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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이한구式 역습…친박 목 겨눈 ‘선거법’/ [박제균의 휴먼정치]김무성과 김종인 ‘주저앉은 자의 슬픔

김무성, 이한구式 역습…친박 목 겨눈 ‘선거법’/ [박제균의 휴먼정치]김무성과 김종인 ‘주저앉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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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이한구式 역습…친박 목 겨눈 ‘선거법’

  • 2016-03-25 04:00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드디어 칼을 뽑았다. 그것도 친박계의 허를 ‘깊숙하게’ 찌른 치명적인 비수였다. 

김 대표가 꺼내든 한칼은 “당헌·당규 위반”이라며 최고위 의결을 보류했던 5개 지역구에 대한 무(無)공천이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막무가내 ‘칼질’을 앞세워 유승민계와 비박계의 눈엣가시들을 성공적으로 숙청하며 승리에 도취돼있던 친박계는 김 대표의 이 한 수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무공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 후퇴의 연속, 공허한 ‘옥새’ 경고 

사실 무공천 카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김 대표는 이한구 위원장의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무공천 또는 대표 직인 날인 거부로 친박계의 학살 시도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이 위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전략 공천과 현역 컷오프 방침을 노골화하자 김 대표는 “용납않겠다”며 공천장 날인 거부를 시사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당 대표 컷오프' 위협과 지도부 내 친박계의 협공에 기세가 꺾였다. 사면박가(四面朴歌)의 처지 속에 고작해야 침묵 시위가 전부였다. 

살생부 논란에 사과를 하기도 했고 자신과 측근들의 공천 앞에 이 위원장의 이죽거림과 비아냥도 속으로 삭여야 삭여야 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 위원장과 친박의 폭주에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 대표에 대한 불만과 실망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저항을 해도 30시간을 못넘긴다는 ‘30시간의 법칙’까지 나돌며 김 대표는 희화화됐다. 

3.15 비박 학살의 광풍 속에서도 김 대표의 측근들이 모두 살아남자 친박과의 거래 의혹마저 제기됐다. 

이 위원장의 고사(枯死)작전에 유승민 의원이 자진탈당한 23일에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 의원 지역구의 무공천 방침을 공식 언급했지만 ‘알리바이성 회견’, ‘면피성 저항’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유 의원이 탈당하고 24일 이 위원장이 대구 동을에 진박(眞朴) 후보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공천하자 무공천 발표를 결행했다. 

◇ 명분, 행동, 타이밍 

김 대표는 이날 역습을 위해 명분을 차곡차곡 축적했다. 

친박의 ‘막장 공천’에다 이 위원장이 유 의원에게 “당을 모욕하고 침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난 것”이라고 비난하자 “잘못된 공천을 최소한이나마 바로잡아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하겠다”며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대표는 유 의원이 탈당하며 남긴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등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고 아파했다. 

행동도 전광석화였다. 대표 직인을 모처로 옮긴 뒤 부산 지역구로 내려갔다. 1991년 민정당계의 축출 시도에 당무 거부와 마산 칩거로 대응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닮았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오직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유 의원의 탈당의 변을 다시 인용했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김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등록이 시작돼 당적 이탈이나 변경이 불가능한 24일을 기다렸다. 25일까지 공천장에 직인을 찍어주지 않으면 진박 후보들은 새누리당 후보 자격을 얻지 못함과 동시에 무소속 출마의 길도 막혀 총선 출마가 원천 봉쇄된다. 

선거법을 활용해 후보자 등록 전날인 23일까지 9일간의 시간끌기로 유승민을 자진탈당하게 만든 이한구 위원장처럼 현재 선거법과 시간은 김 대표의 편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24일 오후 김무성 대표의 공천 관련 기자회견 직후 국회에서 소집된 긴급 최고위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 치밀한 사전 준비…친박 허 찌른 ‘외통수’ 

김 대표는 당헌·당규를 검토하며 친박의 대응 방식 등 여러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져본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들에게도 거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 측근은 "선거운동 중에 한 가게의 TV뉴스에서 접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기습에 당황한 친박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전쟁 선포”라고 규정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들은 지도부 일괄사퇴와 비대위 구성 등의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은 당헌 제30조와 당규 4, 7조에 의거해 최고위를 열 수 있고 권한대행의 공천 의결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옥새에서 막힌다.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우선 당 대표가 아닌 권한대행의 도장을 찍어 제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총선 후보자 등록 요건을 갖추려면 공천장에 찍힌 당인과 직인이 선관위에 신고된 당인, 직인과 일치해야 한다. 즉 권한대행의 도장으로는 후보자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대표 직인 대신 권한대행 도장으로 인감변경을 한 뒤 공천장에 직인을 찍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선관위에서 가능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만 대표가 버젓이 있는 마당에 변경이 허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선관위 내부의 시각이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에서 조순형 대표와 공천 갈등을 겪던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대표 직인을 빼돌리는 사태가 있었다. 추 위원장은 이 직인을 찍은 공천장을 선관위에 제출했지만 선관위는 조 대표가 새 인감으로 변경해 날인한 공천장을 접수한 바 있다. 

