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영원하다”…건물주의 나라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8.01.20
“야 이놈들아! 재판 열심히 하거라!”
높이 솟은 서초동 17층 건물 옥상 위에 선 한 건물주가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그는 “저런 먹물(판사)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우리 밑으로 들어오는 게 이 세상의 구조”라고 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갓(God)물주’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은 초등학생조차 임대업자를 꿈꾸는 세상이 되고 있다. 수백억 원대의 고층빌딩을 사들인 연예인 보도가 줄줄이 쏟아지고, 연예인이 소유한 건물이 ‘토크’의 소재가 된다.
2018년 오늘, 최저시급이 지난해 6470원에서 7530원(16.4%)으로 올라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이 다 죽어나가게 생겼다”는 외침이 가득하다. 하지만 최저시급으로 10시간을 일해도 버거킹 와퍼세트조차 사먹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중소자영업자들은 턱 밑까지 차오른 물 속에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갔는데 이제 숨구멍까지 막으려 한다는 불만을 터트린다. 그 밑에서 일하는 시급노동자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거대한 건물주의 세상에서 을(乙)과 을(乙)이 싸우는 동안 건물주들은 매달 수백만~수천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꼬박꼬박 받아 챙기고 있다.
최고위 과정은 임대정보의 장
혹자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건물주가 된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기광풍이 불기 시작하던 1980년대 초 이미 5%의 소수가 대한민국 국토 전체 주택대지의 60%를 소유하고 있었다. 참여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 부동산 개발규제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2014년 가액 기준으로 개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0%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64.7%를 차지하게 됐다. 법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소유하고 있다.
돈 있는 소수가 절대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기이한 구조는 노동의 대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서울 강남 일대에만 5층 이상의 건물 3채를 소유하고 있는 한 건물주는 “건물 한 채만 대박나면 나머지 건물들은 대출을 통해 계속 사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하는 은행 대출을 받아 건물을 매입해도, 나머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 수익만으로 대출이자를 갚고도 남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건물주에게 임대사업은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라고 했다.
정부는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부동산시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강남은 지금도 재개발·재건축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강남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강남 대성학원이 이전해온 이후 주변 (건물) 시세가 더 올랐고 지금까지 떨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남 대성학원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는 고층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건물주들은 정부의 부동산투기 근절대책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강남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동에 건물 2채, 그리고 다른 동에 건물 3채, 또 다른 동에 상가건물 3채를 소유한 건물주 ㄱ씨는 “부동산 가진 사람들은 정부 발표에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해 8·2대책을 내놓았지만 건물주들은 여전히 활발히 건물을 사고 팔고 있다. ㄱ씨는 “우리는 금리와 우리들끼리의 룰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했다.
실제 수백억~수천억원대의 부동산과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들은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자체적으로 부동산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종의 ‘담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대학의 최고위(CEO)과정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고위과정은 소위 가진 자들이 가장 손쉽게 인맥을 구축할 수 있는 자리다. 서울대, 연·고대 등 소위 SKY라인의 유명 최고위과정은 한 해 배출되는 동문 숫자만 수백 명이다. 이곳에는 각계각층의 지식인들과 기업인, 정치인, 공무원, 법조인까지 다양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인다. 특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가들은 적어도 1~2개 이상의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수료한다. 그러나 모든 최고위과정이 정보공유의 장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을(乙)의 몫
<주간경향> 취재 결과 최고위과정 내에서도 소수만 모이는 제2의 최고위가 존재했다. 명칭은 ‘사단법인 OO 최고위과정’이지만 실제로는 돈(학비)을 내고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 시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가입도 통상의 대학 최고위과정과 달리 본인이 가입하고 싶다고 해서 가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기존 회원의 초대가 필요하다. 학비는 6개월에 1000만~2000만원 선이다. 이 돈은 강연자 섭외비, 장소 섭외비, 골프여행비 등으로 쓰인다. 그 외에 들어가는 비용은 건물주나 기업인이 갹출한다. ㄴ최고위 관계자는 “1년에 2000만~4000만원이면 비싼 건 아니다”라며 “일단 여기에 들어오기만 하면 서로 윈·윈(win·win)해서 돈을 따갈 수 있고, 적어도 본전은 뽑아 간다”고 설명했다. 소수 최고위과정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유명 중견연예인부터 법조인, 전·현직 정치인들이다. 경찰은 경찰서장급 이상부터 가입이 가능하다. 이들은 가입비가 전액 무료다. 업계에서는 장학생으로 불린다. 관계자는 “이 사람들은 ‘얼굴마담’”이라며 “임대업자들을 비롯해 정보를 노리고 오는 사람들은 ‘여기 최고위에 누가 가입했다더라’는 정보를 듣고 들어오려 애쓴다”고 말했다. 소위 돈만 있고 ‘권력’이 없는 건물주들은 일종의 물주 역할을 한다. 회비 납부에서부터 각종 식사비 등을 지원한다. 대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간다. 한 건물주는 “이곳에서 들은 정보로 송파에 건물을 엄청 사서 송파에서만 몇백억 원을 벌었다”고 자랑했다.
