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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칼럼] 빨강 점퍼 박근혜의 성적표

[홍준호 칼럼] 빨강 점퍼 박근혜의 성적표

  • 홍준호 논설위원
  • 입력 : 2012.04.03 22:49

    4·11 총선 가장 큰 특징은 옛 우파 어젠다의 완벽한 실종
    야권으로 지방권력 넘긴 6·2, 10·26 선거 연장일까
    파랑 대신 빨강 점퍼 입은 새누리 변신에 점수 줄까

    홍준호 논설위원

    8년 전 17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전신(前身)인 열린우리당은 152석, 통합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었다. 민주통합당 계열 정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한 것도, 민노당이 두 자리 의석을 얻은 것도 그때가 모두 처음이었다. 이에 비해 늘 제1당 자리를 지정석처럼 도맡아온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쳤다. 당시 한나라당의 선두에서 선거를 이끈 박근혜 대표는 이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도 "쓰러져 가는 집을 지켜냈다"는 평을 들었다. 그전 당 지도부가 밀어붙인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逆風)이 그만큼 거셌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도 그때 못지않은 역풍 분위기에서 출발했다. 2년 전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 66곳 중 15곳만을 여당에 안겨준 6·2 지방선거와 6개월 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낳은 10·26 보궐선거에서 연속적으로 확인된 민심은 이 정권이 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1일 밤 개봉될 '박근혜 성적표'에서 궁금한 건 역시 이번엔 새누리당이 어느 선(線)에서 버텨낼까이다.

    이번 '박근혜 성적표'를 향한 시선은 물론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권에선 박근혜 홀로 성적표를 받지만, 야권에선 한명숙·문재인·손학규·이정희 등 수많은 정치인의 성적표가 관심사다. 안철수 교수도 몇 군데 지역구에 발을 걸쳐 놓았다. 바둑으로 치면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12월 대선에서 맞상대가 누가 될지 모른 채 다면기(多面棋)를 두어온 셈이다. 그래서 11일 밤 총선 결과가 나오면 여야 불문하고 모두들 '박근혜 성적표'부터 들여다볼 것이다. 그 성적표를 통해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의 앞날은 물론, 야권의 대선 전략과 범야(汎野) 대선 후보의 향방까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어떤 악재가 나와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만 찍는 유권자군(群)이 있다. 선거 전문가들은 8년 전 121석을 박 위원장이 '어떤 악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을 찍는'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모은 결과로 본다. 그때 한나라당은 정당 득표율에서도 2.6%포인트 밀렸으나 현 새누리당은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민주통합당과 비슷하거나 약간 앞서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새누리당은 이번에 120석 밑으로 떨어질 경우 10·26 서울시장 보선 직후보다 더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120~130석이면 '그런대로 버텼다', 130석을 넘어 제1당을 넘보면 '선전(善戰)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경우든 여대(與大)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게 여론조사기관의 대체적 전망이다.

    이런 전망 앞에서 돌아보게 되는 건 이번 선거에서 확연해진 우파 어젠다의 완벽한 실종이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 수입은 1.2%포인트 줄었다. 이를 두고 재계는 무역 1조달러의 공든 탑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시중에선 무역고가 지난 연말 1조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부터 안줏거리로 오르지 않았다. 정부가 최근 KDI에 의뢰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부가 추진할 시급한 중장기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성장 잠재력 확충'은 열 가지 과제 중 맨 꼴찌였다. 성장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이렇게 차가워졌으니 이 이슈가 선거판에 끼어들 틈이 있을 수 없다.

    북한 김정은은 오는 11일 선거가 끝나자마자 장거리 미사일을 쏘겠다며 연일 법석을 떨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선거판은 남의 일 보듯 조용하다. 선거에 뛰어든 주체사상파 활동 경력자에게 "지금 생각도 그때 그대로냐"고 물으면 "요즘 세상에 색깔론이라니 촌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선거 때 주사파니 천안함이니 하는 문제를 꺼내면 중간층이 등 돌린다는 말을 새누리당 사람들부터 한다.

    선거에서 성장과 안보, 두 단어가 힘을 쓰지 못한 건 6·2 지방선거 때부터다. 그러다 지난해 무상급식을 놓고 벌어진 서울시의 8·24 주민투표와 10·26 서울시장 보선을 거치면서 두 단어는 아예 금기어처럼 돼버렸다. 마침내 새누리당이 자신들의 상징이던 파랑 옷을 벗어 버리고 빨강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어떤 악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을 찍던' 사람들 말고 중도파를 잡으러 나서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던 모양이다.

    당장의 관심은 오는 11일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의 그간 몸부림에 점수를 얹어줄지, 아니면 6·2 지방선거와 10·26 보선 연장으로 계속 갈지 여부다. 그러나 긴 호흡에서 볼 때 이번 총선이 남긴 가장 큰 숙제는 우파 이슈의 실종 사태다. 이는 우파와 우파정당에게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행태만으론 안 된다는 경고를 다시 한 번 보낸 것이다.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무시하는 건 아집이고 나태다. 우파와 우파정당의 무엇을 고치고 가다듬을지 그 쇄신과 진화(進化) 방향에 대한 탐색이 총선 이후 보다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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