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치 사회의 칸 ==../-국민의힘( 대표

전여옥님 페북에서 옮김= (“나를 '제값'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박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하다.”)에 대한...

전여옥님 페북에서 옮김=  (“나를 '제값'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박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하다.”)에 대한...
17시간


“나를 '제값'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박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하다.”
11월10일자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정치인의 말이 아니다. 더구나 집권여당의 대표의 말은 더욱 아니다. 인력시장 초짜일꾼도 자신을 이렇게 비하하며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시로 불리워도 좋다’니 ‘2차 담화를 듣고 펑펑 울었다’는 신파극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봐줄 수는 있다. 
박지원의원에게 “정현이가 죽을 때까지 존경하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 충성”은 그의 충성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하는 계기로 만들어 주었다고 치자. 그러나 오로지 그를 ‘제 값’으로 대접해준 사람이 박대통령이 유일하다는 말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또 정치인 이정현의 ‘제 값’은 과연 얼마인가? 묻고도 싶다. 
‘근본없는 놈’을 거둬둔 박대통령과 끝까지 가겠다는 뜻은 알겠다. 
그런데 과연 그를 거둬준 사람이 박근혜대통령이었을까? 
2004년 3월 초 나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대변인으로 들어가보니 일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차떼기 정당으로 낙인찍힌 한나라당은 대변인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다 당직을 그만 둬버렸다. 대변인실이라고 들어가보니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여직원 단 한명이었다. 제1야당의 초라한 민낯을 그대로 볼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손이었다. 
TV카메라 앞에서 최소한 다섯차례 마이크를 잡고 당의 논평을 하루에 열차례 정도 냈다. 나는 기자출신이었고 오랫동안 글을 써왔으므로 그 일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박근혜대표 선거유세에 동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출입하는 기자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백통은 넘게 걸려왔다. 
당출입을 오래한 기자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부대변인을 상근으로 하나 두는게 어때요?”
“그럼 추천 좀 해주세요.”
“전에 이정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그만뒀어요.”
“아니-왜요?”
“이 당에서는 드문 호남출신인데 좀 그런 일이 있어서요--” “아니-무슨 일인데요?”
그 기자는 약간 망설이면 이야기를 했다. 
“당에서 무슨 회의를 했는데 그 사실을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았어요. 그래서 쫓겨난 거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가슴이 아팠다. 
또 다른 고참기자에게 확인겸 해서 물어봤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아무래도 호남출신 기자들과 친할 수 밖에 없었고, 또 한겨레니 경향하고 친해서 그런 혐의를 받은 것 같아요.”
그 기자역시 이정현을 다시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정현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당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그 양반 광주 선거에도 나갔어요. 당연히 안됐지만 선거에 한나라당 깃발로 나갔다는 것이 대단한거죠.”
나는 그 대목에 엄청 감동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날 오후, 천막당사 뒤 벤치에서 나와 그는 만났다. 
책 한권을 끼고 나온 그의 얼굴은 참 초췌해 보였다. 나는 그 와중에도 ‘책 한권’을 놓지 않은 그에 또 ‘감동’했다.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보수의 씨까지 말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내 뜻을 받아들였다. 
그때 대변인실의 한달 총 예산이 300만원이었다. 나는 그 300만원을 상근부대변인인 그에게 활동비로 다 주었다. 
기자들의 밥값, 저녁때 술값까지 모조리 내 사비로 다 해결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카드 돌려막기라는 것을 해봤다. 기자 열명만 같이 점심을 먹어도 십만원이 나왔다. 게다가 저녁때 삼겹살에 소주만 먹어도 20만원, 30만원 나왔다. 대접받는데 익숙한 몇몇 기자들은 한우고기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 50만원도 백만원도 하룻밤에 나왔다. 내가 ‘영란시대’를 격하게 환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당에서 다 돈이 나온 것으로 아는 듯 했다. 구차한 소리도 하기 싫어 입다물고 이 카드 저카드 총동원하며 긁어댔다. 많은 달은 3천만원도 나온 적이 있었다. 
이정현부대변인은 열심히 일했다. 
당시 천막당사에서 박근혜대표는 회의때만 왔다가 갔다. 그때 이정현이라는 사람을 눈여겨 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수많은 당직원중의 한사람일 뿐이었다. 
과연 인간 이정현을 ‘제 값’으로 쳐준 사람이 박근혜대표였을까? 
나에게 그를 추천했던 기자들, 그리고 광주에 출마했던 그의 기개를 이야기해 준 당료들은 그를 ‘제 값’으로 쳐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구질구질하게 당시 대변인이었던 내가 그를 발탁했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를 진짜 ‘제 값’으로 쳐준 사람은 박근혜대표가 아니라 당시 천막당사에서 고생했던 기자들과 당료들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2004년 봄 이정현이 안타까워서 그렇다.

+++머잖아 세상에 나올 제 책 "오만과무능"의한 부분에서 발췌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