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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전쟁 이긴 처칠이 선거에서 진 이유

[朝鮮칼럼 The Column] 전쟁 이긴 처칠이 선거에서 진 이유

조선일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20.08.31 03:20

미래통합당 지지도 반짝 상승… 文 정부 반감 편승 효과

英 보수당 전쟁 직후 총선 패배… 당 노선 변화 통해 재기

보수 생명은 변화 유연성… 과거와 단절하고 새출발해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미래통합당 지지도 변화가 눈길을 끌었다. 잠깐이기는 했지만 통합당의 지지도가 상승했고 일부 기관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변덕스러운 것이 여론이어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기적 조사 결과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풍향계 같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통합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간 때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과 독단적이고 편파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고조된 시점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정부·여당이 워낙 못하니 야당 지지율이 올라간 것 같다. 하지만 2019년 8~9월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더 높아졌던 상황에서도 자유한국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당시에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지지도 상승에는 반사 효과 이상으로 그동안 김종인 대표 체제 아래서 시도한 통합당의 변신 노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합당 지지율 상승은 반짝 효과로 그치고 말았다. 최근 코로나의 급격한 재확산에 따른 위기감이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 상승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일부 보수 집단의 광화문 집회 역시 통합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감염 위험을 무릅쓴 집회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태극기 부대'로 통칭하는 구보수층(old conservatives)의 보수주의가, 나라를 걱정하는 그들의 충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보수 정치가 과거에 머물러서는 더 이상 경쟁력 있는 정치 세력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원래 보수라는 것이 생래적으로 기존 질서 유지를 선호하고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크지만,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고 그런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는 정치 세력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보수 정치의 생명력은 변화에 대한 유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가 아무리 아름답고 자랑스럽다고 해도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오늘의 문제가 더욱 시급할 수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공세로 풍전등화 같았던 영국을 이끌게 된 건 윈스턴 처칠이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을 독려하며 처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1945년 7월에 실시한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건 전쟁 영웅 처칠의 보수당이 아니라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이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영국 국민에게 절박했던 건 전후 복구와 민생 안정이었고, 그런 문제 해결은 노동당이 더 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집권 후 노동당은 복지 국가 건설을 추진했고 이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야당 신세로 전락한 보수당도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야 했다. 보수당은 당 조직 강화와 함께 당 노선의 변화를 추구했다. 당에서 기초한 산업 헌장의 초안을 받아보고 처칠이 '우리 당에도 사회주의자가 있구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보수당은 적극적으로 시대적 요구를 수용했다. 그런 유연함으로 보수당은 1951년 총선을 통해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치면서 한국의 보수 정당은 2016년부터 네 차례 잇따라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 가운데 2018년 지방선거와 금년의 총선에서는 치욕적이라 할 만한 참패를 당했다. 더욱이 '몰락'에 가까운 패배를 한 이후에도 보수 정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정당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반짝했던 결과였지만 미래통합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상승했던 것은 그래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통합당이 권력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당이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당 개혁의 방향을 여론의 움직임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토록 독단적으로 국정을 이끄는 건 그만큼 야당이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보수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함을 잃어버리면 보수 정치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새로운 보수주의의 정립을 위해서 과거와 과감하게 단절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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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30/20200830025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