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사 품은 서민의 삶터… 교통·상업 거점으로 발돋움 -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1) 수원역, 과거와 현재
최호진 2017년 09월 15일 금요일
경기도 수원시, 근대의 모습은 어땠을까? 커다란 민자역사에서 내리면 차량으로 복잡한 역 앞의 풍경, 혹은 지하도를 통해 목적지를 향해 간다. 1896년에 경기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고, 1949년에 수원시로 승격되었다. 수원의 근대는 철도의 역사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수원화성이 모든 생활의 중심지였으나, 이제는 교통의 중심이 되는 수원역 주변이 핵심 상업 지역으로 남아있다. 이 안에서 가까운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로 한다.
1972년 3월 31일에는 수여선이 폐선되었고, 1974년 8월 15일에는 서울-수원간 수도권 전철이 운행을 시작했다. 1975년 12월 31일에는 전철 역사가 준공하며 전철과 함께 경부선 새마을호과 무궁화호가 정차하게 된다. 1996년 1월 1일 수인선이 폐선되어 영업을 중지하고 협궤역사를 폐쇄하였다. 2003년 2월에는 수원민자역사를 준공하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2003년 4월 30일 수도권 전철이 연장(수원~병점 간) 개통되었고, 2013년에는 분당선 망포~수원 구간이 11월 30일 완전 개통되었다. 2018년에는 분당선과 수인선이 직결하여 운영되며, 서울 왕십리역부터 인천역까지 하나의 노선으로 운행이 될 예정에 있다.
경부선 수원역과 함께 수원에서 중요한 노선이 수여선과 수인선이었다. 수인선은 인천광역시 송도와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선으로 총길이 57km이다. 본래 경기만의 소래, 남동, 군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하여 1935년 9월 23일에 착공하여 1937년 8월 6일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의 사설철도로 건설되었으나, 해방 후 국유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여선(수원-여주간 철도, 1972년 폐선)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염전지대의 물량확대와 교통의 편리성 요구가 증대되자 이용객과 화물이 줄어들어 경제성이 크게 낮아졌다. 1973년 11월 종착역이던 남인천역이 폐쇄되고 1977년 화물수송이 중단되었으며, 1995년에는 여객운송을 중단하고 폐선하게 되었다.
사라진 수인선 일부 구간은 수인선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항공사진 등으로 보면 수인선과 수여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수인선이 있을 때에는 송도로 놀러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수원역에서 인천으로 향하며 큰 곡선을 그리며 협궤열차가 움직일 때에는 속도가 많이 줄어 등하교 학생들이 올라타기도 했다는 기억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수원 철도역사에서 선로 외에 남아있는 중요한 시설물로 급수탑이 있다. 철도역사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로 1967년 8월 31일까지 증기기관차의 운행이 종료되면서 급수탑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전국에 남아 있는 철도용 급수탑은 약 20여기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남아있는 급수탑 일부는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철도역사 급수탑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지어졌으며 주변에는 물을 쉽게 공급하기 위하여 물을 저장해 놓을 수 있는 연못이나 저수조가 있었다.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역 바깥으로 두 개의 급수탑이 보인다. 회색의 콘크리트 급수탑과 붉은색의 벽돌 급수탑이다. 이 두 개의 급수탑은 한국철도공사 지정 철도문화재 준철도기념물 제11-시-02-14호와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작은 급수탑은 수원역 협궤급수탑으로 수인선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수인선이 폐선되었지만 남아있다.
수원역과 상권, 시장
수원에는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수원 화성 북문(문안)장, 남문(문밖)장, 오산장이 있었다. 수원 남문 밖의 장은 현재의 영동시장으로 알려져 있고, 북문 밖의 장은 위치가 불명확하나 19세기 중후반에 소멸하였고, 1904년에는 새롭게 성안장이 생겨났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개통한 경부선이 수원을 지나가고, 1930년 개통한 수여선, 1937년 개통한 수인선이 수원역을 기점으로 하면서, 서해안의 소금과 해산물과 여주 일대의 쌀이 수원을 경유하게 된다. 철도의 건설은 수원을 물류와 경제의 중심으로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1911년부터는 신작로 개설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져 우마차의 사용도 많아져, 수원장과 오산장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하지만 물류 일부가 안성에서 수원을 거치지 않고 평택으로 빠져나가고, 수여선의 연결과 육로 운송의 발달로 수원은 물류 집산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화성의 오래된 장은 경부선 수원역이 생기면서 상권이 역 쪽으로 이동하였으며, 역전의 상권은 주로 일본인들이 장악하였다고 한다.
