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경제.부동산의 칸 ../*부동산 관련,기고 칼럼 등

부자사장의 부동산재테크 가르침이 여주인공 가난서 구출하길​

부자사장의 부동산재테크 가르침이 여주인공 가난서 구출하길

등록 :2021-06-25 18:19수정 :2021-06-26 02:31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00967.html#csidx9f708a983c73e57a5b726330e15631f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JTBC 드라마 ‘월간 집’

“가난을 거꾸로 해보세요.” “난가?” “맞습니다. 당신은 가난합니다.” 지난 4년간 서울 아파트 값이 두 배가 되었다. 정부가 규제를 남발해도 ‘불장’이 꺼지기는커녕 경기·인천으로 번지는 추세다. 노동소득에 의존해 살아가며, 아껴서 저축하고, 전월세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망연자실 중이다. ‘벼락 거지’가 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파고드는 처연한 저 유머에 좀처럼 웃음이 나질 않는다.

‘돈 없는 것은 나랑 내 동료들뿐이고, 세상엔 돈 많은 사람이 참 많구나’를 실감하는 유동성 대폭발의 시대에, 직장 동료들 사이의 가장 진진한 화제도 부동산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세태를 반영한 프로그램이 나왔으니, 지난 16일 시작한 <월간 집>(제이티비시)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집방’인가 싶지만, 부동산을 소재로 한 16부작 드라마다.

<월간 집>은 ‘집’에 관한 다양한 입장과 사연을 담은 오피스물 로맨틱 코미디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유머가 탄탄하며, 간간이 소개되는 으리으리한 집들이 눈호강을 시켜준다. 가난한 여자와 부자 남자의 로맨스라는 전체 구도는 다소 실망스럽다. 남자 주인공이 회사 대표이자 집주인이자 응원 댓글을 달아주는 ‘키다리 아저씨’라니, 거기에 금수저 ‘서브 남주’의 짝사랑까지 끼얹다니 너무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의 키스 장면이 망상일 뿐이라는 ‘낚시질’을 통해 흔히 기대하는 로맨스를 비웃기도 한다. 앞에서는 큰소리치고 뒤에서는 잘해주는 ‘츤데레’식 로맨스를 펼칠 요량이지만, 어차피 드라마가 치중하는 것은 로맨스가 아니다. 대놓고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할 만큼 독창성에도 큰 관심이 없다. 장르를 당의정 삼아 ‘부동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세태를 스케치하며 문제의식을 전하는 데 공을 들인다.

<월간 집> 잡지사에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청약에 목을 매며 희망과 절망의 조울증을 앓는 사람이나, 재건축 하나 바라보고 ‘썩어빠진 아파트’에서 삶의 질을 포기해버린 사람은 우리 곁의 이웃이다. 월세 100만원도 마다하지 않으며 ‘욜로’(YOLO·인생은 한번뿐이니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뜻)를 외치는 하락론자와, 집보다 캠핑용품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도 어딘가에 존재할 법하다. 조연도 다채롭지만, 남녀 주인공의 설정은 어떤 상징성을 품는다.

나영원(정소민)은 10년차 에디터지만, ‘나빵원’으로 놀림받을 만큼 무일푼이다. 월셋집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마저 날리고, 열악한 월세방에 산다. 그의 방은 비현실적으로 예쁘다. 잠시 머물더라도 자신만의 안식처를 꾸미길 좋아하고 인테리어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인테리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쥐가 나오거나 괴한이 침입하는 문제는 막지 못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집은 비싸다. 그는 꿈꾸던 ‘리빙’ 잡지사에 취직하지만, 대표가 소유한 부동산을 광고하는 ‘돈 되는’ 기사를 써야 한다. 대표는 “살고 싶은 집 말고, 사고 싶은 집에 대해 쓰라”며 들볶는다. 인테리어 ‘금손’이지만 부동산 무식자인 나영원은 집을 사용가치로 접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반면 유자성(김지석)은 수백억대 부동산 소유자다. 당연히 금수저 출신이려니 생각하겠지만, 자수성가하였다. 그는 부동산을 마지막 남은 계층상승 사다리라 말한다. 집에 대해 철저히 교환가치적으로 접근하는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자신과 같은 개천 출신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려 한다. 그의 비결은 유튜브 부동산 콘텐츠에서 흔히 통용되는 내용이다. 일단 아껴서 종잣돈을 만들고, 소액의 갭투자나 분양권 등을 사고팔아 투자금을 불려 나가고, 투자금이 커지면 역세권 대단지 ‘초품아’(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나 재건축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의 급매물을 사라는 것. 물론 이를 위해선 부동산 이론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지난 5월 종영한 예능 <온앤오프>(티브이엔)에 나온 ‘부자 언니’ 유수진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았다. 이런 말들은 희박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지닌다. 흔히 노력해서 부자가 된다고 말하면 노동의 노력을 아무리 기울여도 가난하지 않냐며 반박한다. 하지만 여기서 노력은 노동의 노력이 아닌 투자의 노력을 가리킨다. 노동소득으로 사는 사람은 투자할 자본이 없기 때문에 부자가 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노동소득으로 종잣돈을 모아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존재를 뛰어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가 일깨우는 현실은 명징하다.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곤란하다. 현실 세계에서 집은 사는 곳이자 사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십년간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나영원의 오열에 대한 유자성의 대답은 “그 나이를 먹도록 부동산에 무지한 죄”이다. 주식 시장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매매든 임대든 참여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 투자가 아닌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지식을 익혀야 한다. 노동자가 임금을 몇년간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식의 셈법은 상대를 미혹하는 말이다. 저축은 인플레를 이길 수 없고, 노동소득은 자산소득을 이길 수 없다. 대출과 투자에 눈뜨지 않고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디 유자성의 츤데레식 사랑이 아니라, 재테크의 가르침이 나영원을 가난에서 구출하길 바란다. <월간 집>이 변형된 ‘캔디-렐라’ 환상극이 아니라 유익한 부동산 드라마로 남게 되길 기대한다.

대중문화평론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