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김무성_(전 당대표)활동.비전.어록.영상.보도.논객.자료.건의

김무성, 박근혜 '텐텐 폭탄주'에 "술만 독하나"

 

김무성, 박근혜 '텐텐 폭탄주'에 "술만 독하나"

  • 이동훈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현실과 타협 내세우는 '김무성표' 정치

    김무성 의원이 민주노총을 몰래 들어갔다가 기어나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해 말, 김 의원에 대한 시중의 여론은 칼로 그은 듯 갈라졌다. “정치가 밥값을 했다”는 호평이 반(半), “김무성이 꼴값을 했다”는 류(類)의 악평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김 의원을 보는 대중의 시각이 엇갈린 만큼, 그의 행보도 엇갈렸다. 그는 철도노조와의 중재에 나서기 열흘 전, 충남 아산의 순천향대에서 가진 토크 콘서트에서 대학생 여럿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총리와 장관이 나와 ‘절대 민영화가 아니다’고 말해도 데모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파업이다. 정부가 노조에 지면 질서가 어떻게 되겠나. 과격한 파업을 일삼는 과격 노조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상당한 강경론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경종을 울리려는 순간, 김 의원은 정부의 손아귀를 낚아채며 노조의 숨통을 틔어 줬다.

    김무성 의원은 철도노조 파업을 중재하고 난 뒤 보수층 일각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 했다. 김무성은 어느 한쪽 편만 들거나, 일방적으로 몰아주는 일이 없었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뒤에 “야당이 틀린 얘기를 해도 대통령이 좀 들어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대통령의 소통 능력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이 개헌론을 들어 대통령을 비판하자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 후 정면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박 대통령을 엄호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만 해도 그랬다. 그는 ‘근현대사연구모임’을 주도해 좌파 사관이 점거한 역사 교과서를 논쟁의 장으로 끌어낸 당사자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혹자는 이런 김 의원에 대해 “당권과 대권을 염두에 두다 보니 집토끼와 산토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혹평했고, 어떤 이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좌충우돌 행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말 좌충우돌, 오락가락하는 걸까.

    아버지로부터 현실을, YS로부터 타협을 배우다.

    그의 행보는 살아온 내력, 혹은 정치 이력과 맞닿아 있다.

    김 의원은 태생은 기업가다.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자의 아들인 김 의원은 20~30대의 나이에 동해제강 전무, 삼동산업 대표 등을 지내며 실물 경제를 익혔다. 서른셋의 나이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에 몸을 담았지만 기업가 집안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사고는 실용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양복이 헐면 뒤집어 입을 정도로 검소했던 김 의원의 선친은 “방학 때 공장에서 일을 안하면 등록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억원대 신고 재산과 호방한 풍채로 인해 갖게 되는 김 의원에 대한 선입견은 돋보기 안경을 끼고 꼼꼼하게 잔돈푼까지 챙기는 본 모습과 만나면 어이없이 깨지고 만다. 김 의원의 의원회관 책상 한켠에는 이면지를 챙겨두는 박스가 늘 놓여있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젊어서 기업을 경영했던 경험 때문인지 사고 방식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그래서 ‘정치’도 현실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늘 “정치는 현실 70%, 이상 30%의 조화”라고 해왔다.

    김무성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가장 닮고 싶은 정치인으로 꼽는다. 그는 YS로부터 정치를 배웠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체험하고 나서 “나도 민주화투쟁에 참여해야겠다”며 YS를 무턱대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가 YS로부터 처음 배운 것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척 하다가 돌아오라”는 식의 ‘미행 따돌리는 법’이었다.

    미행 따돌리는 법에 이어 YS로부터 배운 것은 김 의원이 평생토록 써먹은 ‘타협과 결단’의 정치였다. 김 의원은 기자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면 과거에 YS가 했던 타협과 결단을 늘 되짚어본다”고 했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낙천 위기에 처했다. 세간은 그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자회견이 예고됐던 날 석간신문 기자들은 이미 ‘김무성 탈당’ 기사를 써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출마와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예상 밖 결단이었다.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승리는 그날 김무성의 결단에 상당한 빚을 졌다.

