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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필로 그려낸 비백…수원미술관, 최경락 화백 '징검다리#2016'展 개최

죽필로 그려낸 비백…수원미술관, 최경락 화백 '징검다리#2016'展 개최

박현민 min@joongboo.com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화폭가득 黑과 竹의 香
작가의 곧은 기개 드러나

▲ 13일 수원시미술전시관에서 한 시민이 아이와 함꼐 최경락 화백의 '징검다리 #2016'전시를 보고 있다. 최경락 화백의 전시는 11일 부터 16일까지 이루어진다. 조태형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흰 여백의 화면에 단단한 죽필의 먹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작품 ‘징검다리’와 처음 마주한다. 눈 밭에 남겨진 발자국 또는 설경산수의 일부같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전시장의 모든 산수화를 천천히 둘러보길 권한다. 여백과 비백, 먹으로 화면 너머의 세계를 화폭에 담아낸 최경락의 산수를 둘러보고 나면 거친 먹자국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원시미술전시관에서 ‘징검다리#2016’展을 여는 최경락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끊임없는 공부와 세밀한 복원을 거친 능행차도 연작과 ‘와(臥)산수’ ‘부(浮)수원’으로 대표되는 전통산수를 선보인다. 철저한 고증과 연구로 당시의 행행(行幸)을 재현해낸 능행차도와 초현실적인 시점으로 독특하게 펼쳐보인 전통산수는 이질적인 듯 하지만 대나무와 먹이라는 뚜렷한 공통점을 갖고있다.

만화적 요소를 포함한 ‘능행차도’

전시장 한 쪽에는 ‘능행차도’(2013 )와 ‘신능행차도’(2016)가 나란히 놓였다. 최 화백은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해 먹과 커피를 3대7의 비율로 섞어 바탕을 칠했다. 화면의 중심에서 화성행궁과 팔달문, 서장대, 화서문, 화홍문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능행차의 시작인 창덕궁은 물론 의왕, 안양의 행궁지까지 세밀하게 재현했다.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만평작가로 활동 중인 최 화백은 능행차도에 봇짐을 지고 지나가는 선비와 빨랫감을 머리에 인 아낙 등 우리네 삶의 모습을 담았다. 이런 작가의 재치는 ‘삼남길’에 보다 자세히 드러나있다. 조선시대 한양과 충청, 전라, 경상을 연결했던 삼남길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을 향하는 길이자 죄인의 귀양길이었다. 사내와 아낙, 스님이나 아이까지도 모두 제 목적을 위해 이용했던 옛 길을 상상하며 너른 화면을 채웠다.

여백과 비백으로 공간을 메운 전통산수

이영길 수원시미술전시관장은 화백의 ‘부(浮)수원’을 두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로운 부감법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 화면에 한 장면을 인식해 표현하는 것이 서양회화의 특징이라면 전통적으로 동양회화는 한 화면에 중첩된 여러 세계를 그렸다. 한 폭의 산수화에 이상향이 펼쳐지는 무릉도원을 모두 담아냈던 것이 대표적이다. 최 화백의 ‘부(浮)수원’ 또한 마치 공중에서 수원을 내려다본 듯 초현실적인 시도로 여러 시점을 겹쳐냈다. 눈 내린 겨울 광교산의 산자락부터 눈 앞에 펼쳐진 작은 호수까지를 한 폭의 화면에 담은 ‘와(臥) 산수’에서도 이런 시도가 두드러진다.

화선지의 여백과 죽필의 비백으로 이상향(유토피아)과 디스토피아의 간극을 드러낸 ‘징검다리’ 연작은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이 이유없는 ‘끌림’을 느낀다는 작품이다. 세 폭으로 나뉜 화면의 왼쪽은 먹을 끼얹어 깊은 어둠을, 죽필의 비백이 여실히 드러나는 오른쪽은 무릉도원의 입구를 엿보는 듯 하다. 흑백의 대비 한 가운데 뚜렷한 흔적을 남긴 주먹(朱墨)은 죽은 대나무의 색이다. 붓 대신 죽필을 잡은 화백의 대나무 같은 기개와 사즉필생(死卽必生)의 각오를 드러내고 있다. 전시는 16일까지 이어진다. 박현민기자/mi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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