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퍼스펙티브] “부동산은 이념이 아닙니다”
[출처: 중앙일보] [이정재의 퍼스펙티브] “부동산은 이념이 아닙니다”
정책은 대개 시장과 교감할 때 성공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8·2 부동산 대책은 낙제점에 가깝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시장 예상의 딱 두 배를 했다”고 말했다. 정부 의지를 강조한 얘기겠지만 듣기에 따라 ‘시장과의 불통’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과거 정부처럼) 부동산으로 경기 부양하지 않겠다”며 전의를 다졌다. 시장이 얼어붙든 말든, 선의의 2주택자가 피해를 좀 보든 말든, 부작용을 무릅쓰고 투기 잡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다주택자=부자=투기꾼’ 겨눈
8·2 부동산 대책 진짜 타깃은
‘강남 불패, 부동산 불패’ 신화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 쫓는
조지스트에게
“종부세는 정의로운 세금”
13인의 부동산 전문가 조언
“정부, 경제 상황 고려보다
부동산 정의 세우기 우선
다주택자 집 빨리 파시라”
더 두고 봐야겠지만 8·2 대책의 효과는 정부 기대에 못 미칠 조짐이다. 새 아파트 청약 열기는 좀체 식지 않고 있고, 강남의 초고가 재건축 아파트는 급매물이 쏟아지기는커녕 아예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5년 버티기’ 채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성남·동탄 등 비규제 지역으로의 풍선 효과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거래 절벽 조짐도 보인다. 그렇다고 정부가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되레 더 센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8·2 대책이 듣지 않으면) 주머니 속에 다른 대책이 많이 있다”고 했다.
13명의 부동산 전문가에게 물었다. 과연 문 대통령 주머니 속 남은 대책은 뭘까. 13명 전원이 ‘보유세 강화’를 꼽았다. 집에 물리는 세금을 더 늘린다는 얘기다. 방식은? “재산세보다는 종합부동산세”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보유세를 올리려면 종부세가 가장 쉽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세는 모든 국민에 해당된다.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반면 종부세는 사실상 부유세다. 유명무실해졌지만 아직 명맥을 잇고 있다. 세율과 과표 적용률을 더 높이면 다주택자에겐 무거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산세는 흔히 ‘장바구니세’로 불린다. 돈을 벌든 못 벌든, 수입이 있든 없든 때가 되면 꼬박꼬박 내야 하는 세금이다. 집을 팔아 생긴 이득에서 한 번만 세금을 내는 양도소득세와는 달리 조세 저항이 크다. 종부세도 크게 보면 재산세에 가깝지만 성격은 좀 다르다. 특정 부류에만 걷는다. 다주택·고가주택 보유자다. 이 정부의 ‘부자 증세’ 기조와도 잘 맞는다. 관건은 여론과 명분이다. “시장과 전쟁을 벌이다 집값만 올려놓고 말았다”는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트라우마’도 극복해야 한다.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인 문재인 정부라지만 우격다짐으로 종부세를 되살리기엔 부담이 크다. 시장에선 그럼에도 종부세의 부활을 기정사실화화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의 뒤편에 ‘종부세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있다. 김수현은 노무현의 종부세를 문재인으로 잇는 연결고리다.
김수현은 스스로 종부세=부유세라고 규정한다. 그는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에 대해 위헌·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리자 한 토론회에서 “종부세는 부유세라는 표현이 솔직할 것 같다”고 했다. 당시 그는 종부세의 사망선고에 대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되레 전의를 다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종부세의 명맥을 지키는 것과 별도로) 보유세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얻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종부세가 ‘정의로운 세금’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종부세에 대한 김수현의 집착과 애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빈부격차·차별시정 기획단(단장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소속으로 종부세의 처음부터 끝을 함께했다. 종부세의 뿌리는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이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모든 악의 근원이 지대(地代)에 있다”고 믿었다. 땅에서 나온 불로소득은 모두 세금으로 거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종부세를 주도한 이정우 실장과 김수현은 헨리 조지에 심취한 이른바 ‘조지스트’였다. 이들이 열변을 토하며 헨리 조지를 웅변하는 바람에 당시 기자들 사이에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그를 겪었던 정부 관리들은 김수현을 ‘부드러운 확신범’으로 기억한다. 종부세에 대한 신념은 이정우 못지않았지만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빡빡했던 이정우 실장에 비해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쪽이었다고 한다. 전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는 “그럼에도 결코 생각의 뿌리가 흔들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런 김수현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공 지지율을 지지대 삼아 종부세를 복권시키겠다는 구상을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수현에게 종부세는 부동산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방아쇠이기도 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가 정치이기도 하다(『부동산은 끝났다』)”고 했다. 김수현은 영국의 예를 들면서 집을 가진 계층은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진보적 성향이 있다고 적었다. 영국 보수당이 자가 소유 촉진책을 편 것도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부동산 정치도 같은 잣대로 쟀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 도입을 위해 공을 들였다면 이명박 정부는 이를 허물기에 급급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임대주택을 연간 10만 호씩 공급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라는 이름으로 분양 주택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고 썼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종부세의 복권이야말로 좌파 부동산 정책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종부세 복권을 통한 보유세 강화는 ‘정의로운 부동산 정책’이라는 좌파 정부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며 “8·2 대책의 성패에 관계없이 이 정부 임기 내에 종부세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8·2 대책은 수순 밟기라는 것이다. 그는 “이 정부의 진짜 타깃은 ‘부동산 불패’ ‘강남 불패’라는 잘못된 신화다. 이걸 깨려면 종부세의 부활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부세의 복권은 그러나 아직은 먼 얘기다.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야 한다. 아직도 종부세=집값 상승 주범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많다. 당시 강남 부자들은 종부세까지 집값에 얹으면서 버텼다. 강남 불패에 대한 믿음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보다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초저금리로 넘치는 돈이 집값 거품을 부추겼다. 수급 조절과 돈줄 조이기로 맥을 끊어야 했는데 실기했다.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참여정부가 끝나는 2년 반만 버티자는 사람들이 계속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다”며 “헌법만큼 바꾸기 어려운 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패했다.
