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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김충영이 만난 사람

[김충영 수원현미경(131)] 수원연화장 건립의 첫 단추는 이상룡 수원시장이 꿰었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131)] 수원연화장 건립의 첫 단추는 이상룡 수원시장이 꿰었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기자명김충영 논설위원 입력 2024.02.05 06:00

1920년경 건립한 수원최초 화장장 모습. (사진=수원시)

수원연화장(화장장) 건립 필요성을 제일 먼저 주장하고 부지를 선정한 사람은 이상룡 제20대 관선 수원시장이고,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는 민선1기 심재덕 수원시장이다.

제20대 이상룡 전 수원시장. (사진=수원시)

 

1910년대 후반 수원 최초의 화장장이 세류동 825번지에 건립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게도 화장을 권장했으나 보편적인 장례문화로 자리잡지 못했다.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과 가난한 사람들의 화장이 차츰 늘어갔다.

1920년 동아일보에 수원관련 기사가 실렸다. ‘화장장과 인가의 거리가 가까워 날마다 사람 태우는 냄새를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사를 살펴 볼 때 당시의 화장기술로는 매연과 악취를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2년 건립한 인계동 화장장 모습. (사진=수원시)

수원화장장 자리에 2005년 건립한 수원현충탑. (사진=김충영 필자)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화장이 늘어나자 매연과 악취 등으로 주민들의 생활불편은 물론 위생문제도 도외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수원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화장장 이전사업을 추진하여 1962년 8월 11일 인계동에 화장로 3기(1일 9구)를 처리하는 시설을 갖추었다.

당시 수원화장장은 성남화장장을 제외하고는 경기도에서 유일한 화장장이어서 경기도 전역은 물론 충청권, 강원권에서도 이용했다.

1980년대 매탄택지개발사업 시행으로 매탄아파트, 권선아파트, 인계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화장장의 이전 요구가 시작됐다.

수원현충탑(구 화장터) 위치에서 바라본 임광아파트 전경. (사진=김충영 필자)

 

1987년 수원시청의 동수원 이전과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서면서 화장장의 이전 요구는 한층 더 심화되기 시작했다.

화장장 이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매탄택지개발지구 내 임광아파트 1200세대가 들어서면서 부터다.

임광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화장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입주 했다. 그런데 입주를 하고 살아보니 100여m 인접지에 있는 수원화장장의 폐해가 심각했다.

평일에도 몇 차례 화장이 진행됨에 따라 분진이 아파트에 날아들어 빨래에 내려앉는 하면 자동차에도 매연이 쌓일 정도였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여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임광아파트 주민들은 화장장 이전을 요구하는 민원을 10여 차례 이상 제기했음에도 반응이 없자 수백 명이 시청에 찾아가서 여러 차례 집단행동을 했다. 필자도 임광아파트 주민이어서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이 무렵 1987년 권선동 1015번지에 권선동성당이 자리 잡았다. 권선동 성당은 매교동 성당이 분가시킨 성당으로 950평 대지에 조립식 가건물이었다. 당시 김정원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는 제대로 된 성당을 지어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상태였다. 김 신부는 시청 앞 상업지역에 성당을 신축할 경우 주변이 유흥시설이 밀집되어 신앙생활에 불편을 초래함은 물론 주변 상가에도 불편을 줄 것을 우려했다.

김 신부는 수원시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수원화장장 자리에 성당을 지으면 성당의 면모도 갖추고 수원시의 골칫거리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천주교수원교구장인 김남수 주교에게 상의한 결과 긍정적인 답변을 얻게 되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천주교수원교구는 경기도와 수원시 당국자와 만남을 가졌는데 임사빈 경기도지사와 유석보 수원시장, 김남수 주교, 김정원 신부가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천주교수원교구측은 안성군 보개면에 있는 천주교수원교구 공원묘지에 수원화장장을 이전하고, 인계동 화장장부지 5000 평을 권선동 성당부지로 교환하자는 의견을 제시해 동의를 얻었다. 이 사업의 진행은 천주교수원교구가 주관해서 추진하기로 했다.

천주교수원교구는 안성군에 수원화장장 이전 허가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당시 안성군수는 본인 재임시절 혐오시설인 수원화장장을 안성에 유치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지 주민들에게 수원화장장 이전 반대 시위를 유도했다. 이에 따라 결국 수원화장장 이전사업은 5년이라는 시간만 허비 한 채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후 권선동성당은 권선동 3-2번지 일원에 30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여 성당을 새로 건립, 1998년 이전했다.

1994년 1월 제20대 수원시장에 취임한 이상룡 시장은 수원시가 당면한 사항 중 가장 시급한 사항이 수원화장장 이전이라고 생각하고 수원화장장 이전에 발 벗고 나섰다.

당시 이상룡 시장은 민선시대가 시작되면 선출직인 민선시장은 혐오시설인 화장장, 하수종말처리장, 쓰레기소각장 등을 추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수원화장장 이전은 관선시장이 책임지고 확정짓지 않으면 민선시장은 영원히 옮길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상룡 시장은 1994년 7월 수원화장장 이전 추진계획을 수립, 수원시의회에 보고 했다. 화장장 이전을 위해 후보지 선정 용역비를 확보해 1995년 안에 후보지를 선정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어 화장장 이전실무를 담당할 TF팀을 구성했다. TF팀단장은 김석만 보건사회국장으로 하여 조필상 사회과장이 책임반장을 맡고, 실무는 강명석 공중위생계장, 후임 김재복(전 영통보건소장), 이항우 주무관이 담당했다. 도시계획 분야는 최호운 주무관(현재 화성연구회 이사장)이 담당했다.

실무 TF팀은 7개월에 걸쳐 10여 개소를 선정하여 면밀한 검토 작업을 거쳐 최종 3개소로 좁혔다. ▷1후보지는 권선구 호매실동 일원 4만8700㎡(1만4731평)이, ▷제2후보지는 장안구 이목동 일원 12만8151㎡(3만8765평)이 선정됐다. ▷제3후보지는 팔달구 하동 일원 5만7694㎡(1만7452평)였다.

수원시는 압축된 후보지 3개소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이어 수원시의회 임시회 청원심사 특별위원회는 표결을 통해 팔달구 하동 20번지 일원을 수원화장장 부지로 선정했다.

그리고 1995년 2월 10일 제132회 수원시의회 본회의에서 공유재산 취득승인 동의를 받음으로써 최종 승인 됐다.

이상룡 시장은 짧은 재임기간(1994.1.~1995.4.) 동안 3대 혐오시설인 화장장, 쓰레기소각장, 하수종말처리장 증설과 수원야외음악당 건립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수원은 관선 마지막 시기 책임감이 투철한 목민관(牧民官)의 노력으로 민선시기로 전환되면서 큰 갈등 없이 3대 혐오시설을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어서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됐다.

고인이 된 이상룡 시장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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