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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 위기의 문·사·철

[지지대] 위기의 문·사·철
이연섭 논설위원  |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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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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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文史哲)은 문학ㆍ역사ㆍ철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보통 인문학이라고 분류되는 대표 학문들로 지성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교양을 의미한다. 대학에선 인문학을 통해 주체적 교양인을 길러낸다. 그게 대학의 목적중 하나다.

그런데 대학에서 인문학이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취업률을 기준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밀어부치고, 대학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문학과 통폐합과 폐지가 잇따르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인문계열 입학정원은 2천215명(4.7%)이나 감소했다. 대학 학과 수는 같은 기간 16.6% 늘었지만, 인문계열 학과 수는 1.7% 줄었다. 2011~2013년 통폐합된 인문계열 학과는 43개에 이른다.
 

   
 

통폐합된 학과는 ‘문화콘텐츠학과’나 ‘디지털콘텐츠학과’ 등으로 바꿨다. 아주대, 용인대, 인하대,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등 10여개 학교가 문화콘텐츠학과를 개설했다. 이들 학과는 소설, 시, 근현대사 대신 ‘공연예술기획론’ ‘출판기획론’ ‘만화산업이론’ 등을 가르친다. 취업률과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응용 인문학’으로 대체한 것이다.

대기업 채용 시장에서 인문학과는 서류전형에 끼워주지도 않다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문학과 통폐합으로 석ㆍ박사급 연구자들이 갈 곳을 잃으면서 인문학 연구와 교육수준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대학 밖에선 인문학 열풍이 뜨겁다. 취업률을 따지는 대학의 논리와는 달리, 기업에선 인문학적 소양을 중요한 잣대로 평가한다. 이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인문학적 스펙’을 쌓느라 애쓰고 있다. 한 학기 수강료가 1천만원이 넘는 고급 인문학강좌나 수백만원짜리 인문답사여행에도 기업 CEO들이 몰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도 인문학 열풍이 불고있다. 수원시는 ‘인문학 중심도시’를 표방하며 도서관ㆍ박물관 등 곳곳에서 인문학 강좌를 여는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인문학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대학의 주장과, ‘인문학이야말로 먹고사는 일의 동력이 된다’는 대학 밖의 논리가 충돌하는 셈이다. 대학이든 기업이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창의성의 원천은 인문학이다. 실용학문 또한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안된다. 대학이 인문학을 다시 살려야 하는 이유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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