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크고, 파장을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 24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가 현실화되면서 우리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24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즉각 관계기관 합동 점검반을 꾸려 24시간 대응체계를 갖췄다. 26일에는 제1차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연차총회를 마치고 귀국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필요할 경우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가용수단을 모두 동원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계획”이라면서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매일 회의를 열어 상황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브렉시트의 파장이 어디로, 얼마나 튈 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에서 유일호 경제팀의 내놓을만한 카드로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기준금리 추가 인하,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 등이 꼽힌다.
◇10조원대 추경 카드
추경은 경기 침체기에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부양 카드다. 오는 28일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추경 편성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유 부총리는 24일 새누리당과의 당정 간담회에서 추경 편성 방침을 공식화했다. 추경 규모는 10조∼15조원 선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 현실화로 추경 편성 등 재정보강 규모가 더 확대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3.1%)보다 0.3%포인트 낮은 2.8%로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제는 2012년 2.3%, 2013년 2.9% 등으로 3%에도 못 미치는 성장을 하다 2014년 3.3%로 반짝 3%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2.6%에서 이어 올해도 2%대 성장이 확실시되면서 저성장이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해운ㆍ조선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한창 가운데 대형 악재인 브렉시트마저 터졌다.
관건은 추경 편성 시기와 규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20조원대의 ‘슈퍼 추경’을 편성해 경기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고 추경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편성 시기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부총리는 “7월 중 추경 편성”을 주문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은 2009년의 28조4000억원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지난 25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세계경제회의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수장들은 브렉시트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 영란은행의 비상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앞서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지난 24일 “영국이 EU 탈퇴를 선택한 데 따른 금융시장 충격 완화를 위해 기존 경로를 통해 2500억파운드(약 400조원)를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필요하면 외환 유동성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브렉시트 후폭풍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경우 대응책으로 추가 금리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이 총재는 지난 9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의 하강 위험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이 다음 달 14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올 성장률 전망을 기존 2.8%보다 더 낮추고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 10조원을 대출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달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는 등 경기 부진 타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은 추가 인하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다.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브렉시트의 충격파가 가장 먼저 전달된 곳은 영국 부동산시장이다. 브렉시트 결정이 나오자 영국의 건설ㆍ부동산 관련주는 사상 최대폭인 16.5%나 폭락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던 영국 부동산시장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런던과 인근 도시에서는 부동산 계약 취소사례가 빈발했다. 투자은행들은 영국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5∼10%, 사무용 부동산은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영국 재무부도 브렉시트 때 부동산 가격이 18% 하락할 것으로 점친 바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부동산 시장 위축 조짐이 다른 곳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 부동산시장도 전망이 어둡다. 한국 코스피의 22개 산업별 지수 가운데 건설업종은 24일 4.71% 하락하며 증권, 기계업종에 이어 세 번째로 낙폭이 컸다. 최근 일부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과열’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전체 부동산 시장은 한 풀 꺾이는 모습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방의 주택가격은 최근 16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체 주택거래량도 14만6229건으로 지난해의 4분의1가량 줄었다. 브렉시트가 국내 부동산시장을 강타할 경우에 대비해 집단대출 규제 강화 등 잇단 부동산 대출 규제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적극적인 부동산시장 활성화대책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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