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박근혜, 정수장학회 / 정재권 | |
등록 : 20111206 19:22 | 수정 : 20111206 23:06 |
정수장학회 문제에서 박 의원의 소통 능력은 불통 수준이다 이 대통령보다 더하다
2005년 ‘박세일과 박근혜’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한나라당에서 한때 정책위의장과 대표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정치 행로를 비교한 글이지만, 주목적은 정수장학회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박근혜 의원을 비판하는 데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같은 주제의 글을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시곗바늘이 완전히 뒤로 돌아간 느낌이다. 며칠 전 벌어진 <부산일보> 사태는 박 의원과 정수장학회(정수재단) 문제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이 신문사 편집국은 11월30일치에 “(박 의원은) 부산일보 지분을 100% 보유한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라”는 기사를 실을 예정이었다. 박 의원이 유력 대선 후보인 만큼 신문의 공정성을 위해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를 완전히 분리하는 게 옳다는 뜻에서였다. 그러자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은 초강수로 맞섰다. 윤전기를 멈춰 세웠다. 김 사장에게 박 의원과 정수장학회는 신문 발행 중단을 무릅쓸 만큼 ‘성역’이었던 것이다. 박 의원도 단호하다. 6년 전처럼 귀를 틀어막았다. 부산일보 사태 뒤 그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산일보가 하는 일에 제가 관여를 한 적도 없고 지금도 하지 않죠.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이거든요. 저는 2005년 퇴임했어요. 이후 재단 경영에 일절 관여한 적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됩니다.” 물러난 것으로 다 끝난 일인데 왜 난리냐는 투다. 하지만 사정은 간단치 않다. 이사장직을 사퇴했어도 박 의원이 정수장학회의 ‘대주주’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후임인 최필립 이사장이 1979년 10·26 사태 당시 박 의원을 곁에서 보좌한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어서만은 아니다. 박 의원의 지배력은, 국회 의결로 만들어진 과거사 기관들의 결정과 권고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버티도록 숨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는 2005년 “(정수장학회 전신인) 5·16장학회는 1962년 부산 기업인 김지태의 부일장학회 재산을 중앙정보부가 강제로 헌납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2007년 “부일장학회 헌납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로 이뤄진 것으로,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재산을 원 소유주에게 반환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는 여전히 그대로다. 최 이사장과 다른 4명의 이사가 국가기구에 맞설 만큼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박 의원이 “과거사위 결정은 어거지이고 나를 흠집 내려는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버티지 않는데 정수장학회가 배짱을 부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박 의원의 고집에선 아버지 박정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기에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박 의원에게 박정희는 ‘반민주’로 상징되는 정치적 굴레이기도 하다. 이 굴레를 극복하지 않고 정치적 성공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의 경쟁 상대로 꼽히는 이는 스스로 일군 2000여억원(6일 기준)의 재산을 투명하게 사회에 내놓는다는데, 불법으로 만들어진 정수장학회를 ‘위탁 관리’ 시비 속에 끌고 가는 건 누가 봐도 명분 없는 짓이다. 박 의원은 신문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비판했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정수장학회로 보자면 박 의원의 소통 능력은 불통 수준에 가깝다. 이 대통령보다 한 수 위다. 박 의원은 “정수장학회는 제대로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게 옳다. 늦었지만 시곗바늘을 앞으로 가게 할 때가 됐다. 정재권 논설위원jj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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