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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르포] "가계부채 대책, 아픈데 안 찌르려니 엄한 대책만 나와"

[비즈 르포] "가계부채 대책, 아픈데 안 찌르려니 엄한 대책만 나와"

  • 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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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6.08.26 15:16 | 수정 : 2016.08.26 15:47

    “등이 간지러운데 종아리 긁는 격 아닌가요. 어차피 돈 있는 사람은 어디라도 투자합니다. 강남에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 대로, 돈 좀 있는 50~60대들의 투기 수요는 이미 전국에 퍼져 있습니다. 정부가 아픈데 안 찌르고 규제하려니까 엄한 대책만 나오는 거죠.”

    정부가 지난 25일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가계부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관리 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이미 불붙은 수도권 아파트 분양 시장은 이번 대책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일부 경기도와 지방 아파트들은 이번 대책으로 체감 경기가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당분간 시장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모습. /최문혁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모습. /최문혁 기자

    정부는 25일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을 줄여서 아파트 분양과 맞물려 있는 집단 대출을 규제한다는 간접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가계 부채의 주범으로 꼽히는 집단 대출은 아파트 분양 후 단체로 은행에서 받는 대출로, 현재 입주예정자의 소득수준과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중도금·잔금을 합쳐 분양가격의 70%까지 빌릴 수 있는 돈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택지 공급 물량을 줄이고 ‘미분양 관리 지역’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파이낸스(PF)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보증 예비심사’도 도입하기로 했다. 집단대출 때 상환능력을 심사하고 중도금 보증 건수 제한과 집단대출 보증률을 부분 보증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 2단지 아파트 전경. /최문혁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 2단지 아파트 전경. /최문혁 기자

    그러나 이번 대책은 가계 부채를 강하게 억누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만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선 강도 높은 가계 부채 대책을 내놓으면 부동산 시장이 죽어 경기 급랭이 우려되고, 집값을 떠받쳐 경기의 불씨를 지펴 나가려면 가계 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대책을 두고 강남권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일대 재건축 아파트의 청약 ‘광풍’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 아파트인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10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수도권 최고 청약 경쟁률을 찍었다. 

    개포동 경인부동산 노정림 소장은 “이 지역 사람들은 이미 재산이 형성된 사람들이고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의 비싼 아파트를 충분히 살 수 있어 이번 대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여기 사람들의 집을 사고파는 실력은 정부 대책을 세우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앞서간다”고 했다.

    대치동 스피드공인 신용수 소장은 “오히려 이번 대책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며 “강남권 아파트는 일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들어온 가수요자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 정도 아파트는 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값이 비쌀수록 청약률과 계약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강남뿐 아니라 경기도 하남 미사, 화성 동탄 지구 등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지역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로 주택 공급량이 줄면 집값이 전반적으로 오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하남 미사지구 미사사랑공인 관계자는 “여기는 어차피 집값이 꾸준히 오르는 지역이라 이번 대책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의 평택우리공인 황선록 소장은 “이미 아파트를 투자 개념으로 보고, 돈만 있으면 미분양이 많은 곳이든 아니든 일단 분양권을 샀다가 프리미엄(웃돈)을 받고 빠지는 이들이 많아, 이번 대책이 별로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분양 관리 지역을 확대한다고 밝히면서 미분양 물량이 쌓인 일부 경기도와 지방의 부동산 시장은 분위기가 대조적이다. 정부는 인허가 물량과 청약 경쟁률까지 고려해 미분양 관리 지역을 확대 지정하고, 분양 보증 예비심사와 본점 심사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집단대출 때 상환능력 심사를 위해 은행이 집단대출을 받는 사람에 대한 소득자료 확보를 의무화한 것도 부담이다.

    단기적으로 미분양이 많은 지역의 투자 심리는 꺾일 것 같다.

    포항의 가람합동공인 조지혜 소장은 “상황 능력 심사를 강화한다는 얘기에 일단 갑자기 매매 문의가 줄었고 분위기도 냉랭하게 바뀐 것 같다”며 “원래 더운 여름과 추석 전까지는 주택 거래량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책까지 맞물리면서 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양극화가 전망되지만,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결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시장이 크게 반응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동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나 분양권 전매 제한, 더 강력한 대출 규제 등을 실시하지 않는 한 지금처럼 정신없이 오르는 집값을 잡기는 힘들 것”이라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상빈 기자 최문혁 기자가 함께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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