법령에서 인정하는 재래시장은 대부분 2000년대에 들어서 그 숫자가 증가했다. 경부선 개통 이후 수원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전개되어 현재의 상업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시장이 팔달구에 집중되었고 팔달문에서 수원역을 연결하는 지역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 수원천변 영동시장은 수원시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시장은 빈번한 화재를 겪으면서도, 재건축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수축산물, 공산품을 주로 취급하는 수원역전시장은 1969년, 매산시장은 2011년 등록 되었다. 매산시장은 2011년 1월 수원시 인정시장으로 등록되었으나 수원시에서는 영동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설치된 상설시장으로, 복개천이 흐르던 곳에 노점상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현재의 시장이 이루어졌다. 매산시장은 1949년 설립되었으나, 기록을 통해 영업을 개시한 것은 그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수원역의 동남쪽을 가로지르는 도시 구조의 형태도 유지하고 있는 매산시장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 등에 점차 그 자리를 내주고 있으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상인들의 노력이 더해져 이제는 중국과 동남아권의 음식점들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수원역 북서쪽은 재래시장과는 달리 로데오거리로 불리며 소비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원역부터 도청오거리까지 향교로와 연결되는 이 거리는 팔달문 중심의 상권과는 달리 수원역 중심의 상권으로 자리잡았으나, 옛 흔적을 가지고 있는 건축문화유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로데오거리의 북쪽은 상권 이면의 유흥과 숙박시설이 자리하며, 중국 음식점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수원역은 근대도시의 상징인 철도역으로 시작하여, 교통, 상업의 거점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는 수원역 주변으로 대형 건축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으며, 인근 지역으로도 대규모의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안에 남아있는 근대도시로서의 수원의 흔적들을 잘 남겨, 한 세기를 겪어 온 시민들의 삶터의 의미와 현재 가치를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자료참고 : 철도산업정보센터, 수원시사, 수원시
최호진 지음건축도시연구소 소장
철도의 역사와 수원역
우리나라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간 경인선 33.2km 구간을 임시 개통하면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세기 말 개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우리 정부는 민족 자본으로 철도 건설을 시도하였으나 자금난 등으로 어렵게 되자, 1896년 3월 미국인 모스에게 경인철도의 부설권을 주게 되었다. 하지만 모스 또한 1897년 경인선을 기공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마치지 못하고, 일본에게 1898년 철도부설권을 매도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일본인에 의해 개통되었다.
1899년 경인선 건설 이후,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31년 장항선, 1942년 중앙선이 개통하여 철도망이 갖춰졌으나, 해방과 전쟁 이후 국토가 분단되며 철로 또한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수원역은 현재 기차와 수도권 전철이 다니는 역으로 화서역과 세류역 사이에 있으며,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하며 보통 기차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30년 12월 1일에는 수여선(수원~여주 간)이 개통되었고, 1937년 8월 6일에는 수인선(수원~인천 간)이 개통되었다. 경부선 초기의 역사는 한옥의 형태로 새로 지어져 사용되었다. 해방과 전쟁 이후, 이 역사 또한 1961년 새로운 역사가 신축되어 사라졌다.
▲ 1920년대 수원역사 |
1972년 3월 31일에는 수여선이 폐선되었고, 1974년 8월 15일에는 서울-수원간 수도권 전철이 운행을 시작했다. 1975년 12월 31일에는 전철 역사가 준공하며 전철과 함께 경부선 새마을호과 무궁화호가 정차하게 된다. 1996년 1월 1일 수인선이 폐선되어 영업을 중지하고 협궤역사를 폐쇄하였다. 2003년 2월에는 수원민자역사를 준공하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2003년 4월 30일 수도권 전철이 연장(수원~병점 간) 개통되었고, 2013년에는 분당선 망포~수원 구간이 11월 30일 완전 개통되었다. 2018년에는 분당선과 수인선이 직결하여 운영되며, 서울 왕십리역부터 인천역까지 하나의 노선으로 운행이 될 예정에 있다.
경부선 수원역과 함께 수원에서 중요한 노선이 수여선과 수인선이었다. 수인선은 인천광역시 송도와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선으로 총길이 57km이다. 본래 경기만의 소래, 남동, 군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하여 1935년 9월 23일에 착공하여 1937년 8월 6일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의 사설철도로 건설되었으나, 해방 후 국유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여선(수원-여주간 철도, 1972년 폐선)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염전지대의 물량확대와 교통의 편리성 요구가 증대되자 이용객과 화물이 줄어들어 경제성이 크게 낮아졌다. 1973년 11월 종착역이던 남인천역이 폐쇄되고 1977년 화물수송이 중단되었으며, 1995년에는 여객운송을 중단하고 폐선하게 되었다.
