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지난해 4월 여의도에 무대가 돌아왔다. 무대는 '김무성 대장'의 줄임말이다. 그가 컴백했을 당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김 의원을 애니메이션 '라이킹'의 주인공 캐릭터인 '심바'에 비유했다.
(우두머리 사자) 무파사가 떠난 이후 정글이 침체를 겪고 있다가 (무파사의 아들) 심바가 돌아온 것처럼 김 의원이 당에 돌아와 리더십의 복원이 생기고 당에도 신선한 에너지가 생기고 있다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그가 복귀한지 1년 2개월. 세월호 침몰 사건 등으로 당은 주눅 들어 있지만 김 의원은 서서히 몸집을 불려왔다. 유력 차기 당권주자를 넘어 차기 대권주자 얘기까지 거론됐다. 시기를 저울질 하다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그는 눈치만 보고 있는 당을 개혁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정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두 번의 총선에서 연거푸 낙천했다. 2008년 총선 때는 '친박(친박근)계 공천학살'로 쫓겨났다. 그 풍파 속에서도 부산에서 '친박 바람'을 일으키며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2012년 총선 때도 공천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지역구인 부산 남구을에서 공천을 못 받았다. 그러나 4년 전처럼 무소속 출마는 없었다. 막판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당을 위한 '백의종군'을 택했다. 당의 총선 승리에 밑거름이 됐고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당 대선 캠프 때는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긴급 투입되면서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김 의원은 당 대표를 넘어 여권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여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로도 각인됐다.
지난달 15일 '내 삶을 바꾸는 정치뉴스'를 내걸고 출범한 머니투데이 새 정치뉴스 '더300(the300)'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김 의원의 정치 인생은 1987년에 시작됐다.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리면서다. 하지만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간접적으로 겪게 되면서 그는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된다. 본격적인 활동은 1985년 민주협추진협의회 시절 부터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했던 상도동계의 일원인 그는 통일민주당 총무국장과 원내총무실 행정실장, 민주자유당 의사국장, 의원국장 등을 거친 뒤 15대 국회를 통해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김영삼 대통령 후보보좌역과 대통령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비서관, 내무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친박 김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18대 국회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김 의원과 당시 박 전 대표가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둘의 관계는 멀어졌다. 그 뒤 김 의원은 계파의 벽을 허물겠다며 원내대표에 도전했고 합의추대 과정을 거쳐 3수만에 원내지휘봉을 거머쥐었다. 원내대표가 되기까지 숱한 난관을 겪으면서 정계은퇴까지 생각했던 그는 '새 리더십'을 내세우며 당 대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프로필] △1951년 부산 출생 △부산 화랑초등학교 △경남중·서울 중동고 △한양대 경영학과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부경대 명예정치학 박사 △동해제강 전무 △삼동산업 대표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멤버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총무국장·기획조정실 부실장·국회행정실장 △민주자유당 의사국장·의원국장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위 총괄국장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비서관·사정비서관 △내무부 차관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사무총장·원내대표·최고위원·국회운영위원장·비상대책위원장 △15~19대 국회의원
[그의 법안은?] 김 의원의 대표 법안은 지난해 10월 국회에 복귀한뒤 1호로 내놓은 국가채무 증가를 막는 '국가재정법'이다. 국가재정법 개정내용은 재정수입과 재정지출을 균형·관리하도록 하는 정부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다. 또 국가채무가 매년 증가되지 않도록 관리하되 경제위기 등 긴급한 상황에서 국가채무를 늘려야 할 경우 국회의 의결을 얻도록 했다. 일반정부부채와 공공부문부채를 산출한 후 공표하고 관리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부는 2012년에 처음으로 일반정부부채를 산출한 바 있고 올해부터는 공공부부문부채의 산출을 계획하고 있다.
