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식 / 사회부장
수원시는 설 명절을 앞둔 지난달 20일 현금 3천만원이 든 갈비세트를 받은 시청 고위간부가 감사담당관실에 자진 신고하자 돈을 전달한 조경업자를 경찰에 고발하고 관련내용에 대해 보도자료를 냈다. 공직사회의 특성상 '쉬쉬'해야 할 것 같은 사건을 보도자료까지 낸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수원시 역사상 이처럼 뇌물공여사건을 자진 고발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상하기도 했지만 언론들은 이런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경인일보는 단순 인용보도에 그치지 않고 '왜 업자가 거액의 돈을 전달하려 했을까', '어떤 업체길래 거액을 주려 했을까'에 주목, 이 업체가 수년간 수원시로부터 10억원대에 달하는 조경공사를 수의계약을 통해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혀내 보도했다. 최근 들어 공사 수주실적이 떨어지자 뇌물을 전달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또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해당 고위 간부 외에 8명의 공직자가 설 명절 전 이 업자로부터 갈비세트를 받았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경찰은 비위사실이 드러난 이들 8명에 대해서는 조만간 기관통보키로 했다. 이 밖에 지난 4년간의 수의계약 과정에서 업체대표공무원들에게 또 다른 뇌물을 건넸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경찰이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면서 수원시의 '떡값'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가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자 수원시 공직사회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상외로 사건이 커졌다는 분위기다. 특히 경찰 수사로 또 다른 뇌물사건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온통 경찰수사와 언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이번 사태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자진 신고자와 고발자를 상대로 한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자진 신고한 공무원에게는 "돈을 돌려주면 될 것을 신고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자진 신고 여파로 고초를 겪을 부하직원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냐"는 내부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경찰에 고발한 감사담당관실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공명심으로 일을 키워 수원시청을 비리 집단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실제 자진 신고한 공무원은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분위기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고, 감사담당관실 또한 내부로부터 많은 비난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어찌 대처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정작 염태영 시장의 생각은 단호했다. 그는 "경찰 고발과 보도자료 배포는 (제가)지시했다"고 말했다. 없던 일로 하고 덮고 가기에는 금액이 너무 컸다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공무원과 업자간의 관행화된 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염 시장은 "고발로 인해 시의 다른 공직자들이 다칠 수도 있고 시청 내부가 비리의 온상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민선 5기 출범부터 청렴을 강조해 온 그는, 지금 당장은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을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이 환골탈태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예전 친분 있는 한 부장검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간혹 검사들이 뇌물사건으로 구속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검사가 법을 몰라서가 아니란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받아 온 작은 선물이 어느 순간 커져 뇌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도 놀라지만 이미 때는 늦어 결국 이것이 문제가 돼 구속이라는 불행을 맞기도 한다는 것이다. 뇌물의 정의와 법적 처벌수위를 몰라서가 아니라 순간의 모럴해저드가 빚어낸 불행이란 것이다. 아무리 작은 모럴해저드라도 청렴과 정직으로 수십년간 쌓아온 한 공직자의 인생을 일순간 무너뜨릴 수 있다. 수원시장은 지금 수원 공직사회에 보이지 않게 만연해 있는 이 모럴해저드와의 전쟁을 치르겠다는 심산이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지만 염 시장의 읍참마속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