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문제는 박근혜다. 한나라당 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는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이고, ‘반MB 비민주’ 민심의 수혜자다. 친박이 제1 야당 아니냐는 농담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비단 당권의 첫 디딤돌이었던 원내대표 경선에서 황우여-최경환 카드가 물건너갔지만 박근혜의 힘은 여전하다. 그러나 원내대표 경선으로 친이의 '박근혜 견제'는 전면화될 것이다. 박근혜의 힘은 이제 정치적, 국민적 시험대에 놓였다.
4.29 재보선 와중에도 가장 큰 화두는 박근혜였다. 친박 후보 공천문제가 그랬고, 재보선 패배이후 한나라당의 쇄신논쟁의 중심에도 박근혜가 있다. 이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한국정치는 박근혜를 떠나서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대권행보로 주목받는 운명에 놓였다.
이미 박근혜의 '한마디 정치'는 여의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정국을 뒤흔들고, 정권을 뒤흔들고, 민심을 뒤흔든다. 대통령의 정국구상 따위는 박근혜 한마디로 뭉개버리는 무소불위의 힘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국운영의 재가를 박근혜한테 받고 있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법안전쟁때도, 공천때도, 개각때도 여지없이 박근혜의 '한마디 정치'였다.
MB정권 국정운영까지 흔드는 박근혜의 '한마디 정치'
김무성 카드는 친이진영의 재보선 책임론 돌파를 위한 비장의 카드였다. 박희태 체제의 수명을 연장하고 청와대의 직할통치를 유지하는 선에서 친박진영을 끌어 안는 모양새를 연출하고자 한 것이다. 원내대표의 권한과 공동정권론에 입각한 공동책임을 교환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단칼에 단한마디로 'NO'였다.
박근혜의 거부는 이런 의도를 흩트려 놓았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공동 책임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죽어도 같이 죽자는' 이른바 '물귀신 전략'인 현재권력 공동책임론을 미래권력을 향해 달리는 박근혜가 거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박근혜, 차기 지지도 조사마다 압도적 1위
박근혜는 여당 내 비주류로 현재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립각을 세워왔다. 과거 YS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민자당 소수파였고 살아온 역사와 정치성질이 달랐던 그는 집권실세인 민정계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그러나 YS는 여당 내 소수파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대권을 쟁취했다. 박근혜는 YS보다 여건이 나은 편이다. YS는 민자당내 민주계가 말 그대로 소수인 10여명에 지나지 않았고, '굴러온 돌'이었으며 '외인부대'였다. 그러나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원조 대주주이며 정통세력이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비주류인 YS라인이다. 그뿐이랴. 달랑 10여명으로 대권을 쟁취한 YS와 달리 박근혜는 60여명, 잠재적 친박인 주이야박까지 치면 그 수는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소수파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비록 패했지만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근혜의 힘은 여실히 입증되었다. 20일 경선 하루전까지만 해도 황우여-최경환 팀이 1차전에서 큰 표차로 친이 안상수 후보를 누를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만일 황우여 원내대표가 된다면 당은 박근혜가 접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당이 아닌 박근혜 당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곧 이명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 이에 턱밑까지 위기감이 차올랐던 친이는 경선 전 ‘박근혜 경계령’을 발동, 안상수로 총결집했다. 최경환의원은 이를 두고 ‘보이는 손’의 음모라고 맹공을 날렸다.
원내대표 경선으로 친이-친박은 전쟁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친이도, 친박도 이제는 죽기살기의 싸움만 남았다. '박근혜 경계령'으로 안상수가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친이가 어떤 스탠스로 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는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친이는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친박과 친이에서 이탈한 중도층까지 모을 확고한 구심력을 갖추고 있어 유리한 상황이다. 원내경선에서 패해 위기감이 높아진 친박은 친이의 '박근혜 경계령'에 맞서기 위해 더욱 똘똘 뭉칠 것이다.