    김 의원은 5선 의원을 하는 동안 YS로부터 배운 타협의 정치를 실전에서 여러 차례 써먹었다. 야당 시절인 2005년 그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4대 입법을 밀어붙이던 열린우리당 인사들과 막후에서 머리를 맞댔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서는 친박계 좌장 자격으로 친이계 핵심들과 물밑에서 공천을 협상했다. 2010년에는 여당의 원내대표가 돼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흥정했다. 그는 매 순간 협상했고, 결정적 대목에서 타협했다.

    그는 여당 안에서 야당과 소통이 되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1985년부터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동교동계 인사들과 면을 터고 교우해온 덕분이다. 한 측근은 “김 의원은 타협과 결단을 통해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것을 정치의 본령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현역 정치인 가운데 정치력으로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평가했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친박계 좌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 후보가 경선에서 패한 뒤 이명박 정부에서 원내대표를 맡았다. 투항 혹은 변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그에겐 현실을 바탕으로 한 행보였다.

    그는 원내대표에 앞서 이명박 정부로부터 특임장관 제의를 먼저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로 특임장관 행이 무산되자 측근에게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내가 특임장관이 되면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에서 박근혜가 차기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닦을 수 있는데 (박근혜가) 왜 저렇게 반대하는 지 모르겠다.” 그는 당시에 이런 말들도 했다. “현 정부가 성공해야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를 도와야 한다.”, “ 현직 대통령이 차기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못되게 할 수는 있다. 현직 대통령과 어긋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김 의원의 현실론은 박 대통령측으로부터 ‘자기 정치를 위한 변명’이라고 폄하됐다. 결국 김 의원은 2010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으며 사실상 친박계를 떠난다.

    그해 친박계와 친이계는 행정도시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건곤일척(乾坤一擲) 승부를 벌인 것이다. 김 의원은 그 가운데에 서서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는 ‘세종시는 옳지 않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 결론이 타협안이었다. 박대통령이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그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지만 김 의원의 정치가 무엇인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철도노조 파업 중재에 나선 김 의원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구석으로 쥐를 몰 듯 노조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선 안된다.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무성의 현실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론과 어찌보면 상보관계이다.

    “술만 독하나?”

    김무성의 현실론 혹은 타협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론과 수시로 싸웠다.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김무성은 “돈을 써야 한다”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돈을 왜 쓰냐?”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박 대통령과 싸웠고, 그 때문에 결별했다.

    그랬던 김의원은 2012년 대선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다시 박근혜 후보를 돕는다. 하지만 현실론과 원칙론의 충돌은 계속됐다.

    그 당시 일이다. 김 의원은 박선규 안형환 정옥임 등 친이계 인사들을 대거 대변인으로 발령내 전위(前衛)에 두고 써먹어야 한다며 인사안을 올렸지만 박 후보는 며칠째 결재하지 않았다. 이것 저것 따지다 보니 시간이 걸린 것이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김 의원은 “알아서 하겠다”며 전결 처리해버렸다.

    “박 후보가 평소 같았으면 불같이 화내며 되돌렸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현실’과 ‘타협’을 앞세운 김 의원의 정치는 ‘원칙’을 앞세우는 박 대통령의 정치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원칙론은 선명하지만 현실론은 회색빛이다. 원칙론은 결연해 보이지만 타협론은 뭔가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김 의원은 현실에 기반한 타협을 늘 앞세웠다. 그의 현실론이 있었기에 박근혜의 원칙이 빛을 발한 때도 많았다.

    김 의원은 원칙에 집착하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볼까. 김 의원 심기를 짐작케 하는 한 장면이 있다. 폭탄주 이야기다. 박 대통령은 여의도 시절 폭탄주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만들기는 했다. 양주와 맥주를 가득 채우는 이른바 텐텐주다. 모임에서 박 대통령이 만든 폭탄주가 한바퀴 돈 뒤 한 인사가 독백처럼 “박 대표가 만드는 폭탄주는 너무 독하다”고 한마디 했다. 옆 자리의 김무성 의원이 이 말을 듣고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술만 독하나?”

    김 의원의 한 측근은 “현실과 타협이란 김무성의 정치 키워드로 그의 행보를 다시 보면 좌충우돌, 오락가락이 아님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의 향후 정치행로까지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김 의원은 현실적으로 따져 차기 새누리당 대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당 대표에 도전하는 것이다. 대권까지 염두에 두고 당 대표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표가 된 뒤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는 대권에도 도전할 것이다. 그게 바로 김무성식(式)이다.”

    - [이동훈 기자의 연비어약] 다른 기사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