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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기존_ 자료3(수원관련)종합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⑦ ➄ ➂ ➀_ 수원인터넷뉴스 기사 모음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⑦ ➄ ➂ ➀_ 수원인터넷뉴스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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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록]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⑦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⑤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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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⑦

‘치(雉)’를 알면 화성이 보인다.



‘치(雉)’란 꿩을 말하는 것이다. 화성에는 치라고 부르는 시설물이 있다. 성벽을 쌓다가 일정 간격을 두고 밖으로 튀어나온 시설물들이다. 사람들은 이 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자는 이 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치는 꿩이 자신의 몸을 숨기고 주변을 돌아보 듯, 그렇게 자신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치는 돌출된 구조물로 성벽 위에는 여장을 두르고 총안을 내어,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원래 화성에는 11개의 치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화성에서 볼 수 있는 치는 열 개이다. 화성 동문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성을 한 바퀴 돌면, 동일치서부터 만나기 시작한다.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남치가 있고, 산 위로 오르는 용도라고 불리는 길에 용도동치와 용도서치가 있다. 그리고 서장대를 지나 동문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서삼치, 서이치, 서일치와 북동치가 있다.

▲ 동삼치. 치는 안에 숨어서 성벽을 오르는 적의 배후를 공격할 수가 있다

치는 화성 구조물의 근간

치는 화성을 이룩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구조물이다. 먼저 지리적인 점과 지형의 구조, 치성 등을 본 후 적당한 간격을 두어 치를 놓았다. 치성을 쌓은 후에는 그 위에 포루와 적대 등을 설치했다. 치는 일정한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축조한 화성이기에, 그 지형에 맞는 곳에 치가 있다.

▲ 치는 그 형태나 너비가 지형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치는 구조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치의 총안을 통해서 성벽을 보면 성벽 전체가 훤히 내다보인다. 하기에 화성은 치와 치, 혹은 치와 포루 사이에서 성벽을 오르기란 불가능하다. 성벽을 타고 오르려고 한다면, 앞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가 없다. 공성무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성, 그것이 바로 화성이다.

▲ 서삼치 내부. 서삼치는 치의 양편에 난 총안이 비스듭히 밖을 향하고 있다

치를 돌아보면 화성을 알게 된다.

열 곳의 치성은 그 크기가 같은 것이 아니다. 지형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총안의 각도가 다르다. 한 마디로 이 치성 안에 숨어 성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설물이다. 그곳의 지형에 맞게 구성이 된 치의 총안이나 기다 구조물 등은 어느 곳 한 곳도 빈틈이 없다.

▲ 용도 동치

치성 안에 들어가 총안으로 밖을 본다. 건너편 포루가 보인다. 포루와 이곳 치성 사이에는 성벽이 한 곳도 그늘진 곳이 없다. 그만큼 완벽하게 쌓은 성이다. 화성을 돌아보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만일 이 성에서 정말로 전쟁을 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누구도 이곳을 함락시키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 치의 위에 조형한 여장의 총안으로 밖을 보면 성벽이 한 눈에 들아온다. 성벽을 공략하는 적을 공격하기가 수월하다.

총안을 통해 적의 뒤를 공격하고, 치성으로 오르려고 하면, 치의 바닥에 나 있는 구멍에 끓는 기름을 붓거나 끓는 물을 부어 적을 덤비지 못하게 만든다. 이렇게 완벽한 성은 없다. 치란 성벽을 쌓다가 돌출을 한 것이 아니고, 성을 방어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이 치성을 한 곳 한 곳 돌아보면 화성의 동선이 그대로 들어난다. 꼭 있어야 할 곳에 치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 치에는 여장의 총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닥에 비스듬히 낸 구멍은 기름이나 끓는 물 등을 흘려보내 적을 공격할 수가 있다.

‘꿩’이라고 하는 ‘치성(雉城)’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이유가 있다. 꿩은 자신의 몸을 숨기고 주변의 기척을 살핀다. 치성 역시 적에게 나를 들어 내놓지 않고, 적을 살피는 구조물이다. 현재 남아있는 열 곳의 치, 그 모든 것은 일정한 거리가 아닌 꼭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다. 화성이 세계 제일의 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구조물인 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주성(sw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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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⑤

화성장대 위에 선 이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화성을 한 바퀴 돌다가 보면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바로 ‘화성장대’라 불리는 ‘서장대’이다. 서장대는 팔달산의 산마루에 있는데, 서장대 위에 올라가 사방을 굽어보면 사면팔방으로 모두 통하는 곳이다.