외부여건도 나쁘지 않다. 제1야당인 민주당에는 대권주자가 없다. 차기 지지도 조사마다 압도적인 1등이다. 최근(4/30, 리얼미터 여론조사) 조사에서도 39.2%로 2위인 정동영 의원(10.6%)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있다.
여당내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야당의 적도 없는 박근혜... 그에 대한 민심은 또한 어떤가. 각종 여론조사는 여타 주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대선주자 0순위'의 독주 기록을 하고 있고, 선거때마다 불어오는 '박풍'은 그의 인기를 실감케하는 가늠자다. 민심을 접수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거칠 것 없는 박근혜, 홀로 뚜벅뚜벅... 지방선거가 힘의 역학관계 변곡점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권력에 불리하다. 그에 더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10월 재보선과 지방선거 이후면 현재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간의 역학관계는 상전벽해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무엇도 거칠 것 없는 박근혜는 그 누구와 손잡을 필요도 없이 뚜벅뚜벅 홀로 걸어가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이’의 본심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박근혜의 ‘마이웨이’는 더욱 확고부동해졌다. 4.29 재보선 패배이후 당내 쇄신 논의, 박근혜의 방미를 거치면서 박근혜의 대선전략이 일부 수면위에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공동책임론은 없다. 참여도 없고, 공(功)도 나누지 않고, 과(過)도 함께 지지 않는다. 마이웨이하겠다는 것이다.
‘정통보수’ ‘원조보수’라는 박근혜가 대중을 얻기 위해 중도보수노선으로의 좌클릭도 감지된다. 박근혜는 방미 중에 스탠퍼드대학교 강의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읽힐만한 발언을 했다. 친박 진영은 지금도 지난 경선 당시 여론조사에 패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영남보수 대변자 이미지로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경선때 취약지대였던 수도권 3-40대 셀러리맨층을 위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편 김무성 카드는 미래권력이 현재권력과 손잡기를 거부했다면, 황우여-최경환 카드는 현재권력은 미래권력과 손잡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제는 ‘각자도생’만이 남은 길이고, 서로 살길을 위해 ‘이명박-박근혜’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친이-친박 전쟁은 내년 초 조기전대와 지방선거에서 정점을 이룰 것이다. 특히 민심전쟁인 지방선거는 친이-친박 역학관계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박근혜는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해갈 것이다. 원내권력에서 패한 박근혜는 내년 2-3월 전당대회로 당을 접수하고, ‘이명박 중간평가'이자 ’대선전초전‘이 될 지방선거로 한나라당, 친박연대, 무소속 등 다각체제로 민심을 접수한 후 박근혜의 용틀임은 시작될 것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지방선거는 박근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선거로 확인받은 굳건한 민심에 뿌리를 두고 박근혜의 대선행보는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카드, 개헌론은?
박근혜가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또 있다. '개헌론'이다. 개헌으로 정치판을 흔들어 새판을 짜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황우여-최경환 팀이 된다면 아마 개헌논의는 더욱 가열될 것이다.
원내대표, 조기전대로 당을 장악하고, 지방선거로 민심을 장악하고 개헌으로 정치판을 완전 재편하면, 박근혜의 차기 대권 골인은 너무 쉽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미 대통령시절 차기 후보들에게 '개헌 공증서'를 다 받은 터라 박근혜의 개헌 추진은 하등의 문제될 것도 없다.
이미 박근혜는 5월 미국행에서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자신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개헌론에 공식적으로 불붙였다. '8년짜리 대통령' 만들기가 박근혜 개헌론의 본질이다.
아마도 올 제헌절을 전후로 개헌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개헌 군불떼기'에 앞장서왔던 김형오 국회의장은 제헌절 이후 9월 정기국회에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붙이는 일정을 구상하고 있다.
박근혜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찬반에 따라 현재의 당은 쪼개지고 정치세력들은 이합집산할 것이다. 지금의 한나라당이 아니라 '박근혜 당' 탄생의 마지막 수순이 지방선거 전 불붙을 '개헌론'이다.
