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➀경제활성화➁수맥과건강➂(알림,광고,홍보), /♡수원 역전시장 및 주변 소식

수원역에서 만난 노숙인들

수원역에서 만난 노숙인들

등록일 : 2015-08-17 18:20:37 |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수원역, 그곳은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이자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해결하는 곳으로 수원역을 드나들기 시작한지도 벌써 14년째다. 
워낙 돌아다니는 걸 즐겨하는 내게 수원역은 고향 같은 친근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다보니 전철이나 기차를 이용한 외출도 잦은 편이다. 

그럼에도 오며가며 눈에 보이는 수원역의 풍경들이 가끔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관심으로 지나치던 풍경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왔을 때가 그런 경우다. 

수원역 주변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를 바쁘게 오고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곳을 아지트 삼아 지내는 이들도 많다. 
수원역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을 막아서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아이가 경기 일으키듯이 깜짝깜짝 놀라 수명이 몇 년쯤은 단축되는 듯하다. 

이 사람들 외에도 늘 수원역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수원역 근처 로데오 거리 입구 쪽에 유난히 많다. 아침에도 보이고 점심때도 보이고 저녁시간에도 당연히 그곳에 있다. 
그들은 그곳을 놀이터 겸 거처로 삼아 지낸다. 수원역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들 중에 썩 유쾌한 풍경은 아니다. 유쾌하지 않다는 것의 의미는 그들이 불쾌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몸이, 아니면 마음이 아픈 이들이기 때문에 보는 내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철을 이용하다보면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수원역을 이용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집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로데오거리 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이용한다. 그럼에도 아직 한 번도 그들로 인해 시끄러운 광경을 목격해보지는 않았다. 
밤 시간의 수원역 주변을 어쩌다 가끔 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유난히 순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들만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내게 그야말로 수원역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중의 하나였다. 분명 나의 눈에 보이지만 스치고 지나가면 기억도 나지 않는 풍경 중의 하나다. 

그런데 늘 지나치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어제 만난 그들의 모습이 그랬다. 서울에서 모임 하나가 있었다. 휴일이지만 근무일이어서 퇴근 후에 급하게 서울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아직 자정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퇴근 후에 서울을 다녀올 일이 있을 때면 거의가 자정 무렵이었는데 다른 날보다 조금은 여유 있는 시간 탓이었던가 보다. 수원역 2층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데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면 활짝 피었다가 아침이면 시들어버리는 달맞이꽃, 밝은 태양보다는 가냘픈 달빛이 노숙인들에게는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약간의 공간이 있는데 양 쪽으로 각각 사람이 누워 있었다. 
한 사람은 긴 바지를 입고 다리를 쭉 펴고 있었으나, 또 한 사람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추운지 다리를 웅크린 자세였다. 꼭 아기 같았다. 다행히 얼어 죽을 날씨는 아니지만 아기 같은 자세로 웅크린 그 모습이 나의 발길을 잡아 한참을 서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하나 덮어주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쌀쌀한 날씨에 민소매 차림인 나또한 떨고 있는 참이었으니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문지라도 한 장 어디서 주워 올 것이지 준비성도 없이... 라는 책망을 혼자 속으로 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런데 조금 내려오니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난 계단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앉아있고 그 옆에는 경찰이 무언가를 확인한 후 수첩에 적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얌전한 모습이었지만 경찰이 출동한 걸 보면 어떤 소란이 그들 사이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꾸중 듣는 아이들처럼 얌전하게 기죽은 그들의 모습이 못내 걸렸다. 이미 전철을 타기위해 영등포역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났던 모습이다. 그들을 어찌할 것인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아름답지 못한 풍경으로만 치부해버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내 집에 데려다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 할 것인가. 이미 한 번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와 버린 풍경 때문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김사인 시인의 ‘노숙’이라는 시를 옮겨본다.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