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없는 초강력 부동산 대책… 무주택·1주택 서민·중산층 '혼란' [밀착취재]
입력 : 2019-12-20 06:00:00 수정 : 2019-12-20 11: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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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강남 학군 이동 실수요자 문의 쇄도… 중산층까지 불똥” / 대출문의 고객 상당수 3040 세대 / 생활기반 서울인 무주택·1주택자 / 서울 아파트 중위 지역 9억 육박 / 사실상 서울권 대부분 지역 규제 / 집 한 채가 노후 대책인 퇴직자들 / 강남·마용성 사는 사람 죄인 취급
정부가 지난 16일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전격 발표한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들이 게시돼 있다. 남정탁 기자
“대출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규제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19일 서울 용산구의 A시중은행 창구는 이런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서울을 중심으로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지난 16일 세제와 대출, 청약제도, 주택 보유·거주기간 등을 망라한 초고강도의 부동산 대책을 기습적으로 발표한 직후 이어진 풍경이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출 문의를 하는 고객의 상당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무주택자나 1주택 거주자였다. A은행 창구 직원은 “자녀교육 등을 위해 대출을 받아 강남 등 학군 좋은 지역으로 이사가려던 실수요자들의 문의가 많다”며 “평소 대비 2∼3배 정도로 대출 문의 전화가 몰렸다”고 전했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 대책이 1주택자에게도 적용되면서 생활기반인 서울에 살며 내집마련을 꿈꾸는 무주택 서민이나 대출을 끼고 어렵게 집 한 채를 마련한 중산층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사거나 선호하는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게 어려워진 데다 그렇게 집 한 채를 장만하더라도 대출 이자에다 보유세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 대책이 되레 ‘현금부자’들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날 회원 수 88만명의 대형 온라인 부동산카페에도 최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비난하는 글이 잇따랐다. 전날 국회에서 열린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협의회 자리에서 서울지역 의원을 중심으로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목소리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1월 6일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대출 끼고 집 한 채 장만하려던 무주택·1주택 서민·중산층 이중고
이날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지역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8014만원으로 12·16대책의 기준선인 9억원에 육박한다. 10억원을 훨씬 넘는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를 포함해 서울의 한강 이남지역 11개 자치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억3386만원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상당수가 기존 40%에서 20%로 강화된 LTV(주택담보대출비율·시가 9억원 이상 15억원 미만) 규제를 받는 셈이다. 시가 15억원 초과 주택은 아예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다.
서울 한 은행의 대출 상담 창구. 뉴시스
전날 강북의 집을 팔고 강남구로 이사가려는 고객의 문의를 받았다는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서울지역에서 30∼40평대 9억원 이하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교통이나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곳들”이라며 “(특히 자녀를 둔 무주택자나 1주택자 중산층 가정 중) 환경이 더 나은 쪽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의욕을 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에 전세 살면서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직장인 이모(42)씨는 “신규 분양은 ‘로또’처럼 된 데다 우리의 청약가점으론 어림도 없다”며 “모아놓은 돈에다 대출을 받아 원하는 지역에 집을 사려 했는데 이번 조치로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11월 서울지역 분양 청약경쟁률은 67.49대 1로 829가구 공급 물량에 청약자 5만5952명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투기 잡으려다 선의 피해자 양산할 수도” 우려 목소리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인상과 보유세(재산세+종부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현실화도 해당되는 1주택자에겐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공시가격 9억원 이상의 1주택자 보유세는 전년 세금의 1.5배까지 급등해 내년부터 서울 강남권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에서는 보유세가 50% 넘게 오른 단지가 속출할 전망이다.
이날 신한은행에 따르면 강남3구 지역 공시가격 9억원 이상 1주택자의 보유세(세액공제 미적용 기준)는 전년도 대비 45%(250만∼600만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포구에 전용면적 130㎡의 아파트 한 채만 소유한 B(50)씨는 “현재 보유세로 약 300만원을 내고 있다”며 “은퇴하면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세금만 늘어 걱정”이라고 한숨 쉬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정책 관련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 중에서도 이번 12·16대책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당분간 진정시키겠지만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에 턱없이 못 미치는 공급문제 해소방안이 미흡해 애꿎은 서민·중산층 실수요자만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투기를 잡으려던 정책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했고, 시중은행 부동산팀 관계자도 “평생 마련한 집 한 채로 노후를 대비하려는 사람들에게도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염유섭·안승진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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