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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도시보다 참한도시가좋다~ 이용호님 페북에서 옮김

 

 튀는도시보다 참한도시가좋다~ 이용호님 페북에서 옮김


튀는도시보다 참한도시가좋다~
도시를 생명체나 유기체같이 숨쉬고 살아가는 ~~
(정석교수의 도시학)공감하여 공유합니다.
경기도시공사 사보 가을호에 칼럼을 썼습니다. 도시를 떡이나 물건으로 보지 말고, 유기체로 생명체로 보고 나아가 인격체로 보자는 취지의 글입니다. 사람을 대하듯 도시를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도시의 품격
- 생명체 도시, 인격체 도시

금년 봄에 출간된 책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의 부제를 놓고 편집자와 저자가 옥신각신 했다. 결국 편집자 뜻대로 ‘정석 교수의 도시설계 이야기’로 정했지만, 저자의 속마음은 ‘사람이나 도시나 매 한가지’란 부제를 제목 위에 올려놓고 싶었다. “사람 대하듯 도시를 보자”, 그것이 책을 통해 하고픈 진짜 속이야기였으니까.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2011년 7월에 창원시 지식 컨퍼런스에 초청되어 도시설계에 관한 발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참한 도시>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발제 제목을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라고 붙였는데, 도시설계의 본연은 튀는 도시 만들기가 아니라 참한 도시로 다가가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자랐고 2년 뒤 같은 제목의 책으로 열매를 맺었다. 

우리 도시들을 둘러보면 온통 튀는 도시, 튀는 건축 일색이다. 공공청사들은 마치 군림하듯 높고 크게 지어진다. 겉은 온통 유리로 뒤집어씌워진 채. 이른바 ‘블랙아웃’을 걱정하던 지난여름 유리온실 청사 안에서 많은 공무원들이 찜질하듯 생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옛날 어르신들 말처럼 “멋 내다 얼어 죽는다”는 딱 그 꼴이었다. 사람이나 건축이나 도시나 다 마찬가지다. 튀기 이전에 참해야 한다. 거짓 없고 진실되어야 한다. 겉멋부리기에 앞서 기본부터 튼튼히 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어야 한다.

도시는 떡도, 물건도 아니다

‘도시를 떡 주무르듯 한다’는 말처럼 도시를 마치 자기 물건 다루듯 주무르는 단체장들이 많다. 소나무를 좋아하면 가로수를 소나무로 바꾸고, 가로등도 고추모양으로 인삼모양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도시는 떡도 물건도 아니다. 우리 삶을 품어주는 세상이다. 모두의 삶터다. 맘대로 취향대로 이리 쓰고 저리 버려도 좋은 소모품은 더더욱 아니다.

도시를 이렇게 물건처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를 학자들은 근대주의(modernism)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도시를 ‘전체’로 인식했는데 근대 이후 ‘객체’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태아가 엄마 자궁을 자신의 온 세상으로 인식하듯 도시를 삶터로 세상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근대 이후에는 나와 동떨어진 물건이나 기계나 발명품 같은 것으로 도시를 보기 시작했단다.

도시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참 중요하다. 도시계획도 도시설계도 도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집을 ‘사는(to buy) 것’으로 보는 시각과 ‘사는(to live) 곳’으로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듯, 도시를 ‘물건’이나 ‘상품’으로 볼 때와 ‘생명체’나 ‘삶터’로 볼 때의 태도와 행동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도시문제를 바라보는 견해 또한 다르지 않다. 도시가 물건이나 기계 같은 것이라면 도시문제를 푸는 일도 물건 수리하듯 기계 고치듯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도시문제가 그렇게 풀어지던가? 

제인 제이콥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단순한 문제(problems of simplicity), 비유기적 복합문제(problems of disorganized complexity), 유기적 복합문제(problems of organized complexity)로 구분한 뒤 도시문제는 어떤 문제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고, 도시문제 또한 복잡하게 얽힌 난제들인데도 마치 단순한 문제를 대하듯 했던 당대 도시계획을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이라 꼬집었다. 우리도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도시를 생명처럼, 사람처럼

품격 있는 도시를 꿈꾸고 이루려면 무엇보다 먼저 도시를 생명체로, 인격체로 정중히 바라보고 공손한 자세로 섬겨야 할 것이다. 도시는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건조물만이 다가 아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역사가 있고 그보다 훨씬 더 어른인 자연이 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온갖 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도시다.

사람의 품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비싼 옷과 명품 장식으로 사람의 품격이 하루아침에 높아지지 않는 것처럼 도시의 품격도 그렇게 올라가지 않는다. 랜드마크(landmark) 건물을 짓고 광로를 뚫고, 혹은 야간조명을 화려하게 하면 도시의 품격이 올라가는가? 그렇지 않다. 품격 있는 사람, 즉 군자를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 표현했다지 않은가. 문(文)은 외형이고 질(質)은 내실이니, 속이 실하고 밖이 반듯해야 군자인 것처럼 도시의 품격도 그렇게 높여야 한다. 도시환경의 기본(amenity)을 튼튼히 해서 내실부터 먼저 다진 연후 도시의 외형을 살필 일이다. 남들 따라하기 대신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바로 알고 키우는 것, 그것이 품격 있는 도시로 다가가는 길이다.