석성산의 봉화와 대항교의 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산 둘레 백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는 곳이다.

서장대, 한 때 어느 취객에 의해 웅장한 서장대가 방화로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다시 옛 모습을 찾았다. 그 문지방 위에는 정조임금께서 쓰신 큰 글자인 [화성 장대(華城將臺)]로 편액을 붙였다.

정조 이산의 꿈은 무엇일까?

정조임금은 이 장대에 올라 장용위 군사들을 호령했다. 이산은 이곳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강력한 왕권을 갖고 북진을 하여, 옛 고토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 장대 위에서서 사면팔방을 바라보면서, 막힘없이 달려가는 병사들의 무한한 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장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곳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사랑을 엮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깃든 이산의 꿈이 무엇인지를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난 늘 이곳을 올 때마다 생각을 한다.

아마도 이곳에서 정조임금의 꿈을 이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알려줄 수만 있다면, 저마다 큰 꿈을 키워나갈 수가 있을 텐데. 늘 그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장대에는 모두 네모난 벽돌을 깔고 바깥에는 둥근 기둥 12개를 세웠는데, 그 높이가 각각 7척이다. 이 팔각형은 그 높이는 각각 3척 5촌이다.

중층으로 된 장대의 위층은 한 칸인데, 사면에 교창을 내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그리고 이층으로 오르면 교창 밖으로 밖이 보이며, 시원하게 통풍이 되는 효과도 있다. 바닥은 판자를 깔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아래층의 반자가 되었다. 그 서북쪽 모퉁이에 층사다리를 세워서 위층으로 통하게 하였다.

다연발 화살을 쏘아대는 노대

서장대의 뒤에는 ‘서노대’가 자리한다. 원래 노대는 <무비지(武備志)>에 설명하기를,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야 하며 대 위에 집을 짓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대의 안에는 화살을 쏘는 노수가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대의 설명을 보면 「현재의 노대는 그 제도를 본떠서 짓되 약간 달리 하였다. 집을 얹지 않고 대를 8면으로 하되 깎아지른 듯이 우뚝 서있게 지었다.

면마다 아래 너비 각 8척 5촌, 위의 줄어든 너비 각 각 6척 5촌, 높이 12척, 지대 위에 체벽으로 면을 만들고, 돌을 깎아 모서리를 만들었다.

위에는 장대를 얹고 凸 모양의 여장을 7면에 설치하였다.」고 하였다. 장대 쪽으로는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으며, 상부를 둘러 총안을 낸 여장을 둘러놓았다.

대 위에는 네모난 전돌을 깔았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쇠뇌를 쏘았을 것이다. 쇠뇌란 다연발로 발사하는 화살을 말한다. 쇠로 된 발사 장치를 갖고 있는 이 쇠뇌는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조임금 이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사방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 군사들의 움직임을 내려다보는 정조는 더 강한 군사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많은 군사들의 위용을 보고 있는 조정 대신들의 모습도 살펴보았을 것이다.

미처 이루지 못한 이산의 꿈을 지금 이 땅의 젊음에게 전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철모르는 사랑타령을 하고 있는 한 젊은 연인이 조금은 아쉬운 까닭이다.

하주성(sw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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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서남암문과 용도, 아름다운 길에 숨긴 비수



‘화성(華城)’,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알면 알수록 대단한 성이다. 화성은 인간이 축조한 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다. 그만큼 어느 한 곳도 군더더기가 없다. 주체성이 없는 사람들은 대개 중국의 만리장성을 떠들어 댄다. 그것이 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난 단 한마디만 묻는다. “성을 제대로 알고는 있소?”

고구려는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것도 중원의 패자라는 수와 당을 상대로. 그러나 번번이 그들은 패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략이 뛰어난 장수가 있기도 했지만. 그만큼 견고한 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성곽의 장점만을 이용해 축성한 성이 바로 화성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아름다운 길 ‘용도(甬道)’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에서 팔달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성벽. 그 꼭대기에는 서남암문과 그 위에 서남포사가 자리를 하고 있다. 이곳이 지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암문 위에 포사를 올려놓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용도라고 하는 길이 이어진다.

평지에 있는 성벽을 통해 공격하는 적들이 성벽을 기어올라 성 안으로 들어가기란 만만치가 않다. 여장 뒤에 숨어서 날리는 화살과 기름과 끓는 물 등, 어느 것 하나 성벽에 달라붙기가 수월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적들은 한 곳의 빈틈을 발견한다. 바로 팔달산의 남부 능선이다.