▲ 1995년 마지막으로 운행한 수인선 협객열차 |
사라진 수인선 일부 구간은 수인선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항공사진 등으로 보면 수인선과 수여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수인선이 있을 때에는 송도로 놀러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수원역에서 인천으로 향하며 큰 곡선을 그리며 협궤열차가 움직일 때에는 속도가 많이 줄어 등하교 학생들이 올라타기도 했다는 기억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 수인선 세류공원의 모습 |
수원 철도역사에서 선로 외에 남아있는 중요한 시설물로 급수탑이 있다. 철도역사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로 1967년 8월 31일까지 증기기관차의 운행이 종료되면서 급수탑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전국에 남아 있는 철도용 급수탑은 약 20여기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남아있는 급수탑 일부는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철도역사 급수탑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지어졌으며 주변에는 물을 쉽게 공급하기 위하여 물을 저장해 놓을 수 있는 연못이나 저수조가 있었다.
▲ 1960년대 수원역 급수탑과 세류동 도로 |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역 바깥으로 두 개의 급수탑이 보인다. 회색의 콘크리트 급수탑과 붉은색의 벽돌 급수탑이다. 이 두 개의 급수탑은 한국철도공사 지정 철도문화재 준철도기념물 제11-시-02-14호와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작은 급수탑은 수원역 협궤급수탑으로 수인선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수인선이 폐선되었지만 남아있다.
▲ 남아있는 수원역 급수탑 2개 |
수원역과 상권, 시장
수원에는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수원 화성 북문(문안)장, 남문(문밖)장, 오산장이 있었다. 수원 남문 밖의 장은 현재의 영동시장으로 알려져 있고, 북문 밖의 장은 위치가 불명확하나 19세기 중후반에 소멸하였고, 1904년에는 새롭게 성안장이 생겨났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개통한 경부선이 수원을 지나가고, 1930년 개통한 수여선, 1937년 개통한 수인선이 수원역을 기점으로 하면서, 서해안의 소금과 해산물과 여주 일대의 쌀이 수원을 경유하게 된다. 철도의 건설은 수원을 물류와 경제의 중심으로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1911년부터는 신작로 개설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져 우마차의 사용도 많아져, 수원장과 오산장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하지만 물류 일부가 안성에서 수원을 거치지 않고 평택으로 빠져나가고, 수여선의 연결과 육로 운송의 발달로 수원은 물류 집산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화성의 오래된 장은 경부선 수원역이 생기면서 상권이 역 쪽으로 이동하였으며, 역전의 상권은 주로 일본인들이 장악하였다고 한다.
법령에서 인정하는 재래시장은 대부분 2000년대에 들어서 그 숫자가 증가했다. 경부선 개통 이후 수원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전개되어 현재의 상업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시장이 팔달구에 집중되었고 팔달문에서 수원역을 연결하는 지역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 수원천변 영동시장은 수원시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시장은 빈번한 화재를 겪으면서도, 재건축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수축산물, 공산품을 주로 취급하는 수원역전시장은 1969년, 매산시장은 2011년 등록 되었다. 매산시장은 2011년 1월 수원시 인정시장으로 등록되었으나 수원시에서는 영동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설치된 상설시장으로, 복개천이 흐르던 곳에 노점상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현재의 시장이 이루어졌다. 매산시장은 1949년 설립되었으나, 기록을 통해 영업을 개시한 것은 그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수원역의 동남쪽을 가로지르는 도시 구조의 형태도 유지하고 있는 매산시장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 등에 점차 그 자리를 내주고 있으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상인들의 노력이 더해져 이제는 중국과 동남아권의 음식점들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1950년대 매산시장 |
▲ 매산시장과 역전시장이 있는 시장 거리 |
수원역 북서쪽은 재래시장과는 달리 로데오거리로 불리며 소비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원역부터 도청오거리까지 향교로와 연결되는 이 거리는 팔달문 중심의 상권과는 달리 수원역 중심의 상권으로 자리잡았으나, 옛 흔적을 가지고 있는 건축문화유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로데오거리의 북쪽은 상권 이면의 유흥과 숙박시설이 자리하며, 중국 음식점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 옛 흔적을 찾기 어려운 수원 로데오거리 |
수원역은 근대도시의 상징인 철도역으로 시작하여, 교통, 상업의 거점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는 수원역 주변으로 대형 건축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으며, 인근 지역으로도 대규모의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안에 남아있는 근대도시로서의 수원의 흔적들을 잘 남겨, 한 세기를 겪어 온 시민들의 삶터의 의미와 현재 가치를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자료참고 : 철도산업정보센터, 수원시사, 수원시
최호진 지음건축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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