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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회가 여야 연정(聯政)을 빌미삼아 새해 경기도 예산에 ‘백지예산’ 수 백억원을 밀어넣으면서 예산 행정(行政)을 무력화시켰다.
예산 심사 권한이 갖고 있는 도의회가 예산을 삭감 또는 증액할 수는 있지만, 사업계획조차 없는 ‘선편성후계획’ 예산 수백억 원을 포함시킨 전례는 찾기 힘들다.
예산 심사가 끝나자마자 입법 권력이 칼자루를 휘둘러 예산 행정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2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의회 여야는 무상급식 237억원, 학교시설개선비 288억원, 생활임금 등 4개 조례 사업비 29억6천만원, 0~2세 가정어린이집 지원비 17억2천만원 등 새해 예산에 반영시켰다.
이중 학교시설개선비 전액은 사실상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상태로 경기도교육청에 넘겨졌다.
도의회 예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학교시설개선비가 어떤 학교에, 어떤 시설을 개선하는데 쓰여질 것인가에 대한 보고는 물론이고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의장과 여야 양당대표가 결정한 금액을 예산에 포함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업타당성 분석→사업 우선순위 결정→세부 사업계획 수립→예산 편성 절차가 완전히 무시된 백지수표 예산이 무려 288억원이나 편성된 셈이다.
도의회 일각에서는 이 예산중 일정 부분이 도의원 지역구 관리용으로 쓰여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도의원은 “지역에서는 학교시설개선 예산 몇 백, 몇천만원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면서 “재정난이 심각한 도교육청에 백지수표를 건넨 만큼 보답이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학교시설개선비의 용도와 용처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산 증액에 동의한 것은 맞지만, 도교육청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예산이 아니다”면서 “화장실 보수 등 목적을 분명하게 정해 예산을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4개 조례중 하나인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예산 6억3천만원 역시 ‘선편성후계획’에 해당되는 예산이다. 공공산후조리원이 없는 지역 1곳과 민간산후조리원이 있는 지역 1곳 등 2곳에 설치한다는 계획만 있을뿐 어떤 지역에 설치하고, 어떤 형태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다.
무상급식비 237억원 역시 예산 지원 규모에 대한 아무런 검토없이 ‘도교육청 지원 예산 1천억원’이란 미명하게 반영됐다.
또 다른 예결위원은 “의장과 양당 대표가 도교육청 지원예산 규모를 1천억원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무상급식과 학교시설개선비의 규모가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존 친환경급식예산 475억원에 525억원을 더하면서 237억원과 288억원으로 정해졌다”고 말했다.
도의회 다수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증액시킨 0~2세 가정어린이집 지원비 17억2천만원은 ‘부도수표’에 해당된다. 경기지역 가정어린이집 8천223곳에 월 10만원씩 지원하는 이 예산은 최대 70%까지 부담해야 하는 시·군과 사전 협의없이 반영됐다.
또 다른 경기도 관계자는 “시·군의 재정여건상 가정어린이집 지원 예산은 집행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예산이 편성되려면 사전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무조건 증액시켜 놓는 바람에 부도수표가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정현기자/ljh@joongb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