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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2030에 더 가혹한 대출 규제

[데스크 칼럼] 2030에 더 가혹한 대출 규제

서욱진 기자

입력 2021.11.24 17:11 수정 2021.11.25 00:14 지면 A34

“여기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한 잔 가져오라고.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생사(生絲) 공장에서 일하는 허삼관은 병원에서 피를 뽑아 팔고 나면 항상 승리반점으로 가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보혈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소박한 음식. 피를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자신을 위한 작은 위로다. 한 번 피를 뽑으면 최소한 석 달은 쉬어야 하지만, 허삼관은 아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흘에 네 번 매혈을 감행한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 해도 전 피를 팔아야 합니다. 아들이 간염에 걸렸거든요.”

위화의 1996년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중국 현대사 속에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던 한 가장의 이야기다. 요즘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으려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10·26 대책’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총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면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시각은 한결같다.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은 ‘투기’다. 가족과 실제 입주해 살 집 한 채도 예외가 아니다. 규제지역에서 3억원 초과 주택 구매 시 신규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고 기존 대출금도 회수당한다. 15억원 초과 주택은 담보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집을 산 사람들이 정말 가격 상승을 노리면서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댄 투기 세력일까? 지금 집 사는 사람들은 불안해서 산다. 지금보다 더 오르면 영영 못 살 것 같은 공포가 수요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얼마나 올랐나.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1639만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6억708만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집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재산 격차는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벌어졌다.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부동산만큼은 자신있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을 믿었던 전국의 가장들은 후회와 탄식의 쓰라린 밤을 수없이 보냈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가격의 두 배 이상 주고 사야 하는 그 속이 어떨까. 그럼에도 매수 계약서를 쓰는 것은 집값 상승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리스크 헤지(위험 회피)라도 해야겠다는 판단이다. 언제 갚을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이유다. 이들에게 대출은 허삼관이 피를 파는 것과 같다.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대출을 완전히 틀어막으니 이제 집은 ‘현금 부자’만 살 수 있게 됐다. 4050세대는 그동안 축적한 재산이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인 2030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한계가 있다.

싼값에 분양한다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도 대출이 불가능하면 ‘그림의 떡’이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타는 고급 외제차는 내집 마련을 포기한 청년의 절망이다. 2030이 많이 들어가는 코인(암호화폐) 시장이 노름판 같다고? 그럼 이들이 10년, 아니 20년 뒤라도 집을 살 방법을 알려달라. 순식간에 30배 급등했다가 곧바로 5분의 1토막 나는 잡코인이 어찌 보면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보다 낫다. 잠시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게 해줬으니 말이다.

#데스크 칼럼 #서욱진의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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