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섣달 그믐날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민가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그믐날은 밖에다가 가마솥을 걸고 불을 끓이고 설음식 준비를 한다. 집집마다 냄새를 풍기면서, 설음식 장만을 하는 것은 늘 하는 연중행사이다. 그러나 민가에서 전해지는 풍습이 상당히 많은 것도 이 날이다. 지금이야 누가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느냐고 하겠지만, 아직도 어르신들이 계신 집에서는 지켜지기도 한다.
|
▲ 설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가마솥을 내건다. 사진은 민속촌 |
석달 그믐을 ‘제석(除夕)’ 또는 ‘제야(除夜)’라고 한다. 옛날에 궁중에서는 ‘연종방포(年終放砲)’라 하여 포를 쏘았다. 민가에서는 묵은 빚을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서로 빌려주고 빌려간 돈을 갚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묵은 빚을 갚지 않으면 다음해도 역시 빚을 지고 산다는 속설 때문이다.
제석의 풍습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민가에서도 방포와 비슷한 것을 했다. 포를 쏠 수가 없기 때문에 푸른 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불을 피우고 그 속에 대를 집어넣으면 ‘탁, 탁’ 소리를 내면서 대가 터진다. 그 소리에 놀라 집안에 있는 묵은 잡귀들이 다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폭죽’, ‘대총’ 혹은 ‘대불놀이’라고 불렀다. 수원에서는 방포를 할 수가 없어(아마도 대나무를 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대신 연기로 잡귀를 쫒아냈다.
|
▲ 섣달 그믐날은 불을 놓아 집안에 모든 악한 기운을 소멸시킨다.(사진은 특정사실과 무관함) |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남, 55세)는 “저희는 옛날 할머니 때부터 한지에 쑥과 목화 씨, 고추가루 등을 싸서, 집의 사방에 놓고 불을 피웁니다. 그러면 집안에 있는 악귀들이 모두 도망을 간다는 것이죠.”라고 한다. 민가에서 제야에 하는 축귀의식의 하나이다. 섣달 그믐날에는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를 한다. 새로운 해에 새날을 정결하게 맞이하기 위함이다.
섣달 그믐날은 ‘작은 설’이라고 한다. 이 날은 ‘묵은세배’를 드리는 날이다. 궁에서는 이품 이상의 신하들이 왕에게 묵은해의 문안을 드렸으며, 민가에서는 연소자들이 친척집을 찾아다니면서 묵은세배를 했다. 묵은세배는 가까운 친척집에 다니는데, 예전에는 그믐날 밤이 되면 묵은세배를 드리는 사람들로 길거리에 등불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새해를 보호하기 위한 풍습 ‘수세(守歲)’
섣달그믐이 되면 집집마다 이래저래 분주하다. 새해의 설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집안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믐날은 집안에 있는 묵은 약을 모두 모아다가 불에 태운다. 이렇게 모든 약을 태우는 것은, 묵은 약이 집에 있으며 병이 해를 넘겨 함께 넘어간다는 것이다. 약을 태울 때 그 태우는 냄새에 모든 액이 사라진다는 액막이이다.
|
▲ 에전에는 마을의 집집마다 절구질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백산 풍속화 중 일부) |
예전에는 머리카락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머리를 잘라 남편의 술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들도 이런 유풍의 하나일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집안에 모아두었던 머리카락을 모두 불살랐다. 그 묵은 머리카락에는 많은 액이 달라붙어 있다고 믿는 속설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집안에 불을 다 켜 둔다. 그리고 밤새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잠을 자지 않는다. 이렇게 밤을 새우는 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새해를 지켜낸다는 뜻이다. 이날 잠을 자면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하얗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눈썹 세었다’고 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은 서로를 감시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지금이야 찾아볼 수 없는 풍습이긴 하지만, 그래도 집안을 깨끗이 치운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새해를 정결하게 맞이한다면, 그만큼 새해의 의미가 깊어지지 않을까? 내일은 일찍부터 집안 곳곳을 다 치워서, 임진년의 수세를 제대로 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