주러 오셨는데 책장은 무겁다고 남자분들이 나르고, 책은 여자분들이 날랐어요. 그런데 정작 책이 더 무거웠어요. 모두 5천권이었는데요. 그때 그렇게 고생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이제는 친구들을 많이 데려와도 되겠다"며 모두들 좋아하던 게 기억납니다.
 
또 얼마전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저희가 음식부스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요리와 베트남요리 두 개였는데요. 3일간 1천500명, 1천900명, 1천500명이 찾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 주는 게 너무 힘들었어야 하는데 다들 재밌어하는 겁니다. 자기들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게 고마워서요.
 
안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베트남출신 엄마 한 분이 음식부스에 무척 오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한국음식 만드는 데는 가도 되지만, 너희나라 음식하는데는 가면 안된다"고 막은 거에요. 그 엄마는 한국음식이 입에 안맞아 무척 고생하던 분이라 그 행사를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런 식으로 다문화도서관에 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데 다문화센터에 가는 것은 싫어하는 가족들이 있어요. 결혼이민자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서요.
 
또 대부분의 다문화센터들이 종교단체에서 위탁운영하고 있어서 종교가 다른 이유로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는 특히 다문화가정의 교육격차에 관심이 있어서 다문화도서관을 만들게 됐습니다. 작은 도서관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이주민 지원기관으로서의 기능도 하느라 더 바쁘긴 하지만, 국경을 나누지 않고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 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 주소 및 연락처 :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71-107 2층, 전화 010-9002-0327(대표 리온소연), 네이버카페 http://cafe.naver.com/glocal79
 
* 후원계좌 : 농협 355-010-2460-43(예금주 : 수원다문화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