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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이고 선생의 정신과 수원의 얼굴

[with+] 이고 선생의 정신과 수원의 얼굴

입력 2022-09-15 19:45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얼굴은 '얼과 꼴'의 합성어다. 인간 내부에 있는 '얼'은 정신이며 외부에 있는 '꼴'은 모양이다. 얼은 보이지 않지만 꼴은 보이는 것으로, 누구나 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외면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고 병들고 죽지만 내면의 얼굴은 시간을 초월하며 죽어도 죽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인간 정신이 지향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타자와 세계라는 다자의 이익과 평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 같은 시대를 넘나들면서 역사의 선각자를 통해 우리는 인간 정신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기록에서 재현되며 공동체 문화 속에서 살아있다.

'팔달산 주인' 별칭… 충·효로 거듭

착한 삶 권하며 실천 '권선동' 유래

수원의 경우 역사적으로 이고(李皐, 1341~1420년)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충효의 대표 인물인 이고 선생은 공민왕(1374년) 시절에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 학사를 지냈다. 그는 '팔달산 주인'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수원을 충과 효로 거듭나게 한 수원 정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고 선생의 생전에 명명된 팔달산의 어원으로 두 가지 유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고려말 대사성 집현전 직제학으로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광교 남 탑산'(光敎南塔山)에서 기거했다. 당시 공민왕의 신화를 통해 안부를 묻는 공민왕에게 이곳 산천의 풍광을 극찬하면서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막힌 데가 없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이고 선생에게 여러 번 관직에 나설 것을 권유했으나 사양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잠시 관직에 오르기는 했으나 고려의 충절을 끝내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태조는 이고가 거처한 곳을 화공에게 그리게 해 이것을 보고 나서 '팔달산(八達山)'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행적은 지금 수원의 권선동에서도 발견된다. 권선(勸善)이라는 지명은 이고가 이 지역에 머물면서 백성들에게 착하게 살기를 권하면서 선을 몸소 실천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의 높은 인간 정신을 이어받은 주민들은 이고 정신을 통해 지역에 대한 애향심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후대에 정조 시대에 이르러 권선을 덕목으로 삼고 있는 수원 팔달산의 유래를 정조가 칭송하면서 화성을 건설할 때 남문을 '팔달문'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고 선생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권선동을 효와 선의 마을로 규정한 권선1동에서는 2018년부터 '선을 권하는 이고 선생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후손 여주이씨 문중 '수원공고' 설립

산업화 인재 양성 민족중흥 이바지

지금이 '사통팔달' 시대정신 필요해

이뿐만 아니라 이고 선생의 가르침은 후대의 교육기관으로도 이어지는데 바로 1970년대 개교한 '수원공업고등학교'가 중심에 있다. 말하자면 팔달산 자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수원공고는 이고 선생의 후손인 여주 이씨 문중에서 설립했다.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고 배출하여 민족중흥에 이바지하기 위해 세워진 수원공고는 벌써 2만5천명이라는 학생들을 사회로 진출시켰다.

분명 이들은 이고 선생의 뜻을 모아 선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원 시민으로 성장하고 대한민국을 발전시켰을 것은 자명하다. 이를 입증하듯이 수원공고의 교가 또한 '조상들의 얼을 이어 창조의 정신'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얼'은 인간 정신으로서 근간에는 '사통팔달'로 통하는 이고 선생의 '권선'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수원의 얼굴'이다.

수원의 또 다른 얼굴인 팔달산에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 가을에 수원 시민이라면 팔달산에 올라 수원의 얼굴을 지키고 있는 '사통팔달'로 가는 시대 정신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고 선생이 가르쳐온 과거의 정신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필요한 것임을 상기하면서.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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