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의 10월은 박정희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달이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에 유신(維新)이라는 이름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을 동토의 왕국으로 만들었고, 1979년 10월 26일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했다. 박정희가 사망한 지 30년도 더 지났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박정희의 자장(磁場)안에 있다. 심지어 그의 생물학적 딸이자 정신의 후계자인 박근혜는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다.

기실 박근혜가 내년에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없었거나 출마하더라도 당선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면 박정희와 박근혜의 리더쉽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박근혜는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리더쉽이 그 선친 박정희의 리더쉽과 다른지,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박정희의 리더쉽이 한국사회에 끼친 해악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박근혜가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와 유사한 리더쉽을 지니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리더쉽을 비교할 필요는 그래서 생긴다.

박정희 치세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박정희 리더쉽의 특징은 몇 개의 코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경시, 결과만능주의적 사고, 경제제일주의 등이 바로 박정희 리더쉽을 대표할 만한 코드들이다.

두 차례의 쿠데타(5·16군사정변과 10월 유신)가 상징하듯이 박정희는 헌법이나 헌정질서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를 가슴 속 깊이 경멸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한민국을 다스리던 18년 동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질식당한 나라였다. 정보정치, 공작정치, 의회의 통법부화, 고문과 불법감금의 일상화, 감시와 공포를 통한 통치, 중앙정보부, 보안사, 검찰, 경찰 등의 폭압기구들에 의한 지배, 야당과 언론에 대한 탄압 등이 박정희 집권시에 민주주의를 대체했다. 박정희가 재임하는 동안 대한민국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박정희 뿐이었다. 민주주의를 경시한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통치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로 여긴다는 뜻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또한 박정희는 결과만능주의와 경제제일주의를 한국사회의 지배원리로 정착시켰다. 박정희 집권시 한국경제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빠르게 성장했지만 불균형 성장전략의 채택을 통한 기업간, 지역간, 산업극단적인 불균형 초래, 노동 및 농업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과 배제, 고지가(高地價)와 고물가라는 정책수단을 이용한 외상경제의 채택 등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다. 지금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들 가운데 큰 부분이 박정희식 경제발전모델에서 기인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희생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발전모델을 채택한 박정희 리더쉽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마저 불구로 만들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병영으로 만들었는데 그 병영 안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승열패, 결과만능, 물질숭배 등을 집단으로 내면화시켰고 결정적으로 의식의 신민화를 습득했다.

근심되는 박근혜 리더쉽

박근혜의 리더쉽은 선친인 박정희와 판이한가?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정계에 입문한 이후 그녀가 보여준 정치적 리더쉽은 지극히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것이었다. 박근혜의 놀라운 절제력 덕분이건, 선거전략적 차원이건 간에 박근혜는 매우 간결하고 정제된 정치언어를 구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적지 않은 설화에 휘말렸는데 그 설화 대부분은 권위적이거나 위계적인 분위기와 태도에서 비롯됐다. 최근의 "병 걸리셨어요?"같은 발언이 단적인 예다. 굳이 정신분석학에 기대지 않더라도 거듭되는 실언은 실언을 하는 사람의 멘털리티를 보여준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긴 민주주의와 전혀 친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는 박근혜가 민주주의와 친화적이길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울 기회도, 민주주의를 근엄하게 가르칠 선생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대하는 박근혜의 태도는 그녀가 생각하는 법치주의에 대해 근심을 하게 만든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야멸찬 태도는 '법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인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태도는 박근혜가 법치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상 법에 의한 지배는 통치자의 의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법을 의미하며 이는 과거 독재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통치수단이었다.

경제발전모델에 관한 한 박근혜는 선친인 박정희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가 경제발전모델에 대해서 발언한 것이라고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정도인데 이는 MB에 의해 충실히 집행됐고, 철저히 파산했다. 최근 박근혜는 '줄푸세'에 대한 반성과 철회도 없이 은근슬쩍 복지국가 흐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박근혜의 정치적 리더쉽은 많이 연성화되긴 했을지 몰라도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리더쉽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되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법치주의에 대한 박근혜의 관점은 우려할 만 하다. 끝으로 경제적 리더쉽에 관한 한 박근혜는 박정희 보다 한참 무능하다. 박정희와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더 무능해 보이는 박근혜 리더쉽이 저토록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건 정말 미스터리(mystery)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