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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포럼]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 공약대로 지켜라-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 포럼]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 공약대로 지켜라-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8/2017011803054.html

 

 

지방 정치인은 바쁘다.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의 온갖 궂은 심부름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철이 되면 지방 의원들은 지방 의정은 뒷전이고 선거운동원으로 뛰어야 한다. 지방 의회에서 회의를 하다가도 국회의원 보좌관이 전화하면 달려가야 한다. 최근 지역구 국회의원이 탈당하자 지방 정치인들도 무더기로 탈당했다. 정당에 속한 시장·군수·구청장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유능한 사람보다는 자기 말 잘 듣는 사람을 공천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영주로 군림하면서 중앙 정치보다 지역구 관리에 더 몰두한다.

지방 정치인은 지방의 주권자인 주민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 지방 정치인은 주민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주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지방 정치인은 을이고 갑은 주민이 되어야 한다. 당연한 지방 정치의 논리다. 하지만 정당 공천에 사활이 걸린 지방 정치인은 다른 논리를 따른다. 주민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잘 모시는 것이 우선이다. 지방 정치인은 주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회의원의 대리인이 된다. 정당 공천은 지방 정치의 논리를 왜곡해 지방 정치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지방 정치는 철저하게 중앙 정치에 예속된다.


/조선일보 DB
2012년 대선에서 주요 정당 후보들은 기초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정당 공천 폐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 2014년 6월 4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물론 야당도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공약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에서는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선거법 개정을 하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일방적인 논리를 펴면서 공약을 위반했다. 여당도 기다렸다는 듯 아무런 해명 없이 슬그머니 야당의 논리에 편승했다.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대선 후에 진정으로 정당 공천 폐지가 위헌이라고 생각했다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대선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선거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이 그냥 지방선거에서 후보자 공천을 그만두기만 했어도 공약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폐지하겠다는 대선 공약은 부도수표가 되고 말았다.

2012년 대선에서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런 해명도 없이 공약을 위반했고 지금은 탄핵 심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당시 후보 역시 공천 폐지 공약을 지키지 않았고 지금 다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개헌을 대선 이후로 미뤄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나 하겠다고 한다. 공천 폐지를 위한 개헌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대선 이전에 개헌하지 않으면 민주당에서 주장해 온 위헌 논리의 덫에 걸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정당 공천을 폐지할 수 없게 된다. 또 공약을 어기는 것이 된다.

대선 전 개헌을 통해 공약을 지킬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대선 공약을 의도적으로 어긴다면 그러한 후보자와 정당은 구제 불능의 신용불량자가 된다. 2017년 대선 공약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금이라도 대선 전에 공천 폐지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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