둘째,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애초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도입도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04년 말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보고서에 따르면 종부세 도입 찬성은 49.6%, 반대는 23.9%였다. 압도적으로 찬성이 많았다. 지지율 없이 밀어붙인 세금은 대개 100% 실패한다.
셋째, 비싼 집값과 반(反)부자 정서가 계속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은 ‘집값이 비싸다(93.1%)’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을 때다. 그럴 만했다. 2003년 강남 집값은 14.3%가 올랐다. 분당은 22.4% 급등했다. 2005년 상반기(1~7월)엔 강남 12.4%, 분당 28.9%가 올랐다. 반대로 강북은 1.6% 오르는 데 그쳤다. 강남·분당 등을 제외한 지역에선 배고픔과 배아픔을 동시에 느낄 만했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해 강남 집값은 3.39%가 올랐다. 강북은 2.62%였다. 올 들어 7월까지는 강남 1.73%, 강북 1.45%다. 숫자로만 보면 그때만큼 배고픔이나 배아픔을 느끼기 어렵다. 다만 경제 성장이 그때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가 나눠 먹을 파이는 없다. 나눠 먹을 게 없을수록 배아픔과 부자 증오도 커진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의 집값은 결코 비싸지 않다”고 말한다. 집값의 국제 비교에 쓰이는 ‘소득에 대비한 부동산 가격비율(PIR:Price Income Ratio)’로 따진 서울 집값은 세계 34위다. 심 교수에 따르면 고가 아파트끼리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서울 최고가 아파트는 평당 1억원(한남 더힐)이지만 홍콩은 약 5억5000만원(마운트 니컬슨), 런던은 약 5억원(21 체삼 플레이스), 뉴욕은 약 4억7368만원(1센트럴파크 사우스), 도쿄는 약 2억3890만원(파크코트 아카사카 히노키초 더 타워), 베이징은 약 2억6139만원(타이허 중국정원)이다.
더 큰 걸림돌도 있다. 완벽한 복권을 위해서는 헌재의 9년 전 위헌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세대별 합산 과세나 거액의 세금을 물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13인의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부활’을 점쳤다. 그만큼 정부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을 과학이나 경제가 아니라 이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주택자라면 팔거나 임대사업자 등록을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조언했다.) 새롭게 등장한 골칫거리도 있다. 조국·장하성 등 절반 가까운 다주택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이다. “은퇴용, 노모 부양용”이란 해명이나 “안 팔려서 갖고 있다”는 핑계는 구차하다. 이들부터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종부세 부활은커녕 8·2 대책도 물 건너갈 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시장주의자, 우파와의 결전이다. 시장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 과도한 시장 규제는 효율을 해친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따라갈까 걱정하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경제 상황은 별로 나아지거나 달라진 게 없다. 강남 집값 잡으려다 나라 경제를 잡을 수 있다. 효율을 희생시켜 평등과 정의를 세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보적 부동산 정책을 펴는 진정한 기술은 효율을 크게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평등을 강화하는 데 있다. 명의는 환자의 몸을 망치는 과한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환자의 몸(시장)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맞춤 처방으로 콕 찍어 병을 치료하는 것, 바로 명품 좌파의 임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도움말 주신 분(총 13명):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주택정책실장,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실장, 서재필 을지공인중개업소 대표, 손재영 건국대 교수, 송인호 한국개발원 연구위원, 심교언 건국대 교수, 정보경 제이스공인중개업소 대표,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전직 관료, 은행 PB 등 5명은 극구 실명 밝히기를 꺼려 비공개했다.)
[출처: 중앙일보] [이정재의 퍼스펙티브] “부동산은 이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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