대통령 중임제 속내를 감추지 않는 박근혜가 개헌에 적극적이라면 친이는 반대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개헌논의는 레임덕의 시작이다. 특히 개헌문제는 총선, 대선시기 일치 문제도 연동되는 것이어서 대통령 임기를 8개월 정도 단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과 친이가 반대할 수밖에 없다.
여론도 마냥 박근혜의 의도대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있어서도 친박이 선호하는 대통령 중임제보다 권력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는 국민여론조사(이원집정부제 39.0% - 내각제 33.9% - 대통령제 24.7%, 중앙 2008.9.22)도 나오고 있다.
개헌논의가 가속화되면 미래권력의 앞날도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장된 듯 보이는 차기 대통령 자리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현재권력의 노림수가 적중하여 판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과거와의 컨센서스'가 더 강한 박근혜, 과연 21세기형 미래의 대통령일까
문제는 지금도 박근혜 밖에 없고, 2012년 대권에도 박근혜, 그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대 대선판이 이런 경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박근혜는 '독주' 그 자체다. 지금 상황만 본다면 차기는 '박근혜 시대'라는 것은 보장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과연 박근혜, 그가 한국정치의 미래를 열 새로운 리더일까.
한국정치가 박근혜만의 정치로 협애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박근혜의 정치는 국민속에서 얽히고 설키는 대중지도자가 아니라 '신비주의'이며 미래와의 컨센서스보다 '과거와의 컨센서스'가 강한 인물이다.
박근혜는 대중 앞에 실체를 드러낸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국가적 현안에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경우가 거의 없다.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지도자로서, 차기 대권0순위의 그 막중한 책임자로서 어떠한 메시지도 던진 적이 없다. 그의 대중적 인기비결이 서태지류의 신비주의 마케팅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타의에 의해 보호막 안에 갇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스스로가 벽을 쌓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드러나지 않게 있다가 가끔씩 내뱉는 '한마디 정치'가 그것이다.
'말의 힘'이 강한 박근혜이지만, 그에게는 21세기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차기 정부에서는 어떤 비전을 국민에게 심어줄지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국가 마스터플랜에 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또 21세기의 새로운 가치관과 철학, 이념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통일비전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무엇하나 확실히 국민앞에 '실체'를 보여준 적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신비주의다.
또한 국가지도자는 현재 일어나는 모든 국가 현안에 분명한 답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 현안에 대한 박근혜의 답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의 문제를 풀지 못하는 국지도자에게 그 다음 문제를 풀어낼 답이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박근혜는 어쩐지 미래보다는 과거와 숨쉬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와 함께 항상 있는 '박정희 그림자'가 그렇고, 그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미래보다는 '과거형'이다. 면면들이 과거 공화당 시절 인사들이 상당히 있는데다가, 생각들도 대다수 20세기 냉전이데올로기에 아직도 사로잡혀있는 인물들로 포진되어있다.
타인의 '보호막'을 치면서 하는 신비주의 정치인 박근혜를 둘러친 보호막이 바로 '과거의 벽'이라는 것은 우려스럽고 두렵기까지한 일이다.
마이웨이 박근혜는 선택해야 한다. YS길을 갈 것인지, 이회창의 길을 갈 것인지, 이인제의 길을 갈 것인지, 노무현의 길을 갈 것인지를... 현재권력에 '차별화'를 했던 이회창, 이인제는 패했고, 현재권력과 호흡을 맞췄던 YS, 노무현은 대권을 얻었다.
21세기를 열 두 번째 대통령이 2012년에 탄생한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관계설정은 곧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느냐를 제대로 읽느냐의 문제다. '전쟁'인지 '계승'인지를 말이다.
또한 국민이 원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는 몇년 뒤의 '미래'비전과 '현재'에 대한 답을 동시에 주어야 한다. 현재 나라와 국민이 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력을 발휘하고, 정책능력을 발휘할 것을 원한다.
그 과정에서 비전과 능력이 검증되고 국민들의 사랑을 얻어야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