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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사람의 지리학'…『한국풍수인물사』

 

땅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사람의 지리학'…『한국풍수인물사』
 
 
 
 
한국풍수인물사/최창조 지음/민음사 펴냄

우리나라 최초로 풍수를 본 인물은 누구일까?

역사기록에 따르면 탈해왕과 선덕여왕을 꼽을 수 있다. 탈해왕은 계림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 출신으로 토함산에 올라가 돌무덤을 만들고 7일간 머물면서 서라벌 성안의 살 만한 땅을 살펴보았다. 그는 초승달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좋은 땅임을 알아차렸으나, 그 자리에는 당시 신라의 권세가인 호공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탈해는 남몰래 그 집 옆에 숫돌과 숯을 묻고는 이튿날 그 집을 찾아가서 “우리 집은 대대로 대장장이었는데, 이 집은 우리 집 땅이다. 땅을 파보면 대장간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집을 차지했고, 신라의 권세가로 성장한 다음 왕이 되었다.

선덕여왕 역시 여근곡에 숨은 적병을 알아내거나, 세상을 떠나기 전 낭산에 자신을 묻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탈해왕이나 선덕여왕의 일화를 풍수라고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형과 지세를 살펴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던 경우는 허다하다.

풍수는 과연 자기 집안과 현재 권력자 중심의 국가적 안녕만을 비는 술법인가?

지은이 최창조는 ‘우리의 지리관은 자생풍수다. 중국의 풍수가 발복(發福)을 바라는 이기적인 측면이 강한 데 반해 자생풍수는 대동적(大同的)’이라고 말한다. 역사기록에 최초로 등장하는 석탈해가 초승달 모양의 집터를 빼앗은 일이나, 선덕여왕이 여근곡에 숨어 있는 백제 군사들을 알아맞힌 이야기 등은 대동세상을 꿈꾸는 자생풍수의 초기 흔적을 보인다는 것이다.

신라말 혼란기에 백성들이 매우 힘겨운 상황에 놓이게 되자 함께 잘사는 세상을 꿈꾸는 우리나라의 자생풍수는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자생풍수의 비조인 도선국사와 그의 제자들은 개벽된 세상을 꿈꾸며 실제 행동에 들어갔다. 도선의 제자들은 후삼국 각 진영으로 들어가 활약했다. 그 뒤로도 개벽을 꿈꾸는 자생풍수가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지은이는 고려의 묘청과 신돈, 이성계의 사부이자 친구이며 참모였던 무학, 조선시대 남사고, 이지함, 이의신, 홍경래 등을 통해 우리 전통풍수가 묏자리 잡기에 연연하는 음택풍수만이 아닌, 치유와 비보(裨補: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움)로서 자생풍수였으며 땅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사람의 지리학’이자 환경과 소통하려는 고유의 과학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전국 곳곳을 직접 답사했다.

지은이는 당나라를 통해 신라시대 무렵 들어온 중국 풍수가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이기적인 음택풍수가 아닌 우리 고유의 ‘자생풍수’가 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과 역사를 찾기 위해 선사 시대의 고분부터 '삼국유사' 등에 나타난 전승설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들을 찾는 한편,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말라’는 풍수 원칙에 따라 직접 전국의 명산대찰을 뒤지고 북한까지 답사했다. 또 시골 노인들을 찾아가 전래되어 온 구술들을 채록하는가 하면 스님들의 개혁 사상을 되짚어 보기 위해 직접 승려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작업을 통해 지은이가 밝혀낸 바는, 탈해왕과 선덕여왕처럼 최초로 역사에 기록되기 이전 시기에도 소박한 자생풍수의 흔적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김해의 허왕후릉에 있는 파사석탑은 풍수 비보의 한 예이고, 북한에 있는 안악 3호분은 성기 모양의 지형에 묘를 쓴 사례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어머니의 품속이라면, 병든 곳은 고치고 가꾸어 가면서 어울려 살아야 한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풍수가 곧 맹목적인 자연보존 주장이라거나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서양의 환경 결정론을 반박한다. 자생풍수는 ‘완전한 땅은 없다’는 명징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사람과 자연의 상생 조화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는 데 그 미덕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우리 풍수의 유장한 역사를 확인하는 한편, 이 땅에서 살아온 선인들의 세계관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은이 최창조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및 전북대학교 강사를 거쳐 국토개발연구원 주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청주사범대학 지리학과 교수, 전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527쪽, 3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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