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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술관에서 오방색을 탐색하다북수원지식도서관 인문학 강좌, 미술관 나들이

이영미술관에서 오방색을 탐색하다

북수원지식도서관 인문학 강좌, 미술관 나들이

등록일 : 2012-04-11 13:16:29 |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제트기류의 생명이 다한 것일까. 3일전부터 갑자기 포근해지더니 한낮엔 약간의 땀이 흐를 정도다.
기실 4월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봄날을 알리는 남도의 꽃소식이 힘차게 올라오리라 기다렸었다. 그런데, 때 아닌 추위로 인해 아랫 녘 봄꽃 축제장은 꽃망울도 터뜨리지 못한 채 열리고 있다는 소식만이 들렸다.
우리가 인식하길 4월은 분명 봄날이건만 세찬 바람의 연속이었고 어느 날인가는 눈도 내렸다. 어제 오후부터 약한 봄비가 내리긴 했지만 추위는 단숨에 넘어갔다. 드디어 개나리며 철쭉, 동백과 목련, 벚꽃 등 봄꽃나무의 개화가 시작됐다.

박생광과 전혁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이영미술관

4월 10일 화요일, 북수원지식도서관 인문학 강좌 ‘우리화가 그리고 미술관’ 두 번째 시간으로 용인시 영덕동에 위치한 ‘이영미술관’을 찾았다.
행정구역상 용인시에 속하지만 수원시에 더 가깝다(실제로 관람객들 대부분이 수원시민들이다). 대중교통 버스를 타고 영통입구(수원시와 용인시 경계) 다음번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 나오니 말이다.

‘이영미술관(관장 김이환)’은 작가와의 인간적 교류와 교감 속에서 모은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박생광, 전혁림, 정상화 등 대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민족혼의 화가로 불리는 내고 박생광과 아흔여섯 한평생 화업에 정진한 전혁림 화백 작품의 국내 최대 소장처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박생광, 전혁림 화백의 대표작들을 특별전시장 한곳에서 연중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지금은 대가들의 작품과 함께 7월말까지 새봄맞이 전시 ‘송松 죽竹 매梅’ 이재삼 작가의 작품이 전시중이다.

지난 화요일 첫 강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색인 ‘오방색을 아십니까’였다. 이번 주 공부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겠다. 내고 박생광과 전혁림 화백의 그림들이 온통 오방색이니 말이다. 물론 두 분의 색깔은 다르다. 이르자면 박생광 화백은 붉은색 토양이고, 전혁림 화백은 코발트 블루라 불리는 쪽빛바다색으로 가늠할 수 있겠다.

전혁림 화백의 '새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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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 화백의 '통영항'


몇 년 전에 딱 한번 두 분의 작품을 마주한 후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런데 그동안 마음의 눈이 떠진 것일까,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2시간여 관람하는 동안 현기증이 일 정도로 가슴에 와 닿았다.

노무현대통령도 방문한 지역문화명소

미술관입구란 방송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버스에서 내렸다. 육교로 막 오르려는데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두리번거리며 미술관 위치를 묻는다. 그녀는 나와 행선지가 같음을 알아차린 후 바로 친밀함을 내비친다. 두런두런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며 약 15분 걸어 들어갔을까, 드디어 입구가 보인다.
미술관에 도착하기까지 아파트 개발과 발맞춘 것인지 차들이 쌩쌩 바람을 몰고 지나쳤다. 큰 차들이 100미터 경주라도 하듯 말이다. 기어이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고 말았다.

대로의 복작거림으로 피곤해진 눈은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희석됐다. 예전보다 근사해진 주변 풍경에미소가 절로 인다. 7천 여 평의 미술관 부지엔 군자의 자태로 서있는 100여 그루의 소나무, 300여개의 큰 항아리, 정낭 등 제주도의 민속물, 그리고 한용진의 '막돌 다섯'을 비롯한 조각 작품들과 함께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까지 아늑한 자연 속 공원으로 들어온 듯 편안하다. 잠시 산책하듯 주변을 살핀 후 천천히 관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먼저 캔버스위에 목탄으로 그린 이재삼 작가의 세한삼우, ‘송松 죽竹 매梅’의 작품들을 만났다. 크기부터가 대작이지만 선암사의 매화를 비롯해 영양 만지송, 군위 신비의 소나무, 담양의 대나무가 보는 이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재삼 작가의 '선암사 매화나무'


이유인즉 작품들이 꿈틀거리듯 생명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3D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철철 넘쳐흐른다. 아마도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니 감흥이 더한 것일 게다. 그러나 이영미술관을 방문한 궁극적인 목적 오방색의 진수를 보기 위함이라 발길을 옮겨야 했다.

“와......” 입이 안 다물어진다. 왜 전혁림 화백을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지 단번에 깨우치게 만드는 작품 ‘새 만다라(2003-2008)’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관객들을 만난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1,050개의 작품이 단 한 개라도 동일한 것이 없다는 관장님의 설명에 눈은 더욱 동그래지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이영미술관에서는 오방색의 진수를볼 수 있다

감동의 발길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로 유명세를 탄 '통영항'(2005) 작품 앞에서 더욱 머뭇거리게 된다.온통 쪽빛바다색 일색인 '기둥사이로 보이는 한려수도'(2005)는 추상적인 기법인 만큼 멀리서 봐야 전체적인 풍경이 들어온다. 관람객은 어느새 통영의 미륵도에 올라 아름다운 남해바다의 풍광에 취한 듯 착각이 일 정도다.

시각예술의 진수는 내고 박생광 화백의 작품들과 만나면서 더욱 극명해 진다. 모든 작품들이 그야말로 오방색 난만함의 극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화와 불교 그리고 역사와 샤머니즘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 너무나도 유명해진 ‘명성황후(1982)’나 ‘기러기를 안는 여인’부터 ‘무녀’ ‘전봉준’..... 한결같이 가장 한국적인 채색법, 오방색 투성이다. ‘내고’란 호보다 말년엔 순 우리말 ‘그대로’로 불러주길 좋아했다는 박생광 화백의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 민족혼에 대하여 잠시 고민해 봤다. 그동안 우리 작가 우리 그림에 너무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

박생광 화백의 그림에 심취한 관람객의 뒷모습


이번 강의를 이끈 갤러리 SEED 김윤미 대표는 미술관 관람을 마치면서 ‘시각의 다양성’에 대하여, 그리고 ‘틀을 깨야’함을 말했다. 어릴 때부터 서양화 교육에 길들여져서 고유색으로 채색된 우리 그림을 터부시함으로서 오는 이질감 등.... 미술작품을 처음 대할 때 ‘그냥’ 나의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작가들은 모든 방면에서 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 하는 만큼 고된 숙련과정을 거치고 있는 모든 작가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면서 수업을 마쳤다.

4년 전 광명에서 수원으로 이사를 왔지만 북수원도서관에서 주관한 이번수업을 처음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됐다는 김미영(45세) 주부는 ‘우리미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라고 했다.
또한 전혁림과 박생광 화백의 그림들을 수원시 가까이에 있는 이곳, 이영미술관에서 직접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낭랑하면서도 구수한 목소리로 안내를 해주신 김이환 관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이영미술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55-1
031-213-8223, 031-282-8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