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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 담장없는 ‘유럽형’ 단지

과천에 담장없는 ‘유럽형’ 단지

[중앙일보] 입력 2020.03.24 00:03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미니 신도시’로 추진 중인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구(약 7200가구)에서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블록을 잘게 쪼개고 그 주변을 2차로의 공공도로가 둘러싸는 방식이다. 블록이 작아지는 만큼 다른 신도시처럼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많은 편의시설이 한꺼번에 들어설 수 없게 된다. 대신 블록 간에 편의시설을 공유해 주민들이 교류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12월 개발계획을 발표한 과천지구는 과천시 과천·주암·막계동 일원에 155만5000㎡ 규모로 조성된다.

LH, 3기 신도시 7200가구 첫 시도

작은 블록 쪼개 ㄷ자형 아파트 건설

둘레엔 공공이 도로 만들고 관리

길가에 공원·도서관 둬 접근 쉽게

1973년 준공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된 서울 반포주공1단지 전경. [중앙포토]

LH 등은 과천지구의 도시건축 통합 마스터플랜 공모전을 열고 최근 당선작을 뽑았다. 최우수작에는 시아플랜 컨소시엄(시아플랜·인토엔지니어링도시·동현건축사사무소와 어반플랫폼)의 설계안인 ‘보이드 앤드 멀티플’이 선정됐다. LH는 이 당선작을 토대로 토지이용·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12월께 신혼희망타운 1200가구부터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목표다.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시의 LH 경기본부 대회의실에선 합동 보고회가 열렸다. 총괄협의체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토부·LH와 사업시행자인 과천도시공사·경기도·경기도시공사 관계자들이 모여 “생전 처음 보는 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내년 말에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할 계획인 과천지구 신혼희망타운 투시도. [사진 LH]

과천지구 당선작은 블록을 작게 쪼개는 도시계획을 제안했다. 100가구가 들어서는 가장 작은 세포 블록은 가로 80m, 세로 60m 규모다. 이 블록 두 개를 모으면 가장 기본적인 공급 단위가 된다. 과천지구의 총괄건축가를 맡은 강동완 동현 대표는 “간선도로를 제외한 도로는 모두 2차로로 계획했다”며 “세포 블록 안은 ‘ㄷ자형’으로 중정형(정원이 가운데 있는 형태) 아파트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지 안에만 있던 커뮤니티 시설(주민편의시설)이 길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도록 유도했다”며 “유럽처럼 모든 아파트가 걷기 좋은 길에 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과천지구에선 어느 집이든 100m 정도만 걸어나가면 공원·도서관·문화시설 등을 만날 수 있다. LH가 조성하고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공간이다. 강 대표는 “기존 도시에선 공원·학교와 같은 공공공간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이런 것을 한데 모으는 집적 효과로 열린 공간이 더 커지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과천지구 중정형 아파트는 평균 6~8층이다. 도시 북쪽 양재천변을 따라가면 25층가량의 타워도 있다. 상업·업무지구에는 최고 40층의 주상복합 아파트도 허용한다. 구역마다 도로를 중심으로 어떻게 건물을 배치할 것인지, 건물의 모습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세부 가이드라인을 담았다.

 

3기 신도시 과천지구 전체 조감도. [사진 LH]

지금까지 아파트 단지는 가장 쉽고 싸게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압축 성장 시대에는 도심으로 사람이 몰려 주택난이 심각했다. 당시 정부는 주택건설에 앞서 도시 기반시설에 투자할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국·공유지를 민간에 팔아 아파트 단지 조성을 맡겼다. 정부가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는 간선도로를 만들면 민간에서 편의시설을 갖춘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건설업체 입장에선 싼값에 땅을 사서 아파트를 분양하면 사람들이 몰려오니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었다.

 

서울 강남 개발에 이어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위례·판교 등 2기 신도시가 이런 방식으로 개발됐다. 과천지구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국가건축정책위원)는 “그동안 아파트 단지 안은 민간이 경쟁적으로 투자해 가꾸고 단지 밖은 열악한 상태로 방치했다”며 “반면 선진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 기반시설에 공공투자를 엄청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다른 도시 공간을 갖게 된 이유”라고 진단했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몇만 가구를 짓는 식의 양적 공급보다 이제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지 질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다. 과천지구가 그 첫발을 뗀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신도시에선 아파트 단지 한 변의 길이가 200~400m다. 단지 안쪽 길은 공공도로가 아니라 입주민의 땅인 ‘사도로’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나도 도로교통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길이다. 과천지구에는 단지 안 사도로가 없다. 대신 공공도로가 아파트 블록을 둘러싸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일이 많아진다. 예컨대 내 집 앞 도로의 가로등이 고장 나면 기존 아파트에선 관리사무소가 고쳐야 하지만 과천지구에선 지자체가 관리한다.

 

LH는 수원당수2(68만㎡)와 안산신길2(74만5000㎡) 지구도 과천지구와 같은 방식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대단지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지난 20일 합동 보고회에선 “향후 주택을 공급할 때 유연성이 떨어질 것 같다”, “도시에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있어야 하는데 길도 좁고 미로 같아 목적지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같은 문제 제기도 있었다

 

관련 법령도 바꿔야 한다. 주택법 시행령에는 블록당 관리사무소와 부대시설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대단지 아파트에선 한 블록 안에서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이 작은 과천지구에선 맞지 않는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아파트를 혁신하겠다며 설계 공모전도 많이 했지만 대단지라는 틀은 똑같았다”며 “과천지구는 반세기 동안 반복해온 주택 공급의 틀을 바꾸는 첫 시도”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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