◇ 朴대통령에 반기…또 타협할까 

김 대표가 무공천을 선언한 5곳은 대구 동구을(유승민)과 동구갑(류성걸), 서울 은평을(이재오)과 송파을, 대구 달성으로 이번 공천 물갈이의 핵심지역이다. 

이곳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유재길 은평미래연대 대표, 유영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등 진박 후보들을 내보낼 수 없는 사태를 가져왔다는 것은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총선을 20일 앞두고 승부수를 던진 만큼 김 대표가 25일 오후 6시(후보자등록 마감시한)까지 직인을 숨겨두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반면 그간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보여줬듯이 다시 타협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다만 협상의 칼자루는 김 대표가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24일 부산에 급파된 원유철 원내대표와의 회동 끝에 당무 복귀에 의견을 모으고 25일 국회 당대표실로 출근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고위가 소집될 것이란 원 원내대표의 기대와는 달리 “소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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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의 휴먼정치]김무성과 김종인 ‘주저앉은 자의 슬픔

박제균논설위원

입력 2016-03-25


박제균 논설위원

“김종인은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5번째 비례대표 의원이 될까? 정치는 생물이라 확언할 순 없지만, 난 될 것으로 본다.” 4일자 본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종인은 1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취임할 때부터 “내 (한국) 나이가 77세”라며 비례대표 의원 자리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신을 2번으로 ‘셀프 공천’하기 5일 전인 16일에도 “나는 비례대표를 4번 해봤다”며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킹과 킹메이커 차원 달라
 

내가 김종인이 비례대표 의원을 할 것이라고 쓴 이유는 그와 인터뷰하면서 설혹 더민주당의 친노·운동권 체질을 못 바꿔도, 총선 후 ‘킹 메이커’가 되지 못해도 금배지를 달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보다 건강하며 ‘감(感)’과 기억력이 좋다. ‘김종인 등장의 최대 수혜자가 반기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2)이 대선에 출마하면 불거질 수 있는 고령 이슈를 네 살 많은 김 대표가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종인에게선 아직도 정치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는 ‘언제라도 내가 떠나면 그만’이란 말을 입에 달곤 했지만, 그런 인생철학을 가진 사람이 박정희 정권부터 좌우의 강을 세 번이나 넘나들며 5번이나 비례대표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가 20대 총선판의 유일한 스타로 뜨면서 ‘오버’한 것이다. 언론 인터뷰나 사석에서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야 킹메이커라도 해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국민이 킹과 킹메이커를 보는 눈은 차원이 다르다. 적어도 킹이 되려면 살아온 이력이 스토리가 돼야 한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와 뇌물죄 유죄 판결 이력으론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한편 김무성을 보면 이런 우스개가 떠오른다. ‘A: 내 몸에 털끝이라도 손대기만 해봐!→B: (한 방 때린다)→A: 한 번만 더 손대기만 해봐!→B: (마구 때린다)→A: 다시 또 손대기만 해봐!→B: ㅎㅎ….’ 

‘상향식 공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상향식 공천 원칙에 위배되는 △단수·우선 추천 △컷오프(공천 배제) △여론조사 100% 적용 등을 발표할 때마다 발끈했지만 다 양보했다. 그 대가로 김무성계와 부산 의원들을 살렸고 비례대표 몇 자리도 챙겼다. 양보는 자신을 버릴 때 울림이 있다. 그가 19대 공천에 탈락하고도 당에 남아 백의종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그런 울림이 있었다. 제 몫을 챙기려는 양보는 정치적으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비박 학살’ 대표 걸었어야
 
 

김무성은 적어도 ‘3·15 비박(비박근혜) 학살’ 때는 대표직을 걸었어야 했다. 당 대표란 사람이 산하기구 장(長)인 이 위원장으로부터 “바보 같은 소리”라는 극언을 듣고도 자리를 지켰다. 김무성의 정치적 스승 김영삼(YS)은 1990년 ‘3당 합당’의 이면합의인 내각제 합의문서가 공개되자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에 내려가 칩거했다.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정치상황을 반전시켰다. 김 대표가 총선 후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을 꿈꾼다면 돌아볼 대목이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를 패러디해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유행했다. 한 번 더 비틀어 보면 ‘살아남았다고 강한 자는 아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http://news.donga.com/3/all/20160325/77203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