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공항 ‘혁신’ 참고서] 1. 빈 공항 ‘50년 갈등’, 어떻게 풀었나
- 김현우 기자
- 승인 2024.06.16 13:06
- 수정 2024.06.16 18:03
프롤로그: 인구 1위, 기업 1위, 산업단지 1위, 수출‧수입 1위. 경기도는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다. 2022년 7월 민선 8기 시작 이후, 경제를 더욱 키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도는 방안 중 하나로 ‘신공항 건설’을 꺼내 들었다. 교통 인프라 확대, 수출 물류 활성화, 첨단산업 및 외국기업 투자 유치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 사업성을 증명해야 하고 환경, 주민 피해 등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인천일보는 현시점에서 성공 모델로 주목받아온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을 기획취재, 방향을 모색했다. 언론사 중 최초로 현실화되고 있는 ‘친환경 공항’ 등도 현장에서 취재했다.
▲ 한해 약 3000만명 이상의 여객이 이용하는 등 유럽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춘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 전경. 1954년 1월 개항한 이후 소음 피해 문제로 주민들과 갈등을 겪었으나, 공론화 정책으로 해소한 기록이 있다./김철빈기자 narodo@incheonilbo.com
오스트리아 수도 빈(Vienna‧비엔나). 이곳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미국 컨설팅 업체‧영국 경제지 평가 등)가 발표될 때 1위를 여럿 차지한 바 있다. ‘다양한 인프라’에서 점수를 높게 받았다. 면적 약 414㎢, 경기도와 비교했을 때 25배 가까이 작은 이 도시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공항경제’가 꼽히고 있다.
하지만 빈 국제공항도 한국을 포함한 여느 국가들처럼 공항 소음과 규제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에 휩싸인 적이 있다. 무려 50년 세월이다.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정치인들도 팽팽한 찬‧반 대립 구도 속에서 옥신각신했다. 급기야 “밤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여론까지 형성됐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풀어낸 것이 ‘공론화 정책’이다. 숙의 토론과 중재, 합의 등을 거쳐 해결됐다. 5년 걸렸다. 갈등 기간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7월 ‘신공항 갈등 관리 매뉴얼’을 연구할 때 빈 국제공항을 참고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경기신공항 ‘혁신’ 참고서] 1-1. 치열한 공론화…‘환경 갈등’ 한계를 넘다
16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빈 국제공항은 1938년 5월 독일 공군의 슈베하트 기지로 출발, 1954년 1월 민간공항으로 개항했다. 이후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비롯해 중동부 유럽 등을 연결하는 중요한 허브로 몸집을 키웠다. 2023년 한해에만 2950만명에 육박하는 여객수요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록(3170만명)의 93%까지 회복한 것이다.
공항을 운영하는 그룹사(Flughafen Wien AG‧지방자치단체-민간 합작)는 과거부터 항공수요, 물류 증가 추이를 고려해 활주로가 추가로 지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존에는 3500m, 3600m 길이의 2개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그룹사는 1998년 신규 활주로 건설을 포함한 확장계획안을 발표했다.
소식을 접한 인근 지역이 즉각 저항했다. 슈바도르프, 슈베하트, 힘베르크, 트라우트만스도르프 등 연관된 지방자치단체만 10곳을 족히 넘었다. 주민들은 이미 수십년 동안 민간 비행기가 도입된 이후부터 소음피해가 점진적으로 증가한 탓에 공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상태였다. 주민들은 활주로 건설추진 중단은 물론 야간비행중단, 보상비 지급까지 요구했다. 계획이 분쟁을 더욱 키운 꼴이 됐다. 정착민 협회, 노동단체 등도 연대했다.
당시 기록된 지역 주민 의견서에는 “3번째 활주로를 사용하면 공항 교통량 증가를 배제할 수 없으므로 훨씬 더 많은 항공기 소음공해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 지난 4월 각종 시설을 갖춘 빈 국제공항의 대합실 모습. /김철빈기자 narodo@incheonilbo.com
빈 국제공항 측은 해법으로 2000년 3월 ‘미디에이션(mediation)’을 결정했다. 사전적으로 ‘조정’, ‘중재’ 등 의미인 미디에이션은 그해 7월부터 주민, 사회단체, 경제인 단체, 공항‧항공사, 지자체, 의회, 정계, 학계 등 다방면 분야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본격 시작됐다. 토머스 프라다(Thomas Prader) 변호사 겸 갈등 중재 전문가가 일련의 과정을 총괄했다.
단계별로 진행된 이 절차에 54개 그룹, 수백명의 당사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의제와 추진 방식부터 토론과 합의로 정했다. 구체적인 통계, 수치 등 데이터와 전문 분석을 기반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했다. 해소되지 않는 문제는 투표에 부쳤으며, 모든 과정을 온라인에 게재하기도 했다.
2003년 5월, 2005년 6월 각각 이뤄진 합의의 핵심은 소음저감 대책, 피해보상, 지역발전 방안으로 구성됐다. 우선 소음은 ▲시간대‧위치별 항공기 이‧착륙 조정 ▲방음시설 설치 ▲소음모니터링 및 평가 제도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부분은 ‘환경기금’을 통해 대부분 풀어낼 수 있었다.
약 300만 유로(한화 약 44억원)로 공항 그룹사가 조성하는 환경기금은 전체 75% 비율을 지역사회에 직접 환원하게 했다. 이 중 50%는 직접 보상에 쓰고, 남은 25%는 비행으로 인한 직접 영향 지역의 환경‧소음피해를 최소화하는 연구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쓰기로 했다.
기금에는 승객이 내는 20센트(약 297원‧밤 늦게 도착‧출발의 경우 가중치 3배 적용), 공항 관련 종사자 부담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국에 제출하는 새 활주로 건설 사업계획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미디이에션 합의 규정이 모두 포함되도록 했다.
‘유럽 최대의 공론화’로 불리는 이 작업으로 빈 국제공항의 갈등 상황은 재현되지 않고 있다.
빈 국제공항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을 수십 차례 만들었으며, 관련 절차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공항 측이 부담했다”며 “의견 개진만 아니라 정책 수립에 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재정적인 이유로 제3 활주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우리의 갈등은 모두 해소됐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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