수많은 적들이 팔달산의 남부 능선을 향해 기어오른다. 그곳에서 화성의 안을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들에게 날아오는 화살들. 적은 혼비백산이 된다. 어디서 날아오는 것일까? 눈을 들어보니 그 능선을 가로질러 성벽이 길게 늘어서 있다. 미처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서남암문을 나서면 팔달산의 남부능선을 따라 길게 양편으로 성을 쌓은 길이 있다. 용도라고 하는 이 길은 그 끝에 서남각루까지 이어진다. 중간에는 용도 양편에 용도도치와 용도서치가 있다. 그리고 그 서남각루는 팔달산의 능선 끝에 자리하고 있다. 결국 팔달산의 어디로 기어올라도 화성을 공략하기란 만만치가 않다.

서남암문, 그리고 서남각루

서남암문 위에 마련한 주변을 경계하는 ‘서남포사(西南舖舍)’. 한 칸으로 지어진 이 포사는 군사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시설을 해놓았다. 방을 온돌로 꾸미고 사면은 판문을 막았다. 포사에서는 주변 경계는 물론, 성 밖의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적이 공격을 하면 깃발을 이용하거나, 포를 쏘아 신호했다.

포사 아래 문이 바로 서남암문이다. 이곳은 안과 밖으로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성가퀴를 설치하였으며, 화성의 암문 중 유일하게 포사가 설치된 곳이다. 암문을 빠져나가면 능선을 따라 양편으로 성벽을 쌓고 여장을 올린 용도가 나타난다. 이 용도는 능선의 끝까지 나 있으며, 그 끝에는 ‘서남각루’인 화양루가 설치되어 있다. 각루가 서 있는 용도의 양편 끝은 치처럼 돌출되어 있다.

서남각루는 한편은 바닥이 돌로 되어 있고, 한편은 장초석을 놓고 기둥을 올려 마루를 놓았다. 언제나 이곳에서 군사들이 주변감시를 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팔달산 남쪽 능선에 올라 성안을 공격하겠다고 죽자 사자 능선으로 오른 적군들. 그들은 능선에 버티고 있는 용도로 인해, 또 한 번의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완벽한 성곽인 수원 화성. 오죽하면 유네스코에서 18세기 동, 서양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군사시설이라고 화성을 극찬하였겠는가?

하주성(sw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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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탐방] 수원 화성 답사

마음에 화성을 담는다.



【수원인터넷뉴스】하주성 국장 = 사적,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그 안에 보물. 화성은 우리나라의 많은 성곽 중 가장 아름다운 성이다. 평지에서 한쪽은 산으로 치달으며 쌓은 화성은 거대한 미술품이다. 전쟁을 하기 위한 성이 아니고, 마치 팔달산이라는 자연의 성을 이용해 거대한 미술품 하나를 전시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원 화성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담소를 하면서 화성을 구경한다. 그러나 난 눈으로 화성을 보지 않는다. 마음에 화성을 담기 때문이다. 눈으로 담아내는 화성, 왜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일까?

화성, 마음으로 보아야

정조는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쌓았다. 화성은 다른 성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문인 창룡문, 북문인 장안문, 서문인 화서문, 남문인 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과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특이한 성이다.

그동안 화성을 7번이나 돌아보았다. 운동 삼아 매일 화성을 걷는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화성을 돈 것은 차이가 있다. 성을 안에서 밖에서 돌아가 보면, 거의 15km 정도를 걷게 된다. 그리고 시간으로도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난 화성을 눈으로 보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화성은 그저 하나의 잘 쌓은 성곽에 소중한 문화유산일 뿐이다. 그러나 화성을 마음으로 본다면, 그 안에 내재한 각종 사고와 아름다움이 함께 보인다. 그래서 화성을 마음으로 보라고 권유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화성을 어떻게 마음으로 볼 수 있는가를. 하지만 화성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본다면, 어느 사이에 화성은 단지 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성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대화가 될 때쯤이면 마음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화성을 마음에 담아낼 수가 있다.

하나하나 그 구조물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익혀

나는 화성이 자연을 닮았다고 생각을 한다.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축성한 화성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화성을 노래한다. 사진 또한 훌륭하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화성을 다녀간다고 한다. 그만큼 화성은 자연과 하나가 된 소재로 유명하다.

그 화성을 난 마음에 담는다. 성곽을 쌓은 전돌이나 돌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화성의 수많은 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나하나 풀어가고자 한다. 마음으로 담은 화성의 이야기를.

하주성(sw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