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수원특례시의 종합/-우만1동.우만2동.지동<팔달구

'소띠 해' 우만동(牛滿洞) 등 소와 인연 깊은 수원시

'소띠 해' 우만동(牛滿洞) 등 소와 인연 깊은 수원시

등록 2021-01-04 11:54:19

농민들에 송아지 나눠준 정조대왕...'수원갈비 명성' 계기

일제강점기 연간 2만마리 거래된 남부권 최대 우시장도

수원 우시장. (사진제공=수원시)

[수원=뉴시스]이준구 천의현 기자 = '수원갈비'의 명성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팔달구 우만동(牛滿洞)은 예로부터 소를 많이 키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동에 있던 남부권 최대의 우시장을 가려면 우만동 고개를 지나야 했다. 소를 팔려는 농민들로 새벽부터 이 길에 소가 가득 찼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띠 해를 맞아 수원은 유달리 소에 관한 유래가 많아 연관이 깊은 도시다. 일제 강점기인 1900년대 초 북수동에서 영화동으로 자리를 옮긴 수원 우시장은 연간 2만마리 이상 거래된 전국 3대 우시장의 하나로 함경북도 명주군과 길주군 우시장과 함께 한반도 남부의 최대 시장이었다.

이 같은 이유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 내에서는 도축이 엄격히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용인 화성은 물론 오산 안성지역에서도 소를 팔기 위한 행렬은 수원으로 이어졌다.

수원 우시장의 형성에는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거론된다. 도읍 이전을 염두에 두고 실학자 정약용을 통해 화성(華城)을 축조한 정조는 정자동 일대 대유평에 군인과 일꾼들을 먹이기 위해 둔전(屯田)을 경영하고 농민들에게는 송아지를 나눠주어 나중에 갚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소를 거래할 우시장이 성 안팎에 생기게 됐고, 한우를 구하기 쉬워지면서 '수원갈비'가 명성을 날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수원갈비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40년대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문을 연 화춘옥에서 출발한다. 해장국에 소갈비를 듬뿍 넣어 팔기 시작하다가 양념숯불갈비로 입맛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양념갈비가 맛있다는 소문을 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수원을 지날 때면 이곳을 가끔 들르면서 화춘옥갈비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현재는 우시장이 사라졌지만 가보정·본수원·삼부자 갈비 등이 수원갈비의 명성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매년 갈비축제를 열고 있는 수원시는 소와의 오래된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화춘옥.

◎공감언론 뉴시스 caleb@newsis.com, mypdya@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