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수원특례시의 종합/*기존_ 자료3(수원관련)종합

수원-화성-오산 통합을 바라며통합시 출범으로 민원과 편의시설 연계를

수원-화성-오산 통합을 바라며

통합시 출범으로 민원과 편의시설 연계를

등록일 : 2011-05-30 21:52:40 |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향기 그윽한 원천천은 튤립과 연산홍의 물결로 축제의 장을 이루고 있다. 광교신도시 건설로 광교산까지는 연결이 중단되었지만, ‘원천교’에서 ‘곡반정교’에 이르는 약 5킬로미터의 하천변에는 곱게 단장된 꽃길과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원천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개발이 한창인 광교신도시를 지나 원천동을 거친다. 그리고 화성시 황계동 황계교에서 수원천과 황구지천이 만나 황구지천을 이루고 남으로 여행을 계속한다.

이어서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 평택시 서탄면 회화리 서탄대교 근처에서 진위천과 합류한다. 진위천 합류의 또 다른 지류는 신갈저수지에서부터 오산천을 이루고 화성시 동탄신도시를 지나 오산시 도심을 거쳐 ‘적봉교’에서 진위천과 합류한다. 진위천은 강다운 면모를 갖추어 평택시를 가로 질러 아산만에 도달한다.

이처럼 수원과 화성 오산으로 연결되는 하천을 따라 걷기도 하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어도 수원과 화성의 경계지점에서 하천 정비가 중단되어 있다.
수원과 화성, 그리고 오산의 행정구역 분리로 인하여 하천변이 정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생활권에 있으면서 연계적인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볼 때 하루 빨리 행정구역 통합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원천천의 자전거 길

,

원천천 꽃길

,

수원시와 화성시 경계지점

,

정비되지 않은 하천



수원시와 화성시, 오산시는 구석기 시대부터 같은 생활권으로 같은 지명으로 이어져 왔다.
국가의 모습을 갖춘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차지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한강유역과 경기도 주변이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이때부터 수원주변의 고유 지명은 매홀로 불리게 되었다. 매홀은 물 고을이라는 발음의 표기로 추정되며, 한자식 지명인 수원이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 통일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통치자는 달라졌지만 수원지역은 다양한 이름 한산주(漢山州) 수성군(水城郡) 수주(水州)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으로 불렸다. 이처럼 같은 생활권을 유지해온 수원시과 화성시, 오산시가 인구의 평창에 의해 면 단위가 읍으로 되고 또한 시로 승격되는 가정에서 3개시로 분리되었다.

수원이라는 이름이 한때는 화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1790년(정조 17)에는 수원의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바꾸고 수원부사를 유수겸 장용외사행궁정리사로 삼고 판관 1명이 화성유수를 보좌하도록 하였다. 초대 화성유수는 정조의 정책을 적극 지원하였던 채제공(1719~1799)이다.
그리고 1794년(정조 18)에 성을 쌓는 공사가 시작되어 1796년(정조 20) 마침내 화성축성이 완성되었다. 정조의 정치적 이상이 녹아있는 화성유수부는 정조 사후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1895년(고종 32) 수원군으로 강등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 경기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경기도청 소재지는 수원에서 경성(서울)으로 옮겨졌다. 이후 1949년에 수원시로 승격되었으며, 1967년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다시 이전되었다. ) 인터넷 발췌

오산시와 수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같은 생활권이라는 것을 알수있다. (1793년(정조 17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水原府邑誌)'에는 삼미면(三美面)으로 나온다. 이후 계속 삼미면으로 불리다, 1831년(순조 31) 발간된 '화성지(華城誌)'부터 문시면으로 나온다.

1900년대 초 경부선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의 반월봉을 경계로 내삼미리와 외삼미리로 분리된 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문시면 관할이 되었다. 1941년 수원군 오산면 관할을 거쳐, 1960년 화성군 오산읍 관할이 되었다. 1989년 오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행정동인 신장동의 법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인터넷 발췌

수원시와 오산시, 화성시가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같은 생활권이면서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주민등록상 다른 시민으로 살아간다. 또한 시청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이 있는 이웃 시청을 두고 멀리 있는 청사 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

행정구역 분리는 업무시설을 이중으로 설치하는 부담도 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여 주민의 생활편리 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3개시가 통합함으로 해결 될 것이다.

전국 최초로 통합시가 된 경상남도 통합 창원시도 같은 뿌리를 가진 지역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현재 3개시가 통합됨으로 지역정서를 감안하여 통합 창원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통합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난 29일 창원에서 초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왔다. 택시를 이용하여 모임 장소로 향하던 중 운전자에게 ‘통합 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분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다며 “택시 업계에도 지역이 통합됨으로 인하여 진해와 마산은 환영하고, 창원은 볼멘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버스의 노선이 정비되어 3개 도시와 외각도시로의 나들이가 편리해졌지만 택시업에 종사하는 자신은 힘들다.”고 말하며 이러한 현상도 세월이 흐르면 통합의 효율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합 창원시는 예산 부족으로 바다와 연결되는 많은 하천 정비를 미루어 왔는데 정부예산의 확대로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창원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하천 정비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완공되면 바다는 물론 산으로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오산시와 화성시, 수원시가 통합한다면 당장은 득실관계에 따라 이해 당사자들은 제 각기 목소리를 내겠지만, 세월이 흐르면 통합의 효율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필자는 3개 시 통합으로 단절된 하천이 정비되고 광교산에서 출발하는 원천천을 따라 화성과 오산을 거쳐 동탄천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