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시기에 박근혜가 대구에 내려갔다.
최근 개관한 대구 안전 테마파크를 돌아본 뒤, 대구 의료.관광 무슨 ‘토론회’에 참석했다
고 한다. 지역구가 대구와 인접해 있다고는 하나 박근혜의 정치적 위상으로 볼때, 행사
참석보다는 특별한 그 무엇이 느껴지는 행보다.
이행사에 경주 정종복이 만사 제끼고 박근혜를 찾아왔다.
미리와서 기다리다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박근혜와 악수하는 데
까지는 성공했다. 이거뉴스다! 싶은 기자들이 플레쉬를 터뜨리자 박근혜가 ‘사진은 찍지
마시라’며 악수만하고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정종복의 구애를 거절한 것이다.
오늘자 일간지에 찍힌 사진을 보니 가관도 아니다. 박근혜와 눈도장 찍기위해 줄을서있고,
토론장에 앉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박근혜가 바라보는 사람은 정종복이 아닌 앞사람이
었다. 그뒤에 정종복이 쭈빗거리는 표정으로 살가운 웃음을 보내는데, 어깨는 움츠리고
두손은 허벅지에 공손히 얹혀있다. 공손함이 아니라, 굴욕처럼 비춰지는 한 장의 사진에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로 돌아온 정종복이 현장에 없던 기자들에게, 또 바람을 잡았는
모양이다.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고 말하며 은근히 간접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것처럼
구라를 친것이다. 할수없이 그 현장에 있었던 이정현 의원이 해명성 반박을 해야만 했다.
"아무말씀도 하지 않았다. 인사하러 오는 인파가 너무 많아서 얘기를 나눌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내가 얘기했지만 이번 경주공천에 대한 박근혜의 마음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정종복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후보로 나와 친박연대 김일윤에게 쓴잔을 마셨다.
경주 시민이 잘못된 공천학살의 주역으로 판단하고 엄중한 심판을 내린것이다.
이미 민심의 심판을 받은 정종복을, 또다시 공천한 한나라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공천인것이다.
다시 공천장 받아 낮짝을 내미는 것은 정종복도 염치 없거니와, 한나라당도 경주시민을
맹물로 보는 것이다. 박근혜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어이없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한계일 것이다.
매사 원칙에 흔들림 없는 박근혜에게, 아무리 덧칠을 해봤자, 아닌것은 아닌것이다.
정권은 MB에게 돌아갔지만, MB맨들의 생사여탈권은 여전히 박근혜가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재오, 박형준, 이방호, 정종복....
개선정군처럼 승리감에 도취되어, 초보 망나니처럼 위험한 칼를 휘두르다, 민심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비록 일대일 대결에서 박근혜가 억울한 패자가 되었지만, 엄연히 당의 대주주요, 여전
히 국민들에게 ‘한나라당은 박근혜’라는, 등식이 인식되어 있슴을 간과한 것이다.
아마 앞으로 어떤 지도부가 한나라당을 이끌어도,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라는 국민적 정서
를 지워내기가 쉽지않을 것이다. MB맨들이야 이 답답한 현실을,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싶겠
지만, 이들이 기를 쓰면 쓸수록 역으로 박근혜의 위상만 커지고 높아질수 밖에 없다.
경선과 대선을 치루는 동안 박근혜가 겪었던 ‘마음의 파노라마’도 이미 일년을 훌쩍 넘겼다.
박근혜는 경선이후 불과 한달만에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정도로 놀라운 내공회복력을 보였다.
모두가 공황에 빠져있던 무렵에 ‘나는 요즘 최근 몇년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면서, 초연하
고 달관한 마음자세를 보였었다.
실제 그무렵 내가 박근혜의 초연함을 보면서, 인고의 수련 끝에 또다른 깨달음을 얻은 도인의
자유로움 같은 걸 느끼게 한다는 글을 쓴적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국민과의 밀월기간도 없이 모지게 두들겨 맞아야했다.
정권이 휘청거릴 정도로 민심의 큰 출렁임이 있었지만, 고비마다 조용한 박근혜의 행보와
한마디가 해법을 찾아주었다. 허둥대다 물만 쏟고 쭉만 쑤는 이정부에, 박근혜가 민심의
구심점이 되어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한 것이다.
보이는 힘과 권력은 MB가 행사하고 있으나, 눈에 드러나지 않은 또다른 힘으로 MB의 보이는
권력을 견제하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내 의원들의 정치적 성향지형도에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친박, 친이를 표방했던 의원들이 중립지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발 뒤로 뺀것 같지만 중립지대라는 완충지대를 거쳐, 그들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
일까?
처음부터 중립지대가 필요없는 월박들의 행보또한 자신만만하고 거침이 없어보인다.
홍사덕이 혼자 전주로 내려가 한광옥의 보선출정식에 축사와 덕담을 한것은 이러한 자신감
없이는 행차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당대표 박희태가 월박의원들만 모아 식사를 하면서
‘순리에 따라‘ 당협위원장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한 말도 대단히 예민하고 파장이 큰 발언이었다.
정세의 흐름을 바꾸어야하는 MB가 이번에 작정하고 사정의 칼자루를 다잡았다.
일년을 허둥대다 보니, 다소 실기한 면도 있지만 한번은 대청소를 하고 가야한다.
박연차리스트에 야당은 물론 여권중진들, 특히 영남권 인사들이 다수 연루되어 있는
모양이다. 비리와 부패에 연루된 정치인은 여,야는 물론 친이, 친박도 가릴 필요 없다.
또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꼬리자르기로 끝난다면 처음부터 손대지 않은것만 못함이다.
아직은 소문만 무성하나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청심과 검심의 교감에 달려있을 것이다.
낙동강이 될지 태평양이 될지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바람을 타고 이재오가 태평양을 건너
왔다. 언론이 쫒아가 대서특필 해보려고 했지만, 이재오는 이미 그전의 이슈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재오의 자리매김은 청심의 지원도 있겠지만, 이번 박연차발 사정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몇 달을 벼르고 별러온 이재오의 귀국이 이젠 뉴스깜량도 되지 못하는
걸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것도 박근혜의 한마디가 이미 김을 다 빼렸기 때문이다.
“들어오면 오는 거지요”
졸지에 핫바지가 돼버린 이재오가, 다시 왕년의 자리로 돌아갈수 있을까?
지금은 흩어진 친이를 다시 모으기가, 전장의 패잔병 모으기 만큼 힘들것이다.
게다가 파이팅을 할만한 전선도 없으니, 이재오의 주특기도 무용지물이다.
박근혜가 이들의 하찮은 싸움을 받아줄 이유가 있겠나?.
3월 마지막날..
남쪽엔 이미 매화축제가 한창인데 여의도엔 아직 삭풍이 부는 겨울이다.
박근혜는 미니홈피에 4월을 여는 잔잔한 글을 올렸다.
꽁꽁 얼어버린 여의도에서 박근혜 홀로 조용히 봄날을 맞이한것 같다.
경주의 선거도, 이재오의 귀국도, 박연차발 사정도.....
아마 박근혜에겐 그저 당연한 "봄날의 일상" 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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