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8경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원의 춘추8경의
내용과 수원8경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원에 16경이 있고 수원에 8경이 있다고 한다면 16경의 축소판이 8경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수원시의 각
자료에는 현재 알려진 바와 같은 수원8경이
존재하고 있다. 이에 여러 전적(典籍)을 찾고 확인한
결과, 정조 당시의 수원8경이 따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현재
수원시민들이 알고 있는 수원8경의 출발지가
어디인가도 전적을 통해 확인하였다.
하지만 옛 수원8경 '화봉팔관도(華封八觀圖)'만이 진정한 수원8경이라거나 이것만이 역사와 전통을 담보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조 당시의 수원8경에 대한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목적과 16경과 8경 사이의 혼돈을 탈피하자는 목적, 그리고 현재의 수원8경이
언제 시작되었고 알려지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그 근원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는 목적에 본고작성의 의의를 두고자 하는 것이다.
정조 당시 수원8경은 김홍도에 의하여 그려졌다. 이름하여 '華封八觀圖'이다. 세세한 내용은
논문으로 작성중에 있고 그 내용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선왕께서
화공인 김홍도(金弘道)에게 명해 '화봉팔관도(華封八觀圖)'를 그려 올리라고 하셨다. 밑그림이 지금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金良驥) 집에 있는데, 그
그림에는 백성이나 군사와 관련된 것이 반이 넘는다. 아무 년 아무 달 아무 날에,
삼가 열람하고 쓰다. 我先王命畵師金弘道寫進'華封八觀'. 粉本今在金之子良驥家, 其圖爲民事戎務者過半. 年月日敬閱而識之. …… '新豊社酒', '大有農歌', '閒亭品菊', '午橋尋梅', '吉野觀桑', '西城羽獵', '華郵散駒', '龍淵候月'이 그것이다." 8경에는 각각의 설명이 있다.
한편 현재 수원8경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光敎積雪', '八達晴嵐', '南堤長柳', '花山杜鵑', '北池賞蓮', '西湖落照', '華虹觀漲', '龍池待月'이 그것이다. 이는 수원시사를 비롯한 여러 서적과 여러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華封八觀圖'의 내용과는 그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수원8경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전거를 찾을 수 있었다.
소화(昭和) 2년(貳年) 4월(四月) 1927년 朝鮮事業及經濟社에서 간행한 內藤倫政의 '古蹟 と 風俗'에 수원8경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八達晴嵐', '西湖落照', '花山', '華虹觀漲', '光敎積雪', '北池賞蓮', '南堤長柳'이 그것이다.
이로
보아 현재 수원8경으로 알려진 것은
한자 표기상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1927년 '古蹟 と 風俗'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저자인 내등윤정(內藤倫政)의 글을 보아도 '華封八觀圖'를 확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빌려 수원8경이 질정(質定)되고, 수원8경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시작한다면 수원의 백경(百景)을 어떻게 가꾸고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