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치하의 나찌 독일, 스탈린이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소비에트 러시아, 전제군주 박정희가 통치하던 유신 대한민국에서나 봤음직한 사태가 벌어졌다. 서서히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사찰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민들의 상상력을 초라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명박 정부지만, 불법사찰 사건은 막장의 끝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드러난 증언과 증거들만 취합해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사찰 사건의 실체는 매우 간명해 보인다. 설립부터 탈법의 혐의가 짙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전 정권 출신 인사, 정치인, 공무원, 언론, 재벌, 노조, 일반시민 등 그 범위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밀착해 감시와 추적과 미행을 거듭했고, 이를 토대로 만든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불법사찰의 목적은 분명하다. 정적이나 잠재적 반대자들을 제압하고 축출하며, 언론을 장악하고, 정권에 대한 공무원의 충성도를 평가해 이를 근거로 승진과 탈락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보면 불법사찰 보고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불법사찰의 단서가 잡히자 청와대 민정과 검찰이 나선다. 이들의 임무는 사건의 축소와 꼬리 자르기였다.

쉽게 말해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는 총리실, 검찰 등의 주요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유린하고,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뿌리채 흔든 것이다. 사찰 문건에 명시된 ‘BH 하명 사건’이라는 표기가 확실히 보여주듯 오로지 대통령 개인의 의지를 이행하기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대통령의 뜻을 따라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위협한 국가기관만 존재했을 따름이다. 이런 걸 정부라고 할 수 있는지 정녕 의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중동 등의 과점신문과 새누리당은 사태의 의미를 축소하고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미안하지만, 이번 사태는 선관위 디도스 사건과는 달리 꼬리 자르기가 불가능하다. 언터처블이던 공직윤리지원관실 전체가 불법사찰에 나선 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예 불법사찰을 위해 조직이 설립된 정황이 강하다,사찰의 규모나 방법, 청와대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 등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 불법사찰의 정치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만큼 명확하다 할 것이다.

불법사찰과 같이 더러운 정치와 단절하겠다며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박근혜 새누리당의 처신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온갖 패악질, 특히 언론장악이 대표적이다, 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정당, 불법사찰의 단서가 포착됐을 때도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당이 새누리당의 직전 전신(前身)인 한나라당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정당의 실질적인 오너가 박근혜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박근혜는 2년 전 불법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항용 그랬던것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새누리당은 불법사찰의 공모자나 공범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이를 저지할 힘이 있었음에도 구경만하고 있었던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길이 전혀 없다.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기본적인 정치도의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에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표를 달라고 구걸할 것이 아니라 심판을 자청하는 것이 옳다. 그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가 사는 길이다.

ⓒ참여연대.

끝으로 불법사찰 사태의 남은 과제들을 짚어 보자. 먼저 이 사태의 실체적 진실이 남김 없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고 믿는 시민들은 없을 것이므로 총선이 끝난 후 국회지형이 바뀐다는 전제하에 국정조사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특검도 필요하겠지만 특검에 과도한 기대를 하는 건 금물이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에는불법사찰의 기획, 교사(敎唆), 실행에 가담했던 모든 자들에 대한 형사상, 민사상 사법처리가 따라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마지막에 남는다. 대통령의 퍼스낼리티를 감안할 때 하야의 가능성은 낮다. 결국 재임 중 탄핵 및 사법처리나 퇴임 후 사법처리가 현실 가능한 카드일 것인데, 탄핵은 국회재적 의원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함으로 성사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퇴임 이후 MB에 대한 사법처리가 유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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