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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상원의원에서 최고령 대통령 오른 '미국판 흙수저' [바이든 당선 유력]

최연소 상원의원에서 최고령 대통령 오른 '미국판 흙수저' [바이든 당선 유력]

파이낸셜뉴스입력 2020.11.05 18:05수정 2020.11.05 18:05

바이든 드라마틱 50년 정치인생

아내·갓난딸 동시에 잃는 비극

입원한 아들 병실서 임기 시작

덩샤오핑부터 中지도자 4명 상대

명실상부 미국내 최고 '중국통'

연설 표절 시비로 경선 낙마

여성폭력방지법·코소보 사태 등

해결사로 주도적 역할 재기 성공

오바마 러닝메이트로 8년 동행

외교·안보 전문가적 역량 입증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오른쪽)가 부통령 시절이던 지난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만나고 있다. AP뉴시스

194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조지프 로비네트 바이든(오른쪽 두번째)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 조 바이든 홈페이지

조 바이든의 델라웨어대 재학시절. 바이든은 역사와 정치과학을 복수전공했으며 시러큐스대로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조 바이든 홈페이지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1942년생, 올해 77세, 미국 대통령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바이든 후보는 만 29세였던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중앙 정치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36년간 7선 의원, 3차례 대권 도전 등을 거치며 우직하게 '정치'의 한길을 걷는다.

■가난한 말더듬이 극복, 최연소 상원

하지만 어린 시절은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가정은 어려웠으며 말더듬증까지 있었다. 친구들의 놀림이 잇따랐고, 괴롭힘도 당했다. 바이든 후보는 선거 캠페인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이 아니었다. 그는 시의 긴 구절을 암기하고, 거울 앞에서 큰 소리로 낭송하는 방법으로 말더듬증을 극복했으며 일가 친척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대학원에 진학해 국선변호사까지 됐다.

이는 향후 정치무대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1970년 카운티 의회 의원(주 의원보다 밑단계)으로 정치를 시작한 뒤 1972년 자신이 성장한 델라웨어주에서 최연소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델라웨어주는 20여년간 공화당이 선거에서 진 적이 없는 곳이다. 당시 바이든 후보의 상대는 공화당 케일럽 보그스 의원이라는 막강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역경은 다시 찾아왔다.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해 교통사고로 아내와 갓난아기인 딸을 동시에 잃었던 것이다. 바이든 후보는 이 역시 굴하지 않았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아들을 간호하며 상원의원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15년엔 아들 중 한명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이든 후보는 동료 의원들보다 한참 어린 나이였지만 정치적 편파, 당파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표를 던졌다고 자서전에서 그 시절을 회고했다. 또 대법원 낙태 불법화 판결 후 새로운 낙태법안 등에선 자신의 신념을 지켜 중도적 입장을 유지했다. 바이든 후보는 상원의원으로 재직한 36년 동안 이념에 집착하지 않는 실용적 중도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든 후보는 자서전에서 "나는 편의보다 지적 동의와 개인적 원칙을 우선으로 삼는 바람에 힘든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문제만큼은 직감을 믿으며,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은 것을 사과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시진핑과 10년 인연 '중국통'

바이든 후보는 상원 외교위원장을 두 차례나 지낸 '외교 전문가'이자 '중국통'으로 불린다. 1979년 덩샤오핑을 시작으로 2001년 장쩌민, 2011년 후진타오, 2013년 시진핑까지 4명의 중국 역대 지도자를 상대한 경험이 있다.

이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연은 조금 더 특별하다. 바이든 후보가 부통령이던 2011년 당시 부주석이던 시 주석을 만났다. 중국을 찾은 바이든 부통령을 시 부주석이 안내를 하며 쓰촨 대지진 피해지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을 둘러봤고 비공개 만찬 등으로 친분을 쌓았다. 이듬해인 2012년엔 시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 바이든 부통령과 친밀감을 과시했다.

시 부주석이 주석 자리에 오른 2013년 12월 두 사람은 다시 회동했다. 동중국해 상공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놓고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신형 대국관계 논의만 하고 끝났다.

바이든 후보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인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손녀와 외조카딸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자랑했을 정도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이후엔 그의 아들 헌터가 중국기업과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대권 3수생…7명 대통령 거쳐

바이든 후보는 또 7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대권 도전은 3번째다. 1988년 처음 출사표를 던진 대선 레이스에서 연설 표절시비로 경선 도중 하차했다. 그때 충격으로 뇌동맥류 질병이 생겼고, 쓰러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수술과 재활을 거쳐 건강을 회복했고, 또다시 정치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여성폭력방지법과 유고슬라비아 내전, 코소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년 뒤 당내 대선 경선에서 다시 고배를 마셨지만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돼 8년간 함께 국정을 운영했다. 이 기간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을 직접 관장하고, 중산층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다.

외교 노하우를 살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병력을 증파하되 아프간 정부 당국의 치안 및 안정 유지 노력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도 바이든 부통령의 작품이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내년 1월 취임하면 미국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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