이곳에서는 정부의 정책과 반대되는 자체적인 정책 결정도 이뤄진다. ‘정부에서 부동산대책을 마련해도 어느 부분에서는 허점이 있으니 그 부분을 노려 투자를 하라’, ‘이 지역은 장기투자를 노려야 하는 곳이다’ 등의 정보가 오가는 것이다. 수업은 통상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 장소는 주로 호텔을 장기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ㄴ최고위과정 관계자는 “오후 7~9시까지 수업을 듣고 나면 뒤풀이를 가는데 여기서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고 말했다. 건물주들은 이곳에서 신규 투자지역 정보를 얻는다. 또 다른 ㄷ최고위과정 관계자는 “임대업자(건물주)들의 정보공유도 많이 이뤄진다”며 “(최고위과정은) 돈 벌려고 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명 중견기업이나 강소기업 오너들이 ‘부동산투자에 관심이 있다’면서 건물주들에게 먼저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며 “함께 땅을 보러 다니면서 부동산투자 장소를 물색하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 복합쇼핑몰 대표에서부터 건축가, 유명 의류회사 회장, 유명 정치인의 친인척 등 다양한 사람들이 최고위과정 명단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을 가볍게 무시한다.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부동산대책을 내놓아도 이미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재력으로 ‘버티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 일부 최고위과정의 모임에서는 현 대통령을 ‘얼굴마담’ ‘연예인’으로 표현하며 정부의 정책을 비웃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ㄷ최고위에 속해 있는 한 건물주는 “문재인 정권이 만 2년만 지나면 힘이 완전히 빠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물주는 “정권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영원하다”고 했다.
건물주의 정보공유·정책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상인들에게 돌아간다. 건물주는 자신이 정보를 얻는 데 들어간 비용을 고스란히 상인들에게 넘긴다. 시세담합이다. 강남의 한 건물주는 “인근에 유동인구가 늘어날 만한 요인이 생긴다는 정보를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시장가격이 형성된다”며 “그 가격에 맞춰 임대료를 올린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부동산 중개업소까지 합세한다. 건물주와 중개업자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역삼동의 한 기업형 부동산중개업소는 신입직원 교육 시점부터 이 같은 역할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퇴사한 ㄹ씨는 “직원들의 주요 업무가 건물주를 만나 지속적으로 각종 편의와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즉 ▲주요 빌딩의 건물주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상가임대료를 올려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고정 고객을 만드는 방식이다. 중개업소는 그 대가로 거액의 중개수수료를 얻는다. 법정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매매가액(환산보증금)의 0.9%다. 보증금 2억원에 월세 200만원짜리 점포 계약을 성사할 경우 중개업자는 720만원(임대인·임차인)의 중개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상인보호대책, 현실에서는 ‘갸우뚱’
상인들은 “임대료가 오르는 경우는 있어도 내리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및 시행령은 임대료(차임) 등 증액청구 기준을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건물주 마음이다. 강남지역 건물의 경우 매 2년마다 임대료를 갱신하는 것이 관행이다. 강남역 CGV 영화관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CGV 뒤편 카페거리 쪽에는 1년마다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주도 어림잡아 3~4명 된다”면서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려고 하면 임차인은 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임대료를 올려줄 수 없으면 퇴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권리금 보호 역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이지만 건물주가 즉각 퇴거를 요구하거나, 재건축에 걸려 강제퇴거하거나, 경매에 넘어가게 될 경우에는 한푼도 받을 수 없다. 실제 강남역 인근의 한 중국집은 권리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가게를 정리했다. 건물주가 제시한 임대료를 낼 수 없는 데다 높은 임대료로 후임까지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건물 1층은 현재까지 공실 상태다. 결국 상가임대차보호법의 6가지 주요 내용인 ▲임차인 대항력 부여 ▲존속기간 보장 ▲월세보증금 증액 제한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우선변제권 인정 ▲임차권등기명령제도 중 어느 것도 현실에서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임차인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지켜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법은 멀고 건물주는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살펴보면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현행 9%에서 5%로 낮추고, 임대차보호법 보호대상 기준이 되는 환산보증금(보증금에 월 임대료의 100배를 합산한 금액)기준을 높여(서울 4억원 이하→6억1000만원 이하, 수도권 3억원 이하→5억원 이하, 광역시 등 2억4000만원 이하→3억9000만원 이하, 나머지 지역 1억8000만원 이하→2억7000만원 이하) 임대차보호법 보호 대상 폭을 현재 60~70%에서 90% 수준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소위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강남대로, 청담, 압구정동, 명동, 혜화동의 2015년 평균 환산보증금은 이미 6억1000만원을 넘어선 7억9738만원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서울시 2015 상가임대정보 및 권리금 실태조사 참고). 2018년 현재 해당 지역의 환산보증금은 3년 전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기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은 지금도 상인들이 개정 환산보증금 이상의 임대료를 내며 영업을 한다”며 “상가임대차법이 임차인 보호에 충실하려면 환산보증금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현장에 나가보면 건물주가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고, 임차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건물을 팔아버리는 사례도 있다”며 “단순히 시행령 개정으로 끝낼 게 아니라 각 지자체별로 과도한 임대료 인상 등에 대한 신고제도를 운영하는 등 강력한 시행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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