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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박원순 딜레마’

 

  안철수의 ‘박원순 딜레마’
 
박원순 서울시장은 2월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의 서울시장 후보 출마 가능성에 대해 “정치 상황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3월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안철수 의원이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 앞에서 만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서울시장 후보 내려니 후폭풍 두렵고 안 내려니 명분 없고
후보 등록 뒤 여론 따라 사퇴 수순 밟을 가능성도 제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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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26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승리하는 데 일등 공신은 단연 안철수 의원(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던 그는 ‘출마를 고려한다’는 전언만으로 지지율이 단방에 50%대로 치솟았다. 그는 출마 선언 대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지리산 산행을 중단하고 수염도 깎지 못한 채 부랴부랴 내려온 박원순 시장을 만나 담판을 했고 지지를 선언했다. 지지율 5%대였던 박 시장이 1위 주자가 됐고 결국 당선됐다.

 

사실 애초부터 야권의 승리를 점칠 수 있는 선거였다. 계기부터가 오세훈 전 시장이 무리하게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였다. 새누리당이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에 정부에 대한 반발 정서는 극에 달해 있었다.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자마자, 재보선 실시를 노리고 민주당에서 김한길·박영선·이계안·천정배 등 10명이 자천타천 물망에 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기에 ‘안철수 현상’이 정국을 강타했다. 차기 대선 1위 주자가 된 안 의원은 박 시장 지지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야당이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질 수 없는 선거’치고는 표 차이가 그리 압도적이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53.4%를 얻어서 당선됐고, 나경원 후보는 46.2%로 떨어졌다. ‘고작’ 약 30만 표(7.19%포인트) 차이였다. 새누리당이 ‘질 수밖에 없는’ 선거에서 기록한 성적이었다. 이는 서울의 19대 총선 정당투표(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쳐서 44.39%)와 18대 대선(박근혜 48.18%) 결과로도 이어졌다.

 

가장 낮춰 잡는다고 해도 40% 중·후반대를 기록하는 상대와 겨루려면, 나머지를 탈탈 긁어모아서 상대하는 게 당연하다. 단순한 셈법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야권의 사정은 그리 간단치않다.

 

 

박원순도 힘겨웠던 2011년 선거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후보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창당하기로 한 것부터가 선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겠다는 뜻이고, 지방선거 최대의 이벤트인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논리다. 외부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후보를 내긴 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서울은 지방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지역이므로, 창당하는 입장인 신당에서 후보를 내지 말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는 신당 후보의 등판이 박 시장을 위협한다는 데 있다. 새누리당 후보까지 3자대결이 될 텐데, 승자 한 사람이 시장이 될 뿐이다. 민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서울에 후보를 내면 안철수는 죽는다. 박원순 시장을 떨어뜨리면 신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양보하라는 발언 논란 때문에 (신당) 지지율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사실상 박 시장을 떨어뜨리기 위한 출마로 해석될 수밖에 없으니 자충수가 될 거란 경고다. 안 의원은 1월20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2011년 서울시장 선거, 2012년 대선 두 차례 연속 양보만 했다’는 질문에, “이번에는 양보받을 차례 아닌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정치 도의적으로”라고 답했다. 안 의원 쪽은 인터뷰 당시 웃으면서 한 답변의 맥락이 잘못 전달된 거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가시지 않았다. ‘양보’라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도 나왔다.

 

 

“1대1로 맞붙어도 3%포인트 싸움”

 

 

박원순 시장 쪽에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얘기다. “3자 구도는 필패다. 사실상 새누리당에 상납하는 것이다. 선거전이 본격 시작되면 새누리당 쪽에서 정몽준 의원 대 김황식 전 총리 사이 빅매치가 어느 정도 컨벤션 효과를 거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도 확고하다. 야당의 분열은 유리할 게 없다. 현재 박 시장의 경쟁력으로 버티는 면이 있고, 앞으로도 그걸 믿고 버텨보라는 건데, 서울시장 선거는 역대 결과를 보면 3%포인트 싸움이다.”

 


 

 

민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서울에 후보를 내면 안철수는 죽는다. 박원순 시장을 떨어뜨리면 신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양보하라는 발언 논란 때문에 (신당) 지지율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신당이 후보를 내야 한다며 강조하는 서울의 의미, 곧 가장 중요한 곳이자 상징성 있는 곳이란 논리는 거꾸로 야권 전체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서울의 선거 결과가 전체 판세를 좌우하는 만큼, 그 상징성과 파괴력을 감안해서 야권에 승리가 절실하니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다.

 

신당 쪽에서도 이를 모르는 게 아니다. 정기남 공보팀장의 긴 설명이다. “박 시장을 떨어뜨리기 위해 후보를 내는 게 아니라, 야권의 외연을 넓히고 적대적 공생 관계인 양당 구조에 파열을 낼 수 있는 후보를 내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박 시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면 야권 지지층에 실망감이 생길 수 있고, 과연 바람직한 모습이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을 잠재울 만한 경쟁력 있는 후보가 있을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는 박 시장보다 경쟁력 있는 후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신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 장하성 고려대 교수, 홍정욱 전 새누리당 의원 등 인사들 누구도 적극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충분한 인물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서울 지역의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를 내면) 그게 새 당으로 보이겠나. 고춧가루 뿌리는 당으로 보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단일화를 전제로 후보를 낼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후보를 냈다가 선거공학적인(연대를 위한) 사퇴가 아니라, 유권자들로부터 빗발치는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띠면서 사퇴하는 게 무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당 핵심 인사들, 3년 전엔 박원순 캠프 지원

 

 

신당 쪽 인사 일부가 박원순 시장을 탄생시킨 주역이었다는 점은 신당으로서 상당히 난감한 대목이다. 안철수 의원 본인을 포함해 송호창 의원, 금태섭 대변인 등은 2011년 선거 당시 멘토, 대변인 등으로 박원순 후보의 ‘희망캠프’에 힘을 실었던 이들이다. 신당이 후보를 낸다면, 본인이 당선시킨 시장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희망캠프와 신당에 모두 관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난색을 표하며, “박 시장은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민주당 사람은 아니다. (여러 차례 신당 합류를 권하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오지 못하는 것도 본인만의 선택이라고 보기 힘들다. 신당이 (후보를 내면) 어쩔 수 없이 경쟁이 되는 면이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신당 관계자는 “어떤 계기로든 안철수와 박원순의 사이가 틀어지는 건, 차기 대선 등을 생각해 보수 쪽에서 바라는 구도”라고 지적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