김 의원은 "향후 복지지출을 포함해 재정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되는 한편 경기불황으로 세수는 감소하고 있어 국가재정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 김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심야시간에 유료도로를 이용하는 화물차에 대한 통행료를 확대하는 내용의 '유료도로법' 개정안 등은 철도노조 파업 중재를 이끌어 낸 후 운송 교통 관련 종사자들과 꾸준히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결과물이다. 김 의원은 19대 국회 복귀 후 정치 개혁과 정책 아젠다 구축에 뜻을 두고 여러 공부모임을 주도하는 등 정책 활동에 비중을 두고 있다.
[키워드→카리스마]
겉보기엔 무뚝뚝한 것 같지만 가까이서 지낸 의원들은 따뜻하고 섬세한 내면을 지닌 의리남이라는 평가다. 한번 맺은 인연에 대해서는 상대가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변함이 없으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자기 사람은 끝가지 챙기는 맏형같은 스타일. 특히 그는 카리스마 대단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한나라당 시절 국회 재경위원장, 당 비대위원장·원내대표 같은 중책을 맡으며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장' 이미지로 연결됐다.
[요! 주의] 성역처럼 굳어진 박근혜 대통령 주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때론 직선적이고 솔직한 그의 말들은 비수가 돼 돌아오고 국민적 공감대와 어긋나기도 한다.
[연관 검색어→아버지 김용주, 동해제강, 삼동산업, 현대] 김 의원의 선친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다. 교육가이자 사업가였던 김 회장은 1960년 4·19 직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 참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4·19 직후 국회는 양원(兩院)으로 구성됐는데 참의원은 상원(上院) 격이었다. 김 회장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원내총무로 선임돼 활동했다. 훗날 김 의원도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최초 부자 원내 책임자가 김 의원 집안에서 나온 셈이다.
김 의원만의 '네트워크'도 권력 장착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의 외조카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준호씨는 일제강점기 때 호남은행을 설립했는데 당시 발탁한 경리 전문가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외조부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파생된 네트워크를 통해 정계와 정제계를 넘나드는 아군이 많다. 무엇보다 김 의원이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정치 스타일이다. 김 의원은 정치 9단 YS로부터 정치를 배운 고수다. 김 의원이 정치입문 하기 전에는 동해제강 상무와 전무,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실물경제를 익혔다.
[그의 사람들] *서용교 : 서 의원은 총선 당시 공천 탈락했던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김무성 의원이 16년 동안 가꿔온 지역구를 물려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김 의원을 지원하고 있다.
*박지원 : 야당의원이지만 김 의원과는 인연이 깊다. 두 의원은 2010년 비슷한 시기에 여야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뛰어난 협력상을 보여줬다. 친분이 두텁지만 '정치적 라이벌'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김세연 :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들이 절친한 사이였고, 그 영향으로 두 사람의 친분도 남달랐다. 당권 경쟁 등 당내 구도가 복잡해지면서 두 사람의 친분이 예전같지는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 사람의 한마디] 새누리 당권도전 공식선언…"기득권 버릴것"-2014년 6월8일 전당대회 출마 공식선언. 김 의원은 '과거와 미래'를 전당대회 출마선언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가 요구하는 소명을 다하고자 새누리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다"면서 "기득권을 철저하게 버리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권에서 권력 권(勸)자를 빼겠다. 공천권을 국민에 돌려주는 게 정당 민주주의의 요체"라면서 "상향식이라지만 매 공천 때마다 장난질을 했다. 이것을 뿌리 뽑으려고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 한장의 사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08년 3월19일 오전 부산 남구 용호동 김무성 의원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김의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8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 결과에 대해 "선거에는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지지라며 한나라당에서 공천했다는 사람보다 여론조사에서 7배나 높은 지지를 받은 김무성 의원을 낙천시키는 것이 공천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특히 "김무성 의원은 부산지역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전국적인 인물"이라며 "앞으로 충분히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의원에게 김 전 대통령은 가장 존경하는 정치적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