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치 사회의 칸 ==../-김학용_(안성 국회의원), 활동.비전.어록.영상.보도.논객.자료.건의

[국회보 2015년 11월호]_나의 인생, 나의 정치_‘안성 맞춤’ 의원에서 ‘대한민국 맞춤’ 정치인으로 - 김학용 의원 (새누리당, 경기 안성시)

[국회보 2015년 11월호]_나의 인생, 나의 정치_‘안성 맞춤’ 의원에서 ‘대한민국 맞춤’ 정치인으로 - 김학용 의원 (새누리당, 경기 안성시)


김학용 의원 (새누리당, 경기 안성시)

정치를 꿈꾸던 아홉 살 소년은 무모하리만치 앞만 보며 한길을 달렸다.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룰 힘도 함께 가졌다고 믿었기에 숱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았고, 결국 꿈은 그에게 현실이 되었다. 28세에 국회의원 비서관을 시작해 경기도의회 3선 도의원을 거쳐 20년 만에 국회에 입성한 그는 현재 새누리당 당대표 비서실장으로 중앙정치무대에서 종횡무진 하고 있다. 김학용 의원을 만나 그가 간직하고 키워온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치인의 바탕이 되어준 신용과 감사의 가르침

“7살까지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저는 공도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김희주 선생님 등 여러 좋은 스승을 만나 모범생으로 변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안성에서 형제상회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파는 미니 백화점 같은 곳이었죠.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와 가게 일을 거들고 배달도 하면서 컸습니다.”

김학용 의원은 그때 부모님을 도와 장사를 했던 경험이 나중에 정치하는 데도 좋은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저희 집이 장사가 잘 됐던 것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쌓은 신용이 한몫을 했습니다. 항상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물건을 바꿔달라고 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바로 바꾸어주셨거든요.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다 마을 주민들 덕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아버님은 언젠가 한번 모아놓은 외상장부를 모두 불태우기도 하셨습니다. 그걸로 그간 받은 사랑에 보답하시겠다는 뜻이었겠지요. 지나고 보니 아버지께서 제게 몸소 보여주신 신용과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지금 제가 국회의원으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뽑아주신 국민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국회의원의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으니까요.”

김학용 의원이 처음 정치를 꿈꾸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9살 때였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오니 아버지께서 어디 갈 데가 있다며 짐자전거 뒤에 타라고 하시더군요. 한참을 달려 멈춘 곳은 공도읍 신두리의 한독낙농시범목장 준공식 현장이었습니다.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유라도 먹을 수 있도록 시범목장 건립지원을 요청해 한독낙농시범목장이 안성에 세워진 겁니다.”

김학용 의원은 짐자전거 위에서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박정희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에 둘러싸여 연설을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을 보면서 ‘나도 커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러 오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꿈을 정치가로 정했습니다. 그 후로 공부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됐고, 아버지 가게에서 껌과 사탕을 가져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건네며 ‘나중에 국회의원 나오면 꼭 찍어달라’고 나름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지요. 의원이 된 후 돌이켜보니 그분들은 그때 거의 다 돌아가셨더군요. 너무 일찍 선거운동을 시작했지 뭡니까. 하하하.”


매년 지구 두바퀴 거리를 달리는 열혈 정치인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김학용 의원은 1988년부터 이해구 의원 비서관으로 국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후 경기도의원으로 차곡차곡 정치경험을 쌓은 뒤 18대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정치를 시작한 후 하루 5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아침 6시2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길에 올라 18시간 이상의 일정을 소화한다.  

“매일 서울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자동차의 1년 주행거리가 8만㎞, 4년간 32만㎞에 이르더군요. 매년 지구 두 바퀴 정도의 거리를 달린 셈입니다. 안성 주민들이 저를 뽑아주셨으니 이분들과 생사를 같이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김학용 의원은 그간 재선의원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예결위 간사를 하면서 5년 만에 여야합의로 예산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개특위에서는 공천비리에 대한 처벌강화와 근로자 투표청구권 등 13개 정치개혁과제를 통과시켜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의 바탕을 마련한 것에 대한 보람이 큽니다.”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안성의 지역현안 해결에도 온 힘을 쏟았다. 특히 안성철도시대를 열기 위해 불철주야로 뛰었던 덕분에 평택-안성-부발 간 58.7km의 철도노선 건립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사전조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현재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김학용 의원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관심이 많다. 

“앞으로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해결에 공로가 있는 국회의원으로 기억되는 것이 제 정치적 꿈입니다. 국가든 사회든 가정이든 모든 일은 사람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원천적인 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은 1.21명(2014년 기준)에 그쳐 세계 190여 개국(유엔 회원국 기준) 가운데 홍콩(1.20명)과 마카오(1.19명) 다음으로 낮습니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가 요즘 저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꿈과 함께 달려온 세월 속에서 안성의 맞춤의원으로 우뚝 선 김학용 의원. 지금 그는 더 큰 꿈을 꾸면서 대한민국 맞춤 정치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글 김현아  사진